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협상이나 설득 관련책들을 많이 봐왔던 사람들에게는 395페이지의 대부분 내용들이 좀 싱거울 수 있겠다. 얼핏보면 일반 대학교의 교양강좌 수준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몇가지 단순한 핵심원칙들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강조해 나가는 현실(?)적인 스타일에서는 왠지모르게 고수의 풍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복잡한 협상 프로세스와 이론에 매몰된 책들보다는 흥미롭고 술술 읽혀진다. 다만, 사례들 대부분이 너무 짤막하고 단편적이다. 좀 더 깊이가 있어야 겠다.

2) 솔직히 책만 봐서는 왜 이정도의 강의가 하바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가장 비싸다는 건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아무래도 강의를 책으로 100% 옮기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고, 내용자체가 책보다는 강의에 더 적합할 수도 있고... 그래도 평소 본인의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을 한번쯤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충분한 가치는 있다.

3) 결론 : 흥분하거나 화내지말자. 협상상대와는 인간적으로, 그리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소통하자. 협상의 끝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이 내용들은 무슨 수십억이 걸려있는 거창한 협상에서만 쓸수 있는 비법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관련부서와의 간단한 협의에서부터 실제로 적용해보자. 스튜어트 다이아몬드교수의 주문도 바로 이것이다. 실제 생활에서부터 활용하지 못하면 결국 아무 소용없다.

4) 관련 블로그 : http://www.gettingmore.com

5) 스튜어트 다이아몬드교수 인터뷰 기사 (2012.02.18) 중에서 : 보통 학생들은 직장을 찾을 때 "나는 이렇게 대우받고 싶다"는 말을 회사 측에 꺼내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인재를 찾고 계십니까?"라는 말을 회사 측에 먼저 건네라고 얘기한다. 상대방(회사) 입장을 먼저 잘 아는 게 승리의 지름길이라는 이유에서다."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17/2012021701273.html

6) 스튜어트 다이아몬드교수의 협상강좌에 대해서 : 이 강좌의 또 다른 매력으로 협상의 목적을 '성공과 실패(win or lose)'란 관점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깊은 공감을 통해 '더 얻는 것(getting more)'으로 파악하고 있는 점이다.
-->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17/2012021701310.html 



★ 아래는 책읽으며 줄친 부분들...

15p : 1)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라. 감정에 휘둘리면 협상을 망칠 뿐이다. 2) 주어진 시간이 단 5초밖에 없다 해도 반드시 준비를 하고 말하라. 협상 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3) 협상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의사결정자를 찾아라. 4) 누가 옳은지 따지지 말고 목표에 집중하라. 5) 인간적으로 소통하라. 사람과의 관계는 협상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큰 부분이다. 6) 상대가 가진 지위와 힘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그러면 이따금씩 상대가 당신을 도와주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19p : 협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목표 달성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부차적인 것들에 신경 쓰느라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는 행동을 하곤 한다. 협상에서 하는 모든 행동, 몸짓 하나까지도 오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되어야 한다.

26p : 만약 당신의 성향이 다소 공격적이라면, 미리 상대에게 그것에 대해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편이 낫다. "혹시 제가 도가 지나치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거든 지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반대로 지나치게 소심한 성격이라면 이렇게 말하자. "제가 저도 모르게 양보를 너무 많이 하면 나중에 상황을 되돌리게 될 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는 낯선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미리 양해를 구하는 편이다. "실수로 부적절한 말을 하거든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28p : 대부분의 중요한 협상에는 이성적인 요소뿐 아니라 심리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중요한 협상일수록 비합리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많다.

29p :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소통이 먼저다.

30p : 저자의 협상론을 함축하는 세가지 질문 1)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2) 상대방은 누구인가? 3) 설득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31p :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목표를 적고 계속 상기하라. 목표는 구체적일 수록 좋다. 가령 우주탐험이라는 목표보다는 달 탐사라는 목표가 더 좋다.

33p : 목표를 달성하려면 혼자만 잘 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도 잘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상대방이 그 어떤 혜택도 얻지 못하면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원하는 것을 얻게 해줄 필요가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협조적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경쟁적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나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거의 90퍼센트에 달한다. 경쟁보다 협력이 더 좋은 성과를 낳는다는 것을 잊지 말자.

33p : 일반적으로 힘과 협상능력은 반비례 관계다. (실제로 어른보다 아이가 협상을 잘한다.)

36p : 협상에서 과감한 시도는 상대방을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협상을 할 때는 너무 멀리, 너무 빠르게 나아가지 말아야 한다. 특히 양쪽의 입장차가 클 때는 더욱 그렇다. 점진적 접근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판단할 여지를 주고, 단계별로 확실한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나중에 원점으로 돌아갈 일이 안 생긴다.

41p : "사람이란 본래 자기 말에 귀기울여주고, 가치를 인정해주고, 의견을 물어주는 사람에게 보답하기 마련입니다. 그게 변하지 않는 사람의 본성이에요."

42p : 진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협상법을 이끌어내고 싶다면, 상대방이 꼴도 보기 싫을지라도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당신은 언제나 협상에서 가장 덜 중요한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상대방이다.

43p : 협상에서 합의에 이른 결정적인 계기가 전문 지식과 관계있는 경우는 채 10퍼센트가 되지 않는다. 반면 호감이나 신뢰처럼 인간적인 요소가 합의를 이끌어낸 경우가 50퍼센트 이상이었다. 그리고 협상에 성공한 사례의 37퍼센트는 절차적인 요소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44p : 협상에서는 내용보다 사람과 절차가 훨씬 중요하다.

48p : 모든 협상에는 최소한 세 사람이 관여한다. 실제 협상에 참여하는 두 명 외에 참여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제3자가 존재한다. 협상 참여자의 배우자나 동룍, 친구, 상사 등 참여자가 대화를 나누는 모든 사람이 제3자가 될 수 있다. 제3자의 시각은 참여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제3자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50p :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협상법이다. 

51p : 앞으로 신호 위반에 걸리면 경찰에게 먼저 정중하게 사과한 후 교통경찰의 노고에 감사하라. 이러한 행동은 교통경찰이 하는 일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뜻이므로 선처를 베풀어줄 가능성이 높다. 나는 교통경찰에게 걸릴때마다 최대한 그를 존중하는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60p : 진정한 의사결정자 혹은 의사결정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제3자를 찾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엉뚱한 사람을 붙잡고 협상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협상을 시도하기 전에 상대방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63p : 협상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의사소통의 실패다. 그리고 의사소통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인식의 차이다. 그렇다면 인식차이가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마다 관심사와 가치관 그리고 감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인식 체계에 맞지 않는 정보들은 무시한다. 그리고 협상을 할 때 자신의 시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기억한다.

68p : 상대방이 하는 말 이면의 숨겨진 진실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71p :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는 것 또한 좋지 않다. 말이 중간에 끊어져도 머릿속 테이프는 계속 돌아가게 마련이어서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중간에 말이 끊어져서 기분이 상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72p : 상대방의 인식을 파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순하다.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면 된다. 협상에서 질문은 단정적 말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협상에 있어 말을 할 때는 대부분 질문 형태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상대방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계속 체크할 수 있다. 앞으로 협상을 할 때는 말하는 형식을 단정적 말에서 질문으로 바꾸어라. "이건 공정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는 대신 "이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어라. 아이에게 "당장 방 청소해!"라고 말하는 대신 "방이 왜 깨끗하지 않을까?"라고 물어보라.

73p : "잠깐만요, 좀 도와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약간 혼란스러워서요...." 이렇게 상대방의 도움을 구하는 식으로 질문하는 방법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또 하나 효과적인 질문 방법은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달라고 상대에게 직접 요청하는 것이다. 상대가 만약 요청대로 틀린 부분을 지적했을 때는 솔직히 인정하면 그만이다.

74p : 효율적인 의사소통의 기본적인 요소 :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고 존중한다. 오고가는 대화 내용을 자주 요약한다. 감정을 배제한다. 목표를 자세하게 밝힌다. 결정하기 전에 상의한다. 누가 옳은지 논쟁하지 않는다.

75p : 소통을 할 때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듣고 질문한다는 것은 상대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협상에서는 당신의 말보다 상대방의 말이 더 중요하단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전달한 의미보다 상대방이 받아들인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77p : 뛰어난 협상가와 그렇지 않은 협상가의 행동 차이

 협상시 행동

뛰어난 협상가 

평범한 협상가 

 거슬리는 발언 : 자기자랑, 불공정한 지적

 2.3%

10.8% 

협상 시 창의적 선택 사항 고려 

 5.1%

2.6% 

비난 

 1.9%

6.3% 

정보 공유 

 12.1%

7.8% 

장기적 발전에 대한 발언 

8.5% 

4.0% 

공통 사항에 대한 발언 

38.0% 

11.0%  

78p : 뛰어난 현상가는 절대 목표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목표는 협상 전에 한번만 설정하고 마는 것이 아니다. 협상 중에도 자주 점검 해야 한다.

79p : 상대방의 이메일에 즉각 반응하지 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잘 알면서도 성급하게 반응한다. 이메일을 받은 지 30분 후 신중하게 작성해서 답신을 보내면 오해를 바로잡느라 들이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80p : 절대 흥분한 상태에서 이메일을 보내지 마라. 흥분하면 의도하지 않은 내용까지 쓸 수 있다. 쓰더라도 초고로 보관했다가 나중에 다시 수정하라.

84p : 과거나 미래 중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협상과 소송의 가장 큰 차이다. 소송은 과거를 놓고 서로 대립하지만 협상은 미래를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

89p : 항공사에서 표를 변경하는데 100달러의 수수료를 청구한다면, 과거에 한번도 예외를 둔 적이 없는지 물어라. 만약 있다면 예외 조항을 적용시켜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95p :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보다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드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중요한 것은 프레이밍과 점진적 접근법을 통해 상대방이 원하는 곳으로 가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이 방법은 무척 효과적이다.

101p : 상대를 이기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면, 정작 협상의 진정한 목표를 잊어버리기 쉽다. 승패나 지나간 일 혹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된다. 오직 목표와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105p : 뛰어난 협상가들은 명백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힌다. 나쁜 행동을 지적할 때도 직설적으로 "꼭 고함을 질러야 합니까?" 라거나 "지금부터 말을 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방법은 관계를 맺는 일에 관심이 없고 공격 일변도로 나오는 사람을 상대할 때 효과적이다. 상대방이 거칠게 나올수록 오히려 더욱 차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123p : 뛰어난 협상가가 되려면 태도부터 바꾸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안에 숨겨진 기회를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회를 찾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문제를 장애물로 보지 말고 이제껏 발견하지 못한 기회로 생각하라.

