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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평전 : 정신의 비상 ★★★★★

bOOKS + mAGAZINES

by 몬스터디자인 2008. 1. 3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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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이자 발명가, 음악가, 해부학자, 과학자, 철학자, 건축가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는 르네상스 예술인 가운데 가장 다재다능하고, 신비에 싸인 진정한 Universal man이자, 인류 최초의 산업디자이너(?)다. 늘 호기심에 가득 차 있고, 독창적이며, 복잡한 성향을 지녔던 다 빈치. 전설적인 평판 뒤에 숨은 그의 진정한 면모는 무엇인가.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등의 명작에 얽힌 이야기는 무엇인가. 당시 다 빈치가 처했던 물리적 상황과 일상의 순간. 그가 먹었던 음식, 입었던 옷까지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고, 레오나르도의 메모와 노트부터 당대의 역사적 사건까지 광범위하게 탐구하여 완성한 가장 흥미롭고 인간적인 모습의 다 빈치 전기다...

450페이지가 훌쩍 넘어 꽤나 두껍지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일생을 수많은 에피소드와 시대상황, (권력자, 부모형제, 제자들, 미켈란젤로같은 라이벌등의) 주변의 인물들을 통해 가슴 절절히 느낄 수 있다. 그의 삶이... 수많은 책에서 처럼, 화려하게 포장되고, 과장되게 기술되어 있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지만, 때로는 너무 담담하게 구성되어 있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일생과 그의 재주가 그다지 부럽거나,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 ㅡ,.ㅡ;; 유명한 작품들에 대한 흥미진진하고, 깊이 있는 해설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영국에서 2004년도에 출간되었음.)

아래글에서도 발췌하였지만, 놀라운 사실 하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초기에 헬리콥터나 여러가지 혁신적인 기계장치등에 대한 아이디어 스케치들을 열심히 했던 이유중의 하나가... 그 당시 권력자들에게 자기를 알리고, 외주업무(?)를 따내기 위한 수단 (한마디로 말하면 포트폴리오 작업...)이었다는 사실... 지금의 산업 디자이너들과 비슷하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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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p : 레오나르도가 채식주의자였던 것도 동물 사랑과 관련이 있다. (레오나르도가 평생 채식주의자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년에는 확실했다.) 레오나르도와 아주 가까운 친구 중 하나였던 괴짜 토마소 마시니는 "레오나르도는 어떤 이유에서라도 벼룩조차도 죽이지 않을 것이다. 죽은 짐승의 가죽을 입는 것이 싫어서 면 옷을 입었다."고 말했다.

66p : 레오나르도는 자신을 "문맹"으로 일컬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읽고 쓰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학구적 언어인 라틴어를 배우지 못했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대학에 진학하려면 문법, 논리학, 수사학, 산수, 기하학, 음악, 천문학의 일곱가지 "인문과학" 과목을 공부해야 했는데, 레오나르도는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를 하지 않았고 학교 수업도 받지 않으면서 대신 실제적인 도제 과정을 시작했다. (후에, 라틴어도 공부함...)

131p : 레오나르도가 동성연애자였다는 점은 오늘날 널리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이는 결국 해석의 문제이다. 레오나르도를 연구하는 현대인들 대부분이 그가 동성연애자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지만, 전적으로 그렇지는 않았다는 명쾌한 증거도 몇 가지 존재한다.

134p : 레오나르도가 1476년 자코포 살타렐리 사건 (동성연애에 대한 혐의)으로 고발됨. --> 그가 당시 고발로 말미암아 투옥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야간 경계원에 체포되어 구류를 지낸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겠지만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후에 사람을 감옥에서 해방시키는 신기한 장치를 고안하고 그렸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창문 창살을 뜯어내는 장치의 데생은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에 포함되어 있고, ‘감옥 문을 안에서 여는 방법’이라는 해설이 붙어 있다. 언젠가 레오나르도는 자유가 ‘자연이 준 선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선물’이라고 기록했다. 후세 사람들이 파악했듯이, 신체적이든, 직업적이든, 지적이든, 감정적이든, 어떤 형태의 구속도 레오나르도에게는 괴로움의 대상이었다.

141p : 이 화려한 외모의 젊은이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거울에 비친 그의 얼굴에서 불확실성과 외로움을 찾아내야 할 뿐 아니라, 불만족으로 괴로워하며 이방인이자 사생아, 문맹이자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동성행위자인 자신의 모습 때문에 아파하는 그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분위기는 냉담하고 초연한 분위기속에 더욱 꼭꼭 감춰지면서 그 어둠의 파편은 원고의 곳곳에 단편적으로만 표현되었다.

