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상사가 부하 직원이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다고 답답해한다. 잘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보고서를 들고 그것도 마감시간 임박해서 나타나는 부하 앞에서 상사들은 화가 나고 실망한다. 왜 그럴까? 상사와 부하는 경험의 차이가 있고 의식수준이 다르다. 그래서 앞에선 고개를 끄덕여도 사실 상사가 말하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2)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면 현지 외국인 직원과의 의사소통은 더 만만치 않다. 대기업 해외 법인장을 코칭할 때다. 현지에서 채용한 직원과 일하는 게 너무 답답하다고 호소하기에, 그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해보라고 했더니, "제발 좀 알아서 챙겨라"고 쏘아붙였다. 안타깝게도 외국어로 바꿔 말하기 어려운 표현이 '챙긴다'는 말이다. 게다가 '알아서'라는 엄청난 의미를 함축한 이 뜻을 어떻게 전달하겠는가? 우리가 자주 쓰는 함축적인 언어는 그 밖에도 많다. '잘 모셔라' '부탁한다' '눈치껏 해라' '잘 좀 해라' 등등. 서로 의미를 잘 아는 것 같은 그런 말들이 실은 주관적인 잣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하다.
3)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저서 '문화를 넘어서(Beyond Culture)'에서 고(高)맥락(High Context) 문화와 저(低)맥락(Low Context) 문화의 차이를 설명한다. 저맥락 문화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직설적이고 명료하며, 자기 의사를 말과 문자로 분명히 밝힌다. 반면 고맥락 문화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우회적이고 애매하며, 언어에 담긴 뜻이 함축적이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고려한다. 의사소통에서 의미 전달이 말이나 문자에 의존하는 부분이 클수록 저맥락 문화이고, 명시적인 표현이 적을수록 고맥락 문화다.
4) 일반적으로 동양은 서양에 비해 고맥락의 문화다. 그래서 솔직하고 정확하며 직설적인 서양인의 의사소통 방식이 동양인에게는 무례하게 받아들여지거나 대응하기가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같은 서양이라도 북유럽은 남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저맥락 사회라고 한다. 아마 남유럽의 그리스 사람이 요리법을 알려주면서 소금을 '조금' 넣으라고 하면 북유럽의 핀란드인들은 반문할 것이다. "몇 그램(g)이요?"
5) 우리의 고맥락 문화는 상세하게 만들어진 업무 매뉴얼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정해진 프로세스를 일일이 따지기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처리하는 게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친밀할수록 더 우회적이고 애매한 편이다. 배우자에겐 아예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알아주길 기대한다. "바쁜데 뭐하러 오냐?"는 부모님의 말씀은 오지 말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그런 줄 알았다간 불효자가 되기 쉽다. 거래처에 인사 좀 하고 오라는 상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정말 인사만 꾸벅 하고 왔다가는 눈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6) 고맥락 문화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커뮤니케이션에는 전달자(sender)와 수용자(receiver)가 있다. 전달자의 입장에서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말이나 글을 분명하게 잘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함축적인 얘기의 맥락 수준을 좀 낮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귀찮더라도 차근차근 상대의 의식 수준에 맞게 얘기해주는 게 필요하다. 반면에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상대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맥락을 잘 헤아리는 '맥락적 경청'이 필요하다. 맥락적 경청이란 말만 듣지 않고 말의 이면에 깔려 있는 상대방의 의도나 감정, 욕구까지 헤아려 듣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