130p : 감정적 행동은 효율적인 협상의 걸림돌이자 뛰어난 협상의 적이다. 감정적으로 변한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또한 목표 의식을 잃어버리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반면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므로 협상에 도움이 된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감정은 협상에 방해가 되며, 상대에게 집중하는 공감은 협상에 도움이 된다.

132p :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위협하는 것을 하나의 협상 도구로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위협은 가장 효과가 약한 협상 도구다. 상대가 격한 감정에 휩싸이면 어떤 무리한 행동도 서슴지 않게 된다. 다시 말해서 감정적으로 변한 상대방은 더 이상 당신의 위협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133p : 우리는 실질적인 이득을 생각하기보다 상대방과 비교를 하면서 비합리적인 판단을 할 때가 많다.

135p : 상대방이 화났을 때 덩덜아 화내는 것은 도움이 도지 않는다. 이성적이고 냉정함을 유지해야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상대방의 감정에 휩쓸리지 마라. 협상에서 분노의 표출은 자살 행위와 같다.

142p : 대부분의 기업은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을 협상에 내세운다. 하지만 연구 결과 협상에 참가하는 사람의 권한이 강할수록 상대방의 니즈에 주의를 덜 기울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말은 파이를 키울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은 가장 직급이 낮은 사람이 적임자일 수 있다.

146p : 협상시 절충적 성향인 사람의 특징 : 더 적게 얻는 경우가 많다. 목표에 미달하더라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일이 어떻게 해결되는지가 아니라 일이 얼마나 빠르게 해결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의견 차이가 생기면 절충을 시도한다. 바쁜 사람들이 대개 이러한 경향을 보인다. 협상 과정 중에 가장 먼저 제시된 합리적인 옵션을 선택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를 선호한다. --> 처음부터 절충하려 하지 말고 모든 수단을 동원한 후에도 여전히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때 절충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내도록 하라.

153p : 협상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외적 요소의 동질성보다 심리적 연대감을 이루는 게 훨씬 중요하다.

163p : 동질성보다 차이가 더 많은 혜택을 가져다준다. 의견이 달라야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다. 비록 초반에는 서로 감정이 상하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험하는 산만한 과정, 격렬한 의견 대립, 다양한 아이디어의 조합은 결국 뛰어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1분면 - 문제 파악과 목표 수립

1) 목표수립 : 단기, 장기 목표를 세워라

2) 문제파악 : 목표달성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3) 관계자구분 : 상대방, 의사결정자, 제3자의 목록을 작성하라

4) 최악의 시나리오 예상 : 협상 결렬시 예상되는 상황을 생각하라

5) 준비 :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모두 수집하라 


2분면 - 상황 분석

6) 니즈와 관심 파악 : 양측의 니즈와 관심이 무엇인가?

7) 상대에 대한 인식 : 양측의 머릿속 그림은 무엇인가?

8) 의사소통 방식 파악 : 의사소통 스타일과 관계는 어떠한가?

9) 표준에 대한 인식 : 상대방이 지키는 표준은 무엇인가?

10) 목표 재검토 : 상황 판단에 따른 목표 조정이 필요한가? 

3분면 - 옵션 선택과 리스크 대처

11) 브레인 스토밍 : 목표 달성을 위한 옵션은 무엇인가?

12) 점진적 접근 방법 설정 : 위험을 줄이는 중간 단계를 설정하라

13) 제3자의 존재 파악 : 공동의 적이나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있는가?

14) 프레이밍 확립 : 비전을 만들고 창의적으로 질문하라

15) 대안 마련 :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다른 옵션을 찾아라

4분면 - 행동

16) 최선의 방법과 우선순위 결정 : 협상에 결정적 요인과 포기해야 할 것들을 파악하라

17) 협상 방식 숙고 : 누구에게,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18) 절차 인지 : 의제, 시한, 시간 관리에 소흘하지 마라

19) 계약 사항과 인센티브 확인 : 상대방에게 직접 확인하라

20) 후속 진행 : 누가, 무엇을 진행할 것인가?

186p : 원하는 것을 얻는 협상 모델을 위한 열두 가지 전략 1) 목표에 집중하라. 2) 상대의 머릿속그림을 그려라. 3) 감정에 신경써라. 4) 모든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라.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8) 절대 거짓말을 하지마라. 9) 의사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11) 차이를 인정하라.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200p : 협상을 앞두고 자신감을 얻는 확실한 방법은 준비밖에 없다. 더 많이 준비할수록 불안감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201p : 가능한 편하게 상대방을 대하라. 공공의 적을 찾든지 날씨나 교통정체에 대해 불평하든지 혹은 상대방의 복장이나 시계를 칭찬하라. 중요한 점은 모든 것에 진심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협상에서 일상적 대화는 협상의 본 내용만큼 중요하다. 농담이나 흥미로운 화제에 대한 대화는 협조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02p :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면 즉시 휴식을 가져라.

203p : 어떤 형태로든 시간의 압박은 협상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마감에 쫓긴다면 시간을 조정하거나 협상을 아예 거부하라.

203p : 같은 말이라도 정중하고 친근하게 표현해라. 가령 "당신을 믿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대신 "어떻게 해야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라.

204p : 상대방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면 점진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라. 가령 "이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라고 말하지 말고 "이 그림 참 흥미롭네요."라고 말하라.

206p : 많은 협상이 겉도는 이유는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을 놓고 서로 다투기 때문이다.

223p : 연봉협상시, 상사에게 연봉을 올려주는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물어라. 그후 어느 정도의 인상이 가능한지를 물어라.

224p : 만일 당신이 고용주라면, 당연히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을 것이다. 지원자에게 자신의 신뢰성을 증명할만한 사례를 말해보라고 하라. 또한 살면서 누군가의 시험에 들었던 적이 있는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정말로 어려운 일을 한 적이 있는지 물어라.

225p : 당신이 지원자라면, 회사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은 당신이 입사에 대해 얼마나 강한 동기를 가졌는지, 얼마나 자발적인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233p : 결코 상대방에게 한번에 모든 것을 요구하지 마라.

245p : 협상에 표준을 활용할 때는 구체적인 근거를 대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서의 사본을 요구하고, 당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문서의 사본을 제시하라.

246p : 될 수 있으면 가능한 많이 상대방과 인간적으로 소통하라. 그러면 구매자는 더 많이 지불하려고 할 것이고 판매자는 더 적게 받으려 할 것이다. 인간적 소통은 공격적 태도가 만연한 세상에서 돈을 대신하는 가치를 지닌다. 

258p :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이 나오거나,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협상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시작하라. 그 누구도 당신에게 오늘 협상을 끝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협상 절차를 컨트롤하여 더 많이 얻어내라.

292p : 상대방이 잘못한 행동에 대한 증거가 많을수록 말투는 더 부드러워야 한다.

293p : 대부분의 사람들은 협상에서 상대방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관계를 손상시킬 뿐이며, 도리어 상대방으로부터 나쁜 행동을 지적당하기 쉽다. 양쪽이 편안하게 느끼는 장소에서 협상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협상을 편안한 대화로 만들면 상대방도 열린 자세로 임할 것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를 풀려면 만나서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게 최선이다. 어려운 일일수록 직접 만나서 풀어야 한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이메일을 써서 예외를 적용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예외를 적용하는 것은 커다란 특혜이므로, 직접 얼굴을 보며 정중하게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295p : 압박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보다는 먼저 자세를 낮추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302p : 어떤 경우라도 문제가 생겼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협상상대에게 뜸들이지 말고 곧바로 알리는 게 좋다.

312p : 아이의 투정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질문하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 나빠!" 라고 말하거나 "동생 미워!"라고 말하면 "그런말 하면 안돼!"라고 혼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까?" 라고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315p :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많은 부모들은 아이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이의 말을 잘 듣는다고 착각한다. 만일 당신이 아이를 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어른을 대하면, 어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해보라. 아이가 말할 때 돌아보지도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은 아이에게 모욕감을 준다. 더욱 끔찍한 결과는 아이들이 그런 태도를 그대로 배운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대한 방식을 결코 잊지 않는다. 따라서 아이가 부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면 먼저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316p : 아이가 토다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고, 무조건 아이는 어른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은 무척 위험하다. 이런 태도는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더 이상 어른의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할 방법을 궁리하게 된다.

317p : 어릴 때 권한을 부여받은 아이는 10대가 되었을 때 부모에게 반항할 가능성이 낮다. 10대 자녀와 갈등을 빚는 이유는 대개 아이가 어릴 때 부모가 협상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열세 살이 되면 부모로부터 멀어지려고 한다. 그들에게는 가족보다 친구가 더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335p :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보상을 받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약하게 굴라는 말이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끈질긴 자세가 필요하다. 안 된다는 말에 쉽게 돌아서지 말고 거듭 협상을 시도하라.

341p : 거듭 강조하지만 여행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고객에게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

356p : 사람들은 언제나 서비스 담당자들을 닦달한다. 그러니 당신만큼은 그들에게 한숨 돌릴 시간을 주어라.

368p : 계약의 가치는 무엇일까? 변호사들은 계약이 법률 체계의 토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계약의 기원은 사람들에게 약속을 강제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계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고 쓸 줄 몰랐기 때문에 생겼다. 계약은 사람들이 합의한 사항을 기억하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했을 뿐이다. 무엇을 약속했는지 확실하지 않을 때에는 서기가 그 내용을 읽어주었다.

385p : 상대방을 설득하는 최선의 방법은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혜택을 주는 것이다.

386p : '친구를 가까이 두고, 적은 더 가까이 두어라.'라는 말을 떠올려보라. 적을 더 가까이 두어야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388p : 배고프고 헐벗은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나오기 쉽고, 감정적인 사람들은 설득하기 어렵다. 그들을 위한 감정적 지불은 두말할 것 없이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389p : 미국이 대규모 테러를 성공적으로 막고 싶다면 테러범들의 나라에 음식과 옷, 집, 일자리,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 스스로 극렬분자들의 테러를 막는 일에 나서게 된다. 그들을 강제로 억압하는 것으로는 결코 테러를 막을 수 없다.

392p : 강경파를 죽이기보다 온건파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 비용을 줄이고 성공 확률을 높이는 협상 전략이다.



★ 책말미에 출판사가 제공하는 요약본중에서...

2p : 협상에 있어 목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갖가지 화술과 기술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협상 중도에 목표를 잊은 채 협상 자체에 몰두하는 일은 없도록 한다. 목표를 정했다면, 협상에서 하는 행동들이 목표달성에 도움이 되는지 계속 자문하라. 또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혼자만 잘되고자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도 잘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도 잊지 마라.