179p : (레오나르도가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로 거처를 옮기려 할때, 밀라노의 통치자인 루도비코 스포르자에게 쓴 자기 소개서...) 소개장에서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을 자세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설명했다. 그러나 매우 놀라운 사실은 소개장에 언급한 기술이 주로 군사 공학에 관련된 기술로, 당시까지는 레오나르도가 해당 분야에 전문적 기술이나 경험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레오나르도가 피렌체를 떠날 준비를 하면서 새롭게 꿈꾸었던 역할이었다. (--> 이때 제시한 군사공학적인 기술 : 성채나 보루를 파괴하는 기술, 운반하기 쉬운 대포, 지하터널이나 비밀 통로 구축기술, 장갑차 제작기술, 화살 사출기, 투석기, 군함 등등...
) 레오나르도는 소개장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무한히 다양한 종류의 공격용이나 수비용 기계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224p : 레오나르도의 원고에 남아있는 농담 한자락 --> 어떤 사람이 한 화가에게, 비록 생명은 없더라도 어쩌면 이토록 아름다운 인물을 그려 냈는지, 그러면서도 어떻게 그토록 못생긴 자식을 낳았는지 물었다. 화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림은 낮에 그리고 자식은 밤에 만들었기 때문이오"

228p : 레오나르도의 초기 노트에는 매우 다양한 계획과 프로젝트가 가득하다. 이 시기에 다양성은 이미 레오나르도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였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계획과 프로젝트는 사실상 루도비코 스포르자 궁정에 들어가기 위한 계획의 일부이기도 했다. 군사무기, 도시계획, 비행기계, 건축설계, 심지어는 궁정에서 행해지는 단어퍼즐에 이르기까지, 종이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모든 계획은 루도비코 스포르자의 다재다능한 전문가이자, 독창적인 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레오나르도의 노력의 일환이었다.

258p : (레오나르도는 연극무대 연출과 무대 디자인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일 파라디소"라는 연극을 통해서 우리는, 궁정의 화려하고 장대한 연극 제작자이자 특수효과 전문가로서의 레오나르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 파라디소"는 여러 매체를 복합적으로 사용한 화려한 연극이었으며, 레오나르도는 나무와 천을 가지고 무대를 제작하고, 여기에 색채, 조명, 음악, 발레, 시등을 결합시켜 천상의 분위기를 창조해 냈다. 레오나르도는 연극의 성격에 맞추어서, 결코 그림을 통해서는 접근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기상천외하고, 이국적이고, 기괴한 등장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291p :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유다의 얼굴에 대해서는 바사리의 책에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라치에 교회는 레오나르도에게 "작품을 서둘러 완성하라"며 계속 재촉하는 동시에 레도나르도가 게으르다고 루도비코에게 불평했다. 이런 교회의 태도에 대해 레오나르도는, 유다의 얼굴로 사용할 악한 얼굴을 찾고 있는 중인데 만약 찾을 수 없다면 "무뚝뚝하고 성급한 수도원장"을 모델로 사용하겠다고 루도비코에게 말했다. 이 말에 루도비코는 박장대소했고, "불운한 수도원장은 정원 일꾼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까 고민하던 끝에 사퇴했다."

346p : "모나리자"가 최고의 유명작품이 된 것은 현대의 일로, 초기 평론가들은 작품에 열광했지만 작품이 특별히 특이하다거나 특유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모나리자"가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은 19세기 중반이었다. 이런 현상은 북부 유럽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특히 레오나르도에 심취하면서 발생했고, "모나리자"가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면서 특정한 프랑스인들 특히 파리 사람들이 이를 더욱 부추겼다. 그녀의 형상은 요부에 대한 병적이고 낭만적인 공상, 당시 남성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유혹적이고 이국적인 "잔인한 미녀"의 개념과 단단히 연결되었다.

348p : (레오나르도의 그림중 특히 "모나리자"가 유명하게 된 이유를 작가는 1911년 발생하였던 루브르 박물관 도난사건에 있다고 생각함...) "페루자"는 원래 만테냐의 "화성과 금성"을 훔칠 생각이었지만, 크기가 더 작은 "모나리자"를 훔치기로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모나리자"는 절도와 회수로 말미암아 국제적인 명성을 굳혔다. 절도 사건이 신문에 대서특필되었고, 기념엽서가 발행되었고, 만화와 발라드, 카바레에서 공연되는 시사풍자극, 희극 무성영화등에 등장하기도 했다.

366p : 1505년, 레오나르도는 다시 한 번 인간의 비행 가능성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작은 노트에 꿈에 대한 메모와 설계도, 공상에 관련된 낙서를 가득 적었다. 현재 이 노트는 투린 코덱스라는 제목으로 투린 소재 왕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인간의 비행에 대해 가장 명확하면서도 목적에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장엄한 광경이 벌어지리라 선언한 유명한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커다란 새가 거대한 체체로(Great Cecero)의 등 위로 첫 비상을 할 것이다. 온 우주를 경이로 채우며, 온 역사를 명성으로 충만하게 하며, 자신이 태어난 둥지에 영원한 영광을 돌리며.’ ‘커다란 새’는 레오나르도의 비행기계를 일컫는 것이 분명하다. 레오나르도는 세련되고 매우 구체적인 데생을 통해 비행기계의 모습 일부를 보여주었지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전체 모습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의 선언에 따르면, 피렌체의 북쪽에 위치한 체체리(Ceceri) 산 정상에서 기계를 시험 비행할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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