3p : 모두가 만족할 만한 협상법을 이끌어내고 싶다면, 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언제나 당신은 협상에서 가장 덜 중요한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상대방이다. 과거에는 주로 협상 사안과 이익에 초점을 맞춘후, 이에 맞춰 어떤 제안을 할지 궁리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진짜 효과적인 협상법은 상대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오늘 상대방의 기분은 어떤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머릿속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6p : 진정한 의사소통이란 무조건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듣고 질문한다는 뜻이다. 협상에서는 당신의 말보다 상대방의 말이 더 중요하단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전달한 의미보다 상대방이 받아들인 의미가 더 중요하다.

8p : 협상의 끝은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다.

10p : 흔히 협상 테이블에 오른 사안들이 많을수록 협상이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 중 하나다. 사실은 그 반대다. 그만큼 교환할 대상이 늘어나기 때문에 훨씬 유리하다.

11p : 협상에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방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상대방이 무례하거나 불공정한 태도를 보여도 쉽게 흥분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상대방이 기대치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적으로 기분이 좋아져서 협상이 훨씬 부드럽게 진행된다.

23p : 상대방을 위협하는 것은 명백한 관계파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비즈니스에서 종종 상대방을 위협한다. 위협이 사이를 갈라놓고, 공포와 복수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사실 연대감을 형성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위협이 아니라 감정적 지불이다.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 역시 감정적 지불이다.

32p : 사회적 문제에 대한 협상에서는 상대의 근본적인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오직 정치인들만 평화, 민주주의, 이상 같은 가장 높은 단계의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먹을 음식과 잘 집도 없는 상태에서 누가 이런 이상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겠는가. 세계식량기구의 식량안보국 부국장인 아리프 후사인은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더 쉽게 화를 냅니다."라고 말했다.

32p : 낙태 문제 역시 초점을 '생명에 대한 권리'와 '선택에 대한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늘어나는 낙태'와 '줄어드는 낙태'의 문제로 옮겨야 한다. 점진적 단계에 초점을 맞추면 낙태 건수를 줄일 수 있다. 그 와중에 양쪽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도 나올 것이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피임등 확실한 옵션을 확보하여 점진적 단계를 밟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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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몬스터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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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순모
    2012.08.07 14: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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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얼마전에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처음에 여자분이 비행기를 멈추게 한 것과 "항상 협상하라"라는 것이 남더군요. ^^
  2. 2012.08.08 22:3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매일 많은 협상을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꼭 한번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1) 스티브 잡스와 관련된 책들은 수도 없이 많다. 무엇이든 3-4권 이상 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 9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내용들 중 절반 이상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 감춰져 있었던 스티브 잡스의 사생활과 가족관계, 그리고 사업상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 때문이다. 

- 스티브 잡스의 어린 시절과 양아버지 폴 잡스에 대한 얘기
-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나기까지의 좀더 자세한 내막 (스티브 잡스 나이 30) 
- 스티브 잡스의 여인들 : 크리스앤 브레넌, 존 바에즈, 제니퍼 이건, 티나 레지, 로렌 파월까지...
- 마치 아침 드라마(?)와도 같은 복잡한 가족 관계 : 친여동생 모나 심슨, 생모 조앤 시블(조앤 심슨),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 친자확인 DNA검사까지 했던 딸 리사 브레넌...
- 맥의 차세대 OS로 고려대상이었던 윈도우NT, BeOS, NeXT간의 대결구도 및 자세한 협상과정
- iTunes 스토어를 위한 음반사들과의 협상과정 + 윈도우용 iTunes 개발을 위한 내부진통
- 스티브잡스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밥딜런, 비틀즈, 요요마...)와 노래에 얽힌 얘기들...
- 아이팟 U2에디션이 나오게되기까지의 애플과 U2의 흥미진진한 협상 과정
- 디즈니와 픽사의 드라마틱한 인수합병과정...  
- 형식적으로는 연봉 1달러에 CEO직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스톡옵션에 은근히 욕심(?)이 많았다는 사실... 
- 스티브잡스의 터틀넥 유니폼에 대한 얘기... 원래 잡스는 (소니를 벤치마킹하여) 애플직원들을 위한 작업복(?)을 만들려고 했었다는 사실... ㅡ,.ㅡ;;  
- 2005년, 아이폰 프로젝트보다 아이패드 프로젝트가 먼저 진행중이었다!
- 어느 스마트폰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고릴라 글라스가 사실은, 1960년대에 개발된 것이었고, 현재 코닝은 고질라 글라스라는 초강력 유리 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 췌장암 수술(2004년 7월)과 간이식수술(2009년 3월)등 암투병과 병가에 대한 얘기들 
- 자신만의 요트설계 프로젝트 (네덜란드 피드쉽에서 건조중...)
- 자식들에 대한 얘기 : 아들 리드 잡스에게는 지극한 사랑을 보여줬으나, 딸 3명과의 관계는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다. 리드 잡스는 아버지의 투병을 계기로 스탠퍼드 암연구소에서 여름방학마다 일하기 시작했고, 의사나 암연구원이 되고 싶어함... 
- 오바마 대통령의 2012년 재선을 위해 광고제작을 도와주려고 했던일...

2) 다만, 스티브 잡스의 갑작스런 사망이후, 출판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조금 서둘렀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좀더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수박겉핥기식으로 대충 나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의 전체 흐름과 구조도 대체로 단조로운 편이다. 스티브 잡스와의 수십차례 인터뷰내용이 그다지 반영이 안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 ㅡ,.ㅡ;;

아무래도 1-2년후, 1000페이지가 넘는 개정증보판이 등장할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무튼, 자신의 전기라는 또다른 형태의 놀라운 제품(?)으로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킨 스티브 잡스는 아무리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이전글] 2011/11/01 - 애플 매킨토시 개발비화 : 미래를 만든 Geek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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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글] 2009/01/04 - 위기에서 빛나는 잡스의 생존본능 (Inside Steve's Brain) ★★★★☆
[이전글] 2006/01/26 - [bOOKS + mAGAZINES] - iCon 스티브 잡스 ★★★★★



27p : 그의 아버지 폴 잡스는 캐비닛이나 울타리 같은 것을 만들 때에는 숨겨져 잘 안 보이는 뒤쪽도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다. "아버지는 일을 제대로 하는 걸 철칙으로 여기셨지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면서 말이에요."
 
37p : 4학년 말, 힐 선생은 잡스가 수학 능력을 평가받도록 조처했다.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수학 능력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지요." 그의 회상이다. 이제는 잡스 자신과 부모뿐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그가 지적으로 특별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39p : "신앙보다는 예수님처럼 살거나 예수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오히려 신앙 그 자체만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기독교가 핵심을 잃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말한다. "각 종교는 동일한 집에 들어가기 위한 각기 다른 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떨 때는 그 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떨 때는 안 그래요. 엄청난 미스터리지요."

71p : 동양종교, 특히 선불교에 대한 잡스의 관심은 단지 한때의 흥미나 젊은 시절의 취미가 아니었다. 그는 특유의 열성으로 그것을 받아들였고, 결국 자신의 인성 깊은 곳에 뿌리내리게 했다. "스티브는 선에 심취한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에 받은 영향이 더욱 깊어진 거지요. 그의 모든 접근 방식은 순수한 미니멀리즘적 미학과 강렬한 집중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다 선에서 얻은 겁니다." 잡스는 또한 불교에서 강조하는 직관적 통찰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직관적 이해와 자각이 추상적 사고와 지적 논리 분석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80p : "LSD는 심오한 경험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였지요. LSD는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할 수 없었지만 뭔가를 보았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저의 인식을 강화해 주었습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멋진 무언가를 창출하는 것,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역사의 흐름과 인간 의식의 흐름 속에 되돌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93p : 저는 선불교의 진리를 깨우쳤습니다. "스승을 만나고자 세계를 돌아다니려 하지 말라. 당신의 스승은 지금 당신 곁에 있으니..."

102p : "나는 그에게 어떤 일이든 그것을 해낼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해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굴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줄로 알 것이다.' 이게 내가 그에게 강조한 말입니다." --> 아타리 공동 창업자 놀런 부시넬

108p : "신뢰성 있게 작동하는 도구와 기계들에서 나는 신을 목격한다" (벅민스터 풀러)

108p : 잡스는 이 카탈로그의 열렬한 팬이 되엇다. 특히 고등학생이던 1971년에 나온 최종판에 크게 매료되었는데, 그는 대학 생활을 할 때와 All in one farm 에서 지낼 때도 이 카탈로그를 곁에 두었다. "최종판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의 시골길 사진이 실려 있었어요. 모험심 가득한 사람이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을 법한 그런 길요.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llish." --> 스튜어트 브랜드가 1968년 출간한 <더 홀 어스 카탈로그> http://www.wholeearth.com/index.php
 
130p : 잡스는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미끈한 애플2 케이스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 모임에서 지역 컨설턴트인 제리 매녹에게 1500달러를 줄 테니 그런 디자인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잡스의 외모가 미덥지 않았던 매녹은 돈을 선불로 달라고 했다. 잡스는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고, 결국 설복을 당한 매녹이 일을 맡기로 했다.

136p : 마이크 마쿨라 (당시 33세, 페어차일드와 인텔에서 일했다. 인텔이 상장하면서 행사한 스톡옵션으로 부자가 됨. 애플의 최초 투자자. 9만1천달러는 현금으로, 25만달러는 은행신용보증으로 투자함.)는 잡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마쿨라는 잡스의 양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고집을 포용해 주지만, 나중에는 친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를 버린다.) 마쿨라는 잡스에게 마케팅과 세일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잡스는 말한다. "마이크는 제게 보호막 같은 존재였어요. 저와 가치관도 굉장히 비슷했고요. 그는 절대로 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회사를 차려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쏟아부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오래도록 생명력을 지닐 회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지요."

138p : 레지스 매케나의 회사는 애플2의 제품 소개 팸플릿을 제작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론 웨인이 만들었던 고풍스러운 회사 로고를 바꾸는 것이었다. 로고 디자인은 아트 디렉터 롭 자노프가 맡았다. 잡스는 "너무 유치하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자노프는 간단한 사과 모양의 두 가지 시안을 만들었다. 하나는 온전한 사과 그림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이었다. 그냥 사과 그림은 마치 체리처럼 보였기 때문에 잡스는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을 택했다. 이 사과의 제일 위쪽은 초록색, 제일 아래쪽은 파란색으로 모두 여섯 색깔 줄무늬가 들어가 있었다. 로고 인쇄에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디자인이었지만 잡스는 이 도안으로 결정했다. 매케나는 애플2 팸플릿 상단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것으로 알려진 문구를 찍어 넣었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그리고 이후 이 말은 잡스가 지향하는 디자인 철학의 핵심 뼈대가 된다.

 
141p : 잡스의 위생 문제도 불거졌다. 잡스는 자신이 야채와 과일만 먹으므로 샤워를 할 필요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또 잡스는 때때로 스트레스를 푼다면서 변기에 발을 담그곤 했다. 동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22살때...)

143p : 잡스는 남을 통제하기는 좋아했지만 권위적인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 것은 극도로 싫어했다.

143p : 한번은 직원 이름표 번호를 매기는 문제로 갈등이 불거졌다. 마이크 스콧은 워즈에게 1번을, 잡스에게 2번을 배정했다. 그러자 잡스는 자기가 1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 줄 순 없었습니다. 훨씬 더 기고만장해졌을 테니까요." 스콧의 말이다. 잡스는 불끈 화를 내면서 눈물까지 보였다. 그러다 마침내 해결책을 제안했다. 자신에게 0번을 달라는 것이었다. 스콧은 잠시 그럴까도 생각했지만, 급여 통장 개설 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임금 대장 명부의 숫자를 양의 정수로만 기재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에 잡스는 2번으로 남아야 했다.

144p : 두 사람은 (마이크 스콧과 스티브 잡스) 애플2의 케이스 디자인을 놓고도 충돌했다. 플라스틱 케이스 색깔을 결정하기 위해 애플이 선택했던 색상 전문 업체 팬톤 사는 2000가지 종류의 베이지색을 갖추고 있었다. 스콧은 이렇게 회상한다. "세상에, 스티브는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했어요. 좀 더 다른 베이지색을 원했어요. 결국 제가 나서서 설득해야 했지요." 케이스 디자인의 세부적인 부분을 조율할 때도 잡스는 모서리 부분을 어느 정도로 둥글게 만들어야 할지를 놓고 며칠동안 고민했다. 또 다른 논쟁은 작업대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스콧은 평범한 회색 작업대를 쓰자고 했지만, 잡스는 흰색 작업대를 특별 주문해서 쓰자고 주장했다.

144p : 잡스는 고객을 대우하는 방식에서 애플이 타사와 달라야 한다면서 애플2의 제품 보증 기간을 1년으로 하자고 고집했다. 스콧은 깜짝 놀랐다. 전자 제품의 일반적인 보증기간은 90일이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이 문제로 언쟁하면서 눈물까지 보였다. 두 사람은 주차장을 함께 걸으면서 마음을 진정시켰고, 결국 스콧이 양보하여 잡스가 원하는 대로 보증 기간을 1년으로 결정했다.

145p : 워즈는 잡스의 스타일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사람들을 너무 무례하게 대했어요. 저는 우리 회사가 가족적인 분위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일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공간 말입니다."

145p : 애플2는 향후 16년간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며 600만대 가까이 판매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컴퓨터가 PC업계를 탄생시킨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워즈는 이 놀라운 회로 기판과 관련 운영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역사적 공로를 인정받을 만하다. 그러나 워즈의 고안물을 전원 장치와 근사한 케이스까지 갖춘, 사용자 친화적인 패키지로 변신시킨 인물은 바로 잡스였다. 또한 잡스는 워즈의 기계들을 중심으로 회사를 일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레지나 매케나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워즈는 놀라운 기계를 설계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아마 그 물건은 지금도 컴퓨터 애호가들이 드나드는 상점에만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애플2가 워즈의 창조물이라고 여겼다. 이것이 잡스로 하여금 자신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창조물을 만들도록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151p : "스티브는 크리스앤이나 그녀의 임신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는 어느 순간 상대방에게 완전히 몰두하다가도, 또 어느새 차갑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오싹할 만큼 냉정한 면이 있는 친구였지요." (그레그 칼훈)

152p : 묘한 아이러니가 하나 있다. 잡스와 브레넌은 둘 다 23살이었는데, 조앤 시블이 잡스를 임신했을 때 조앤 시블과 압둘파타 잔달리도 23살이었다는 점이다. 잡스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 본 적은 없었지만, 양부모에게서 친부모 이야기를 조금씩 들은 적은 있었다. "그땐 우리나이와 제 친부모가 저를 가질 당시의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앤과 임신문제를 얘기하는 데 그 사실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어요." 훗날 그가 말했다. 잡스는 자신이 23살때 현실과 책임감을 직시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전철을 비슷하게 밟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153p : 1978년 5월 17일 브레넌은 예쁜 여자아이를 낳았다. 사흘 후 잡스는 그곳으로 날아가 아기의 이름을 짓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아기에게 '리사 니콜 브레넌'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기의 성에는 '잡스'를 넣지 않았다.

180p : (애플의 기업공개이후)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베푼 대상은 부모님인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였다. 잡스는 부모에게 약 75만 달러어치 주식을 전달했다. 잡스의 부모는 주식 일부를 팔아 로스앨터스 집의 대출금을 갚았다. 잡스의 부모는 이후 더 크고 좋은 집을 장만하지는 않았다. "두분은 그런 데는 관심이 없었어요. 당시의 삶에 충분히 만족스러워하셨거든요." 그들의 유일한 사치는 1년에 한 번씩 휴가로 프린세스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일이었다. 

206p : 하루는 잡스가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던 엔지니어 래리 케니언의 작업 공간으로 찾아갔다. 그러고는 부팅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캐니언이 변명을 하려고 하자 잡스는 그의 말을 끊었다. "만약 그걸로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수 있다면 부팅시간을 10초 줄일 방법을 찾아볼 의향이 있는가?" 그가 물었다. 케니언은 그럴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잡스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더니 만약 맥 사용자가 500만 명인데 컴퓨터를 부팅하는 데 매일 10초를 덜 사용한다면 그들이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이 연간 3억 시간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100명의 일생에 해당되는 시간이었다. "래리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고, 몇 주 후에 보니 부팅 시간을 28초나 앞당겨 놓았어요." 앳킨슨은 회상한다. "스티브는 큰 그림을 보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212p : "신은 디테일 속에 존재한다."

218p : 매킨토시 폰트디자인을 위해 앤디 허츠펠드는 필라델피아 외곽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 수잔 케어를 영입했다. 

220p : 잡스는 매킨토시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모든 애플 제품을 위한 일관된 디자인 언어를 창출하길 원했다. 그래서 제리 매녹과 '애플 디자인 길드'라는 이름의 비공식적인 그룹의 도움을 받아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뽑기 위한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거기서 뽑힌 디자이너는 디터 람스가 브라운을 대포했듯이 애플을 대표하게 될 터였다. 그 프로젝트 코드명은 '백설공주'였는데, 흰색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디자인될 제품들의 코드명이 일곱 난장이들 이름을 딴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승자는 소니의 트리니트론 TV를 디자인한 독일의 디자이너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였다. 잡스는 그를 만나기 위해 독일 바이에른 주의 슈바르츠발트까지 날아갔다. 그는 에슬링거의 열정뿐만 아니라, 시속 160킬로미터로 벤츠를 모는 기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221p : 에슬링거는 독일인이었지만 "애플의 DNA를 위한 미국 특유의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그럴 경우 "할리우드와 음악, 반항심, 그리고 자연스러운 섹스어필"을 바탕으로 한 "캘리포니아식 글로벌" 느낌이 창출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의 제일 원칙은 "형태는 감정을 따른다."였다. 그는 그 개념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40개의 목업을 만들었고, 그것을 본 잡스는 소리쳤다. "그래, 바로 이거야!" 애플IIc에 즉각 적용된 그 '백설공주' 디자인은 흰색 케이스, 간결하고 둥근 모서리, 그리고 통풍과 장식을 위한 얇은 홈들이 특징이었다. 잡스는 에슬링거가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옮기는 조건으로 계약을 제안했다. 에슬링거의 프로그디자인 회사는 애플과 120만 달러상당의 연간 계약을 맺고 1983년 중반 팔로알토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후부터 모든 애플 제품에는 "designed in California"라는 문구가 포함되었다.

221p : 프로그디자인 --> 에슬링거가 애초에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개구리의 탈바꿈 능력을 고려하는 동시에 회사의 뿌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frog = Federal Republic Of German (독일연방공화국)의 머리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말한다. "이름을 소문자로 쓴 이유는 바우하우스의 비계급적 언어에 경의를 표하며 회사의 민주적 기풍을 강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247p :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의 임시 사장직이 결코 반갑지 않았다. 그는 새로 장만한 집의 구조를 디자인하거나 전용기를 타고 비행하는 것을 즐겼고 스톡옵션을 행사해 넉넉한 삶을 즐기는 데 만족했다. 갈등을 조정하거나 자아가 강한 까다로운 인물들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마쿨라는 마이크 스콧이 사임한 이후 마지못해서 사장직을 맡은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잠시 동안만 사장 자리를 맡는 것뿐이라고 장담했다. 마쿨라가 사장직에 앉은 지 거의 2년이 가까워 가던 1982년 말, 그의 아내는 당장 새로운 적임자를 찾아보라고 다그쳤다. 잡스는 회사를 이끌고 싶은 마음이 약간은 있었지만 자신이 그 자리를 맡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거만한 성격임에도 스스로에 대한 자각은 있었던 것이다. 마쿨라도 잡스와 같은 의견이었다. 마쿨라는 잡스가 애플의 사장을 맡기에는 아직 너무 거칠고 미숙하다고 그에게 말했다.

254p : 스컬리는 이렇게 회상한다. "연봉 100만 달러에 입사 보너스 100만달러, 고용 계약이 예기치 않게 조기 종결되는 경우 퇴직금 100만달러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255p : 마쿨라는 스컬리를 설득해 연봉 50만 달러와 보너스 50만 달러라는 조건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259p : 스컬리의 단점 가운데 하나는 사내 문제를 조정할 때 직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다는 점이었고, 이는 분명 잡스와 다른 면이었다. 쉽게 말해서, 스컬리는 정중하고 예의바른 타입이었고, 잡스는 그 반대였다. 직원들을 건방지고 무례하게 대하는 잡스의 모습을 보고 스컬리는 깜짝 놀랐다.

281p : 잡스가 매킨토시를 세상에 선보인 그날 파퓰러 사이언스의 기자 하나가 어떤 방식으로 시장조사를 했느냐고 잡스에게 물었다. 잡스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시장조사같은 걸 하고 전화를 발명했습니까?"

297p : 애플이 제록스 PARC가 개발한 것들에 대한 사용권 계약을 맺긴 했지만, 다른 회사들이 유사한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애플이 나중에 깨달았듯이, 컴퓨터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모습과 느낌'은 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보호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잡스의 심정도 이해할 만했다. 사실 애플은 창조력과 상상력이 더 풍부했으며 실현해 내는 방식도 더 품격 있었고 디자인 역시 더 뛰어났다. 하지만 남의 것을 대충 모방하여 일련의 제품을 생산했다 해도 결국 운영체제 전쟁의 승자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이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일종의 심미적 결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가장 품질이 높고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315p : 예술가로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고 싶다면 자주 뒤돌아보면 안됩니다. 그동안 무엇을 해왔든, 어떤 사람이었든 다 버릴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바깥세상이 당신에게 '이게 바로 너'라는 식으로 모종의 이미지를 강요할수록 예술가는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지요. "안녕, 나 이제 가야 돼. 나 미칠 거 같으니까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그러고는 어딘가로 가서 은둔해 버립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중에 약간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수도 있지요. <잡스가 서른이 되던 해, 플레이보이와 가졌던 인터뷰>

322p : "스컬리는 가급적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 주고 관계에 신경쓰는 유형이었어요. 스티브는 그런 것에 콧방귀도 안 뀌었고요. 하지만 그는 스컬리로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품에 정성을 쏟았고, A급 직원이 아닌 모든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애플에 얼간이들이 눌러앉지 못하게 했지요."

358p : 그가 정한 새 회사의 이름은 다소 간단하면서도 밋밋한 '넥스트'였다. 여기에 좀 더 독특한 색깔을 덧입히기 위해서 그는 세계적 수준의 로고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기업 로고 디자인 분야의 전설적 인물인 폴 랜드에게 구애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브루클린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71세의 랜드는 에스콰이어, IBM, 웨스팅하우스, ABC, UPS등 유수 기업의 로고를 디자인한 인물이었다. 랜드는 팔로알토로 찾아가 잡스와 산책을 하면서 그가 구상하는 비전에 대해 들었다. 잡스는 정육면체 형태의 컴퓨터를 구상중이라고 설명했다. 정육면체는 평소 그가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랜드는 회사 로고도 정육면체 모양으로 하되, 경쾌하게 28도쯤 기울인 형태로 디자인하기로 했다. 잡스는 여러개 중에서 고를 수 있도록 다양한 시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랜드는 고객을 위해 '여러 가지 시안'을 만들지는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고 당신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입니다. 내 디자인을 쓰든 안 쓰든, 그건 당신 마음이오. 하지만 난 여러 시안을 만들진 않습니다. 그리고 내 디자인을 쓰든 안 쓰든, 비용은 지불해야 합니다." 잡스는 랜드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자신과 비슷한 면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당히 대담한 제안을 내놓았다. 군소리 않고 무조건 10만달러를 지불할 테니 죽이는 로고를 '하나만' 디자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359p : 랜드는 'e'자를 짙은 노란색으로 칠했는데 잡스는 좀 더 밝고 평범한 노란색으로 바꾸길 원했다. 랜드는 주먹으로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했다. "나는 이 바닥에 50년이나 있었소. 뭘 알고나 얘기하시오." 잡스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408p : 잡스가 서른할 살 되던 해 (애플서 쫓겨나고 1년후) 자신을 입양시킨 생모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잡스는 자신의 출생증명서에 적힌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의사 이름에 주목하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그 의사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그 의사는 화재로 인해 예전 환자들의 기록이 소실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의사는 전화를 끊자마자 편지 한장을 써서 봉투에 담고는 밀봉했다. 그리고 봉투 겉면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사망 후 스티브 잡스에게 전달할것." 얼마 후 그가 죽자, 그의 미망인이 잡스에게 그 편지를 보냈다. 잡스의 어머니가 위스콘신 출신의 미혼 대학원생이었으며, 이름은 조앤 시블이라는 내용이었다.

409p : 잡스는 자신이 진짜 부모로 여기는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에게 생모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길 꺼렸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감수성과 부모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그는 그들이 상처 받을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1986년 클라라 잡스가 사망하고 나서야 조앤 심프슨에게 연락을 취했다.

415p : 잡스의 친동생 모나 심프슨은 친아버지 압둘파타 잔달리를 찾는 과정을 1992년 출간한 자신의 두번째 소설 "잃어버린 아버지"의 소재로 삼았다. (잡스는 넥스트의 로고를 제작한 디자이너 폴 랜드를 설득해 책 표지를 디자인하게 했으나, 모나의 말에 의하면 "너무 끔찍해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436p : 스티브의 아버지 폴 잡스와 여동생 모나 심프슨을 비롯해 약 50명이 잡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심프슨은 약혼자 리처드 어펠을 데리고 왔는데, 변호사였던 그는 나중에 텔레비전 코미디 작가로 전업했다. (인기 만화영화 "심슨 가족"의 작가가 된 그는 극중 '호머 심슨'의 어머니 이름을 아내의 이름에서 따왔다.) 

440p : 잡스는 애플에 복귀한 이후에도 집에 안전 요원이나 상주 관리인 들을 두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갑부로서는 드문 경우였다. 낮에는 뒷문을 열어 놓기까지 했다. 그의 유일한 안전 문제는 슬프고 기이하게도 버렐 스미스 때문에 생겼다. 더부룩한 머리에 순진한 얼굴을 한 그는 한때 매킨토시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고, 앤디 허츠펠드의 단짝 친구이기도 했다. 애플을 떠난후 스미스는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허츠펠드의 집에서 몇 집 떨어진 곳에 살던 그는 병세가 심해지자 알몸으로 거리를 배회했으며, 어떤 때는 자동차와 교회의 창문을 부수기도 했다. 그는 강한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한번은 병세가 최악에 달해 저녁마다 잡스의 집에 나타나 창문에 돌을 던졌고, 알 수 없는 내용의 편지를 놓고 갔으며, 붉은색 폭죽을 집안에 던지기도 했다. 그는 체포되었지만 치료를 더 받는다는 조건으로 기소유예되었다. "버렐은 굉장히 재미있고 순수한 친구였어요. 그런데 4월 어느 날부터 정신이 이상해진 거에요." 잡스가 회상했다. "너무도 이상하고 슬픈 일이었지요."

* 앤디 허츠펠드 : 1979년 8월 애플에서 일하기 시작해 애플II 주변장치와 관련된 일을 했다. 1981년 2월 맥 팀에 합류해 매킨토시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주 개발자가 됐고 핵심 운영체제와 사용자 인터페이스 툴박스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데스크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 "Revolution in the valley"라는 매킨토시 개발비화에 대한 책을 썼다. --> http://monsterdesign.tistory.com/1370

* 버렐 스미스 : 1979년 2월 애플에서 서비스 기술자로 일을 시작했다. 다섯 가지 서로 다른 매킨토시 외에도 레이저라이터 프린터용 디지털 보드도 설계했다. 1985년 2월 애플을 떠났다.

473p : 애플은 우선 장 루이 가세가 창업한 'Be'라는 회사에 연락을 취했다. --> 90년대를 풍미했었던 BeOS를 전 애플임원이었던 장 루이 가세가 창업했다는 사실... 게다가, 장 루이 가세는 존 스컬리와 함께 스티브 잡스를 애플에서 쫓아내는데 일조한 인물이어서 스티브 잡스의 원한 리스트 1순위 인물이기도 했다.
--> http://www.appleforum.com/mac-column/44317-장-루이-가세에-대하여.html
--> BeOS와 NeXT의 경쟁 : http://ebizbooks.tistory.com/507

489p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부문의 책임자로는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친구 애비 테버니언을 택했다. 하드웨어 부문은 넥스트에 하드웨어 부문이 있던 시절에 그것을 담당했던 존 루빈스타인에게 맡겼다.

490p : 스티브 복귀후, 그의 신경을 거슬리는 제품 중에 필기 문자 인식 기능을 갖춘, '뉴턴'이라는 개인용 소형 디지털 기기가 있었다. 나쁜 제품은 아니었지만, 잡스는 뉴턴을 싫어했다. 그는 화면에 무언가를 적으려면 스타일러스나 펜을 사용해야 하는 방식을 경멸했다. "신은 우리에게 스타일러스 열개를 주셨어." 그가 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며 말하곤 했다. "그런데 한 개를 더 창조하자고?" 또한 잡스는 뉴턴이 존 스컬리의 유일한 주요 혁신 제품이며 그가 가장 아끼던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잡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500p : (잡스가 애플에 다시 복귀한후...) 잡스는 가족들과의 시간을 즐겼다고 말했지만, 아무리 여유 시간이 많다 해도 '올해의 아버지상'을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아이들, 특히 리드 잡스에게 관심을 쏟는 일을 전보다 잘하고 있었지만 그의 주된 초점은 늘 업무에 맞춰져 있었다. 그는 어린 두 딸에게 거리를 두며 냉정하게 대하는 일이 잦았고, 리사 브레넌과의 관계도 다시 소원해졌으며, 남편으로서도 종종 까다롭게 굴었다.

515p : (1997년 8월 보스턴 맥월드에서 빌 게이츠와 스티브잡스간의 화성통화연결후...) 잡스는 자신과 청중들을 압도하는 게이츠의 이미지를 띄운 게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원래 그가 보스턴에 와 주길 바랐어요." 그가 나중에 말했다. "그건 내 최악의 무대연출이었어요. 나를 작아 보이게 했고, 애플을 작아 보이게 했고, 마치 모든 게 빌의 손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으니까요."


532p : 잡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제대로 집중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것은 회사 차원에서도, 제품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533p : 잡스가 복귀한 후 애플 제품들을 검토하는 기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한 것이었다. "머리를 써서 생각하지는 않고 슬라이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에 저는 반대합니다. 프레젠테이션 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더 생기지요. 슬라이드만 잔뜩 들이대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끈질기게 논의해서 결론을 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에겐 파워포인트 같은 게 필요없습니다." 잡스의 말이다.

540p : 처음에 잡스는 회사 바깥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디자이너를 찾았다. 그는 IBM 씽크패드를 디자인한 리처드 새퍼, 페라리 250과 마세라티 기블리I을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 등과 상의했다.

541p : 처음에 아이브는 잡스가 하드웨어 부문 책임자로 임명한 존 루빈스타인에게 업무를 보고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잡스에게 직접 보고를 하며 그와 유난히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점심 식사를 같이하기 시작했고, 잡스가 아이브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방문해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도 잦아졌다. "조니는 특별한 지위를 얻었어요." 파월이 말했다.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왔고 가족끼리도 아주 친해졌어요. 스티브가 그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는 일도 전혀 없었어요. 스티브의 인생에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체가 가능한데, 조니는 결코 거기에 속하지 않아요."

542p : "나 (스티브 잡스)를 제외하고 회사의 운영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조니에요.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놨거든요."

542p : 잡스가 만든 애플의 첫 브로셔가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라고 선언했을 때부터, 잡스는 복잡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얻는 단순성을 추구했다. "상당한 노력이 있어야 하죠. 무언가를 단순화하는 것, 잠재적인 난제들을 이해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 말입니다."

543p :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의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545p : 컨디션이 좋고 사무실에 있을 때면 잡스는 거의 항상 아이브와 점심을 같이 먹었고 오후에는 스튜디오에 들렀다. 대개 잡스와 아이브는 둘이서만 얘기를 나눴다. 나머지 디자이너들은 일을 하다가 가끔 머리를 들고 쳐다보긴 했지만 예의상 거리를 두었다.

546p : 디자인 과정의 상당 부분은 대화로 이루어져요. 테이블 주위를 돌며 모형을 가지고 놀면서 서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 식이죠. 그는 복잡한 설계도를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 대신 모형을 보고 느끼길 원하죠. 그가 하는 방식이 옳아요. CAD렌더링에서는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실제 모형으로 만들었을 때 형편없게 나올 때가 있거든요. 공식적인 디자인 검토 회의가 없기 때문에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도 없어요. 그 대신에 우리는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유동적인 결정들을 내리곤 해요. 매일 이런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바보같은 프레젠테이션을 할 필요가 없어요. 덕분에 의견이 크게 충돌할 일도 없고요.

547p : 맥북의 흰색 전원 장치는 물론이고 기분 좋은 '탁'소리를 내며 꽂히는 자석 연결 장치에 대한 특허를 출원할 때 잡스의 이름도 포함되었다. 사실 2011년 초까지 그는 212개의 특허에 이름을 올렸다.

548p : 예술가의 섬세한 기질을 가진 아이브는 때때로 잡스가 모든 성과의 공훈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 수년 동안 다른 동료들 역시 불편함을 느낀 부분이었다. "저의 아이디어들을 살펴보고는 '이건 별로, 이것도 별로, 이건 좋다.'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발표할 때면 그는 그게 마치 자신의 아이디어인 것처럼 이야기했죠. 제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말이에요. 저는 아이디어의 출처에 극도로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제 아이디어들을 공책에 적어 관리할 정도죠. 그러니 저의 디자인이 잡스의 공훈으로 돌아갔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요." 하지만 그는 실제로 잡스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른 수많은 회사들에서는 훌륭한 아이디어와 디자인들이 업무 처리 과정에서 사라지고 말아요. 저와 제 팀의 아이디어들은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인정도 못 받고 사장되었을 거에요. 만약 스티브가 이곳에서 우리를 밀어붙이고 함께 일하며 수많은 저항을 헤쳐 나가도록 돕지 않았다면 우리의 아이디어 상당수는 제품으로 현실화되지 않았을 겁니다."

552p : (반투명 아이맥 디자인시) 아이브와 디자인팀의 부팀장 대니 코스터는 초현대적(futuristic) 디자인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아이브의 팀은 애플의 한국 제조 업체와 협력하여 케이스 생산 공정에 완벽을 기했다. 또한 매력적인 반투명 색깔을 만들고자 젤리 과자 공장까지 찾아다니며 연구를 거듭했다. 케이스의 가격은 개달60달러로, 보통 컴퓨터 케이스에 비해 세배나 비쌌다. 다른 회사였으면 반투명 케이스가 추가비용을 정당화할 만큼 매출을 늘려 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과 연구를 수차례 실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잡스는 그와 같은 분석을 요구하지 않았다.


554p : 루빈스타인은 아이브의 미적 요구와 갖가지 디자인 아이디어를 접할 때마다 현실적인 비용 문제를 제기하곤 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 모델을 가지고 엔지니어에게 갔더니 그걸 만들 수 없는 이유 서른여덟 가지를 내놓더군요."

561p : 아이맥은 1998년 8월 1299달러의 가격으로 시판되었고, 처음 6주 동안 27만 8000대, 그해 말까지 80만대가 팔리며 애플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판매된 컴퓨터가 되었다. 주목할 점은 매출의 32퍼센트는 컴퓨터를 처음 구매하는 소비자가 차지했으며, 12퍼센트는 윈도PC를 쓰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562p : 잡스가 아이맥에서 꼭 개선하고 싶어 하던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남았다. 바로 그가 혐오하던 CD트레이였다. "소니의 고급 스테레오에 슬롯 드라이브가 장착된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드라이브 제조 업체를 찾아가 9개월 뒤 출시할 아이맥 새 버전에 사용할 슬롯 드라이브를 만들어 달라고 했지요." 루빈스타인은 잡스를 설득해서 슬롯 드라이브 장착을 막으려고 했다. 그는 장차 재생뿐만 아니라 음악을 CD에 구울 수 있는 CD드라이브가 나올 것이며, 그런 드라이브는 슬롯보다는 트레이 형태에서 먼저 이용이 가능해질 것이라 예상했다. "슬롯 방식을 택하면 우리는 최신 기술에 뒤처질 겁니다." 루빈스타인의 주장이었다. "상관없어요. 난 슬롯을 원하니까." 잡스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슬롯 드라이브쪽으로 갑시다. 내게 베푸는 개인적 호의라고 생각해줘요." 물론 루빈스타인은 잡스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루빈스타인의 예측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파나소닉에서 읽고 쓰기가 모두 가능한 CD드라이브가 출시되었는데 초기에는 구식 트레이 로더가 달린 컴퓨터에서만 쓸 수 있었다. 이 일은 향후 몇 년에 걸쳐 애플에 흥미로운 영향을 미쳤다. 슬롯 드라이브를 채택한 애플은 음악을 선별해 CD로 굽고 싶어 하는 사용자들의 요구에 신속히 대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애플은 경쟁자를 뛰어넘을 수 있는 창의적이고 대담한 길을 찾아야 했고, 잡스는 마침내 음악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565p : 잡스의 경영 좌우명은 '집중'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많은 제품 라인업을 정리하고 애플이 개발중이던 새로운 운영체제에서 필요없는 기능을 제거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품을 꼭 자사 공장에서 제조해야 한다는 과도한 통제욕구를 버리고 회로 기판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 과정을 외부업체에 위탁했다.

566p : 한번은 VLSI테크놀로지사가 정해진 기한 내에 칩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할 위기에 빠졌다. 그러자 잡스가 그 회사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미팅 자리에 난입해 "빌어먹을 고자 새끼들! (Fucking Dickless Assholes!)" 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결국 칩은 제시간에 모두 납품되었고 VLSI사의 경영진은 등에 자랑스럽게 "TEAM FDA" 라고 새겨진 재킷을 만들어 입었다.

566p : 1998년, 잡스는 37세의 정중한 남성 한명을 만났다. 컴팩 컴퓨터의 조달 및 공급망 관리자인 팀 쿡이었다. 그는 오번 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듀크 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위를 받은 뒤 IBM에 입사해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리서치 트라이앵글 연구 단지에서 12년간 근무했다. 잡스가 그를 면접한 시기는 쿡이 컴팩으로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569p : 1980년대 초, 일본을 방문한 잡스는 소니 회장 모리타 아키오에게 회사 공장의 전 직원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무척 부끄러워하면서, 전후에 다들 입을 옷이 없다 보니 소니 같은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입을 것을 줘야 했고 그게 전통으로 굳어졌다고 이야기했지요." 이와 같은 유니폼은 시간이 흐르며 그 회사만의 특징적인 스타일로 발전해 근로자와 회사 사이에 유대감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스타일을 중시하던 소니는 유명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에게 유니폼 개발을 맡겼다. 그리고, 애플에도 그와 같은 유대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잡스는 이세이 미야케에게 전화를 걸어 애플 직원들이 입을 조끼를 디자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잡스는 이세이 미야케와 친구가 되어 자주 그를 찾아갔다.

571p : 애플이 새로운 운영체제에 사용할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할 사람을 구할 당시, 잡스는 한 젊은이에게 이메일을 받고 그를 회사로 불렀다. 하지만 면접 결과는 좋지 않았다. 지원자가 너무 긴장했기 때문이다. 그날 늦게, 잡스는 낙담에 빠져 로비에 앉아 있던 지원자와 마주쳤다. 그는 잡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한번 봐 달라고 청했고, 잡스는 어도비 디렉터로 제작된 짤막한 데모를 보았다. 매킨토시 화면 하단 dock에 더 많은 아이콘을 집어 넣는 방법을 보여 주는 데모였다. 그가 dock안에 빽빽하게 들어찬 아이콘 위로 커서를 옮기자, 커서가 확대경처럼 변하며 하나하나의 아이콘을 크게 부풀렸다. "저도 모르게 '이런, 세상에!' 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 자리에서 그를 채용했습니다." 잡스의 회상이다. 이 기능은 맥OS X의 매력적인 일부가 되었고, 그날 채용된 디자이너는 이후 멀티터치 스크린용 관성 스크롤등을 고안했다.

583p : 잡스는 1999년 말부터 비밀리에 면접을 진행하며 애플 소매점 체인을 개발할 경영자를 찾았다. 여러 후보 가운데 디자인에 대한 애착과 소년같은 열정을 지닌 타고난 소매업 전문가가 한 명 있었다. 론 존슨이라는 인물이었다. 대형 할인점 '타겟'의 상품 기획 부문 부사장이던 존슨은 독특한 외관의 제품을 출시하는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


587p : 드렉슬러 (1999년부터 애플의 사외이사로 활동한 갭의 CEO)는 잡스에게 한가지 조언을 했다. "회사 근처에 비밀리에 시험매장을 짓고 설비를 완전히 갖춘 다음, 편안한 기분이 들 때까지 거기서 시간을 보내 보세요." 다시 말해서 앞으로 모든 애플 스토어의 기준이 될 "프로토타입 스토어"를 하나 만들어 보라는 조언이었다.

606p : 한 때 애플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빌 킨케이드는 맥에서 쓸 수 있는 리오용 mp3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역시 애플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 친구인 제프 로빈과 데이브 헬러를 불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운드 잼'이라는 SW를 만들어 냈다. 사운드 잼은 리오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인터페이스, 컴퓨터의 음악 파일을 관리하는 주크박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리듬에 맞춰 화면에 표시되는 몽환적인 라이트쇼등이 특징이었다. 2000년 7월, 음악 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을 추진하던 시기에 사운드잼을 발견한 애플은 그 프로그램을 사들이고 사운드잼의 개발자들도 다시 애플의 울타리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때부터 그들 셋은 계속 애플에서 근무했으며 로빈은 이후 10년동안 음악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이끌었다. 잡스는 그의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여 한번은 <타임> 기자에게 그의 성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다음에야 인터뷰를 허락한 적도 있다.) --> 사운드잼이 바로 2001년 1월 맥월드에서 공개된 아이튠스의 원형이다.


609p : 토니 파델과 존 루빈스타인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둘 모두 자신이 아이팟을 탄생시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빈스타인 입장에서 보면, 그는 파델이 오기 몇 개월 전에 잡스에게서 임무를 부여받았고, 도시바의 디스크 드라이브를 찾아냈으며, 스크린과 배터리 문제를 해결했고, 그 밖의 핵심 요소들을 준비했다. 파델을 데려온 것도 그였다. 파델만 주목받자 그게 못마땅한 루빈스타인 쪽 사람들은 그를 '토니 발로니'(허튼소리)라 부르기 시작했다. 반면 파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애플에 오기 전부터 이미 훌륭한 MP3플레이어를 만들 계획이 있었고 다른 회사들과 일할 가능성도 타진하던 중이었다. 아이팟 개발의 일등 공신이 누구인가, 즉 '아이팟의 아버지'라 불러 마땅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이후 수년간 인터뷰, 기사, 웹페이지 등에서, 심지어는 위키피디아 표제어를 통해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612p : 스티브는 그때그때의 순간을 중시하고 주로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이해하려 합니다. 한번은 그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슬라이드가 있어야 설명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오.'

643p : 나이가 들수록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zune이 시시한 이유는 MS사람들이 음악이나 예술을 우리처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승리한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음악을 사랑해서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아이팟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또는 절친한 친구나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한다면 결코 게으름을 피우며 대충대충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누구든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는 뭔가를 할 때는 특별히 더 노력하거나, 주말에 일을 더 하거나, 현재 상태에 과감히 도전하려 애쓰지 않겠지요.


644p : 잡스는 결코 애플에 준자치적 사업 부문을 편성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부문을 가까이에서 관리했으며 그들이 결속력 있고 유연한, 단일 손익구조를 갖는 하나의 조직으로서 일하도록 했다. "애플에는 독자적으로 손익계산을 하는 사업 부문이 없습니다." 팀 쿡은 말한다. "우리는 회사 전체적으로 손익 계정을 하나만 운영합니다."

667p : U2는 광고에 출연하고 애플은 옥외 광고판부터 아이튠스 홈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U2의 신규 앨범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을 활발히 홍보하기로 했다. U2측은 출연료는 받지 않기로 했지만 특별 제작되는 아이팟 U2에디션에 대해 로열티를 받고자 했다. 보노는 아이팟이 한 대 판매될 때마다 뮤지션이 로열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669p : 빈센트 (아이팟의 광고제작 감독)는 또 다른 U2열성 팬인 조니 아이브 (그는 1983년 뉴캐슬에서 처음으로 그들의 공연을 봤다.)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상황(협상이 난항에 빠졌다는...)을 설명했다. 아이브는 이미 검은색 몸체에 붉은색 휠이 달린 아이팟 모형을 만들어 두었다고 했다. 앨범 커버의 색깔에 맞추기 위해 U2의 보노가 요구했던 배색이었다. 빈센트는 잡스에게 연락해서 아이브를 더블린으로 보내 보노에게 블랙&레드 아이팟을 보여주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잡스가 승낙하자 그는 다시 보노에게 전화해 조니 아이브를 아느냐고 물었다. 빈센트는 이미 그들이 전에 만났고 서로 존경하는 사이임을 몰랐다. "조니 아이브를 아느냐고요?" 보노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친구를 사랑해요. 그의 목욕물도 마실 수 있어요." "아마 좀 짤걸요." 그렇게 농담을 건넨 후 빈센트가 물었다. "그를 그쪽으로 보내서 새로 제작한  아이팟이 얼마나 멋진지 보여 드리려 하는데 어떨까요?" "내가 직접 마세라티를 몰고 그를 마중 나가지요. 내 집에서 머물게 하면서 같이 나가서 밥도 먹고 코가 비뚤어지게 술도 마실 겁니다."


 673p : 잡스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연주를 해 달라고 요요마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마침 요요마의 해외 순회공연과 일정이 겹쳤다. 몇년 뒤, 잡스의 집을 방문한 그는 거실에 앉아 173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를 꺼낸 뒤 바흐의 곡을 연주했다. "그때 결혼식에서 연주하려 했던 곡입니다." 잡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당신의 연주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군요. 인간 혼자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으니까요." 이후 다시 잡스의 집을 찾은 요요마는 그와 부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잡스의 딸 에린에게 자신의 첼로를 만져 보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 무렵 갑작스레 찾아온 암으로 투병 중이던 잡스는 요요마를 졸라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를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692p : 잡스는 밥 아이거 (디즈니의 새로운 CEO)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이 약간의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경탄하기도 했다. 잡스의 예전 여자 친구인 제니퍼 이건이 펜실베니아 대학 시절 아이거의 아내 윌로 베이와 룸메이트였던 것이다.

700p : 나의 목표에는 언제나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위대한 회사를 세우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그것을 해냈지요. 그리고 그때 우리가 그 합병에 응합으로써 우리는 픽사를 위대한 회사로 유지하는 동시에 디즈니 역시 위대한 회사로 남도록 도왔습니다.

703p : 우린 많은 것을 생략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함으로써 진보합니다.

712p : 잡스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기꺼이 연봉 1달러를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대량의 스톡옵션을 받고 싶어 했다.

725p : 잡스는 여러 그룹이 제각기 마케팅을 고려해 제품 라인을 늘리도록 허용하거나 수백 가지 아이디어들이 꽃을 피우도록 방치하기보다는 애플 전체가 한 번에 두 세가지 우선순위에 초점을 맞출 것을 주장했다. 쿡은 말했다. "주변에서 울려대는 잡음을 끄는 데 잡스만큼 능숙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극소수의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많은 것들을 거부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런걸 진정으로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736p : (초기 아이폰 프로젝트 진행시...) 잡스는 휴대전화가 무선 제품이라는 이유로 에어포트 무선 공유기를 만드는 그룹에 프로젝트를 맡겼다. 그러나 곧 그것이 기본적으로 아이팟과 같은 소비자 기기라는 점을 깨닫고 해당 프로젝트를 다시 파델과 그의 팀원들에게 할당했다.

737p : 처음에 애플은 아이팟을 변형하여 아이폰을 만드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트랙휠을 이용해 전화기의 기능을 훑어보고 (자판없이) 숫자를 입력하는 방식을 구상해 보았다. 하지만 그리 적절하지 않았다. 파델은 회상한다. "휠을 이용하는 방식에 많은 문제가 따르더군요. 특히 전화번호를 누르는 게 그랬지요. 아주 불편하더라고요." 전화번호부를 넘겨 볼 때는 괜찮았지만 뭔가를 입력하기에는 끔찍하리만치 불편했다. 그들은 사용자들이 주로 전화번호부에 입력된 번호로 전화를 할 거라며 자위하려 애썼지만, 그래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당시 애플에서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비밀리에 태블릿 컴퓨터가 개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2005년 이 두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태블릿 컴퓨터 관련 아이디어들이 휴대전화 기획 과정으로 흘러 들어갔다. 다시 말해 아이패드 관련 아이디어가 사실상 아이폰이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히려 아이폰의 탄생을 돕기까지 했다는 얘기다.

738p : 다음날 잡스는 회사에 출근해 자신의 팀을 모아 놓고 말했다. "태블릿 컴퓨터를 만듭시다. 단, 키보드나 스타일러스가 딸려 있어선 안 됩니다."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터치 입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입력을 처리할 수 있는 이른바 '멀티터치' 기능이 스크린에 갖춰져야 했다. "멀티터치, 터치 감지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겠지요?" 그가 물었다. 약6개월이 걸린 끝에 결국 그들은 조악하게나마 제대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고안했다. 잡스는 그것을 애플의 또 다른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에게 건넸고, 한 달후 그 사람은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가로지르면 이미지가 마치 물리적인 사물처럼 움직이는 관성 스크롤 아이디어를 갖고 왔다. "완전히 푹 빠졌지요." 잡스의 회상이다. 조니 아이브는 멀티터치 개발 과정을 다르게 기억한다. 그의 디자인팀이 이미 애플의 맥북 프로 트랙패드를 위해 멀티터치 입력 방식을 작업하고 있었으며 그 기능을 컴퓨터 스크린으로 옮기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었다고 한다.

739p :  사실 멀티터치 인터페이스는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였고, 잡스는 곧 그것이 고민 중이던 휴대전화용 인터페이스 제작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태블릿 컴퓨터의 개발을 보류하고 일단 멀티터치 인터페이스를 휴대전화 스크린 크기에 맞게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이 프로젝트가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전화기에서 작동되면 다시 돌아가서 태블릿 컴퓨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740p : 잡스는 디자인 스튜디오 컨퍼런스 룸에서 비밀회의를 열고 그 자리에 파델과 루빈스타인, 실러를 불렀다. 아이브가 멀티터치를 시연했다. "와우!" 파델이 외쳤다. 모두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것이 휴대전화에 구현될 수 있을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들은 두 가지 경로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P1은 아이팟의 트랙휠을 이용해 개발하는 휴대전화의 코드명이었고 P2는 멀티터치 스크린을 사용하는 새로운 대안의 코드명이었다. 한편 핑거웍스라는 델라웨어의 작은 회사가 이미 일련의 멀티터치 트랙패드를 만들고 있었다. 델라웨어 대학교의 두 학자 존 일라이어스와 웨인 웨스터먼이 창업한 핑거웍스는 멀티터치 감지 능력을 가진 태블릿 컴퓨터를 몇 가지 개발했으며 꼬집기나 밀기 등의 다양한 손가락 제스처를 유용한 기능으로 전환하는 방법에 대해 특허를 취득한 상태였다. 2005년 초 애플은 핑거웍스와 그들이 소유한 모든 특허 그리고 두 창업자까지 비밀리에 인수했다. 핑거웍스는 자사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고 애플의 이름으로 새로이 특허를 출원하기 시작했다.

741p : 잡스가 P2로 아이폰의 개발방향을 결정한후, 팀원들은 잡스와 함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몰두해서 회의를 거듭하며 다른 휴대전화들이 복잡하게 만든 것들을 단순화하는 방법을 파악해 나갔다. 

743p : 잡스가 아이폰에 어떤 유리를 사용하고 싶은지 설명하자 코닝의 CEO 웬들 웍스는 코닝이 1960년대에 화학적 교환 공정을 개발해 이른바 '고릴라 글래스'를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이 유리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지만 시장을 찾지 못해 코닝이 더 이상 제조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잡스는 6개월 내에 코닝이 최대한 많은 고릴라 글래스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웍스가 대꾸했다. "생산 능력이 안됩니다. 지금 우리 공장들은 고릴라 글래스를 전혀 만들지 않고 있으니까요." 웍스는 이 일화를 회상하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가 실제로 6개월도 안 돼서 그 일을 해냈다니까요. 전혀 생산하지 않던 유리를 만들면서 말입니다." LCD 디스플레이를 제작하던 코닝사의 켄터키 주 해리스버그 공장은 거의 하룻밤 새에 고릴라 글라스 생산을 전담하도록 개조되었다. 


744p : 2010년 아이브는 자신의 수석 팀원들을 코닝으로 데려가 그곳의 장인들과 함께 유리를 만들어 보게 하기도 했다. 그해에 코닝은 '고질라 글라스'라는 코드명의 초강력 유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금속 테두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력한 아이폰용 유리와 세라믹을 생산할 수 있기를 바랐다.

766p : 2009년 5월말, 간이식수술을 마친후 잡스는 팔로알토로 돌아오면서 자신이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맞서 싸워야 했다. 애플의 주가는 그가 없는 동안 적절한 궤도에 올랐다. 2009년 1월 병가를 발표할 때 82달러였던 것이 5월말 복귀 무렵에는 140달러까지 올라 있었다.

774p : 처음에 잡스는 아이패드에 인텔이 개발 중인 낮은 전압의 아톰 칩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토니 파델은 보다 단순하고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 ARM 아키텍처 기반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애플은 초창기에 ARM과 파트너쉽을 맺었으며, 원조 아이폰에도 ARM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칩들이 들어갔다. 어느 날 회의에서 잡스가 적절한 모바일 칩 제작은 인텔에 맡기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하자 파델은 안된다고 소리쳤다. 파델은 심지어 애플 배지를 테이블에 놓고 사직하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잡스는 손을 들었다. "알겠네. 최고의 부하들을 거스를 순 없지." 그러고는 ARM 아키텍처의 라이선스를 얻는 한편, 팔로알토에 있는 사원 150명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설계회사 P.A. 세미를 인수하고 그들에게 A4라는 맞춤형 SoC를 개발하게 했다. A4는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국의 삼성에서 제조되었다.

777p : 2010년 1월 27일, 아이패드의 역사적인 출시를 강조하려는 듯 잡스는 또 한 번 애플 초창기 시절의 사람들을 다수 초대했다. 그러나 더욱 심금을 울린 것은 그 전 해에 그의 간이식수술을 집도한 제임스 이슨과 2004년 그의 췌장 수술을 맡은 제프리 노턴이 참석해 잡스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모나 심프슨과 나란히 앉았다는 사실이다.

779p : 아이패드를 발표한 날 저녁, 스티브 잡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비서실장 람 이매뉴얼로부터 축하 전화를 한 통 받고 고마워했다. 그러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는 대통령이 취임 후로 자신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811p :  (테크 관련 웹 사이트 밸리웨그의 편집장, 라이언 테이트와의 이메일 논쟁중 스티브 잡스가 한 말...) "그건 그렇고, 당신은 어떤 대단한 일을 이루셨습니까? 무언가를 만드는 분입니까, 아니면 그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비판하고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분입니까?"

826p : 잡스가 농담처럼 말했다. "이런 병을 갖고 살면서 고생하다 보면 자신이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머리까지 이상해질 수 있지요. 이런 상태에서는 대개 1년 이상의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데, 그건 좋지 않습니다. 억지로라도 수년을 살 것처럼 계획을 세워야 해요." 이런 마법적인 사고방식의 일환으로 그는 호화 요트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잡스는 언젠가 꼭 만들고 싶다던 배를 디자인하고 그것을 여러 번 수정하는 데서 기쁨을 찾기 시작했다. 그 무렵 배는 네덜란드 주문 제작 요트 건조 업체인 피드쉽에서 건조중이었지만 잡스는 여전히 디자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가 죽고 로렌에게 만들다 만 배를 남겨 줄 수도 있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손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손을 놓으면 내가 곧 죽는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니까요."
 
861p : (구글에 대한 잡스의 조언) 내가 가장 강조한 것은 집중이었습니다. 구글이 어떤 회사로 성장하길 바라는지 파악해라, 구글은 이제 전 세계 어디에든 존재한다, 당신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다섯 가지 제품은 무엇인가? 나머지는 모두 제거하라, 그렇지 않으면 구글은 쇠약해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되고 말 것이다, 적당할 뿐 훌륭하지는 않은 제품들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878p : 그의 성격 가운데 이런 심술궃은 부분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었다. 그러나 가끔은 한 가지 목적에 기여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에게 상처주는 것을 피하려 노력하는 상냥하고 예의바른 리더들은 대개 효과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잡스가 가장 못살게 군 동료들 수십 명의 입에서 나온 공포담 끝에는, 그들 자신이 꿈도 꾸지 못한 일들을 잡스가 하게끔 했다는 이야기가 뒤따르곤 했다.

881p :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고객은 '더 빠른 말!'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 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적히지 않은 것을 읽어 내는 게 우리의 일이다.

883p : 나는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이 쇠퇴하는 이유에 대해 나 나름의 이론을 갖고 있다. 이러한 기업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혁신을 꾀하고 독점 기업 또는 그에 가까운 기이 되는데, 그러고 나면 제품의 질을 경시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훌륭한 세일즈맨들에게 가치를 두기 시작한다. 수익의 바늘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제품 엔지니어나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세일즈맨들이 회사를 운영하게 되는 것이다. IBM의 존 에이커스는 똑똑하고 언변이 뛰어난 환상적인 세일즈맨이었지만 제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제록스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세일즈맨들이 회사를 운영하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다소 경시되기 시작하고 그렇게 되면 그중 상당수가 흥미를 잃는다. 나의 실수로 스컬리가 영입되었을 때 애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고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맡았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애플은 운이 좋아서 재기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발머가 운영하는 한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884p : 나는 내가 사람들을 함부로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형편없으면 그저 면전에 대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뿐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의 일이다.

885p : 혁신을 꾀하려면 언제나 끊임없이 밀어붙여야 한다. 진화, 바로 그것이 언제나 내가 노력하며 시도한 것이다.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 더그 엥겔바트, Douglas C. Engelbart (1925 ~ ) : 북유럽 출신 발명가. 컴퓨터 마우스의 발명자로 유명한 그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하이퍼텍스트, 네트워크 컴퓨터 등의 분야를 연구한 세계적 권위자로, 1960년대 말 실리콘밸리의 독특한 문화적 흐름을 주도했다.

* 론 웨인, Ronald Gerald Wayne (1934 ~ ) : 잡스,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한 공동 창업자. 아타리에서 일하면서 잡스와 워즈니악을 만나 회사를 설립하기로 의기투합, 당시 800달러를 투자하면서 회사 지분의 10%를 배당받았으나 12일 만에 2300달러를 받고 회사 지분을 넘기고 만다.

* 랍 자노프, Rob Janoff (1952 ~ ) : 초창기 애플의 상징인 레인보우 애플 로고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레지스 매케나 아래에서 미술 디렉터로 근무하던 그는 애플 컴퓨터를 위한 로고 디자인 요청을 받고 처음에 '완전한 사과' 와 '한입 베어 먹은 사과' 두 가지 시안을 준비했는데 잡스는 두 번째 시안을 채택하였다. 이후 IBM과 인텔에서 근무했다.

* 빌 앳킨슨, Bill Atkinson (1951 ~ ) : 애플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관련 핵심 개발자, 원조 매킨토시 팀의 리더였던 제프 래스킨의 대학 제자로, 1978년부터 애플에서 근무하며 매킨토시 혁신의 중추로 활약한다. 매킨토시 히트 소프트웨어였던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맥페인트'의 개발자로도 유명하다.

 * 수잔 케어, Susan Kare (1965 ~ ) :  1980년대 애플 매킨토시의 아이콘, 글꼴 등 많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낸 그래픽 디자이너, 넥스트의 창립 멤버였으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하다가 이후 독립해 마이크로 소프트 윈도 3.0과  IBM OS/2 Wrap의 아이콘을 제작했다.

 * 애비 테비니언, Avadis Tevanian II (1961 ~ ) : 애플의 전 수석 부사장.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넥스트에서 일하다가 잡스의 복귀와 함께 애플에 들어가게 된다. 애플에서는 운영체계 개발의 중핵으로 활약했으며 맥 OS X의 초기 설계를 담당했다. 

 * 앤디 허츠펠드, Andy Hertzfeld (1953 ~ ) : 매킨토시 개발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를 졸업한 후 애플 II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디자이너인 수전 케어와는 고교 시절부터 친구로 그녀를 애플에 소개했으며 잡스와는 단짝이었다. 애플을 떠난 뒤 몇몇 업체를 거쳐 최근에는 Google+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했다.

 * 앨런 케이, Alan Curtis Kay (1940 ~ ) :  세계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권위자이자 휴렛패커드 연구소 현 명예연구원. 그가 제록스에서 개발한 네트워크 워크스테이션 초기 모델은 애플 매킨토시 개발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84년부터 애플 특별 연구원으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뷰포인츠 연구소 대표로 재직 중이다.  

 * 에디 큐, Eddy Cue : 애플의 수석 부사장. 듀크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1998년 애플 온라인 스토어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이래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와 앱 스토어를 중추를 맡았던 그는 잡스 스 퇴임 후 팀 쿡 체제 아래에서 아이클라우드와 아이애드의 책임자로 임명, 인터넷 소프트에어 서비스 부문 수석 부사장을 맡게 되었다.

 * 장-루이 가세, Jean-Louis Gassee (1944 ~ ) : 애플의 제품 개발 관리자. 휴렛팩커드에서 일하다가 애플로 옮긴뒤 프랑스 지사서 높은 이윤을 기록하며 탁월한 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존 스컬리 체제 아래 매킨토시를 관리하였으며 잡스를 퇴출하고 복귀를 저지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이후 넥스트의 창의력을 인정하면서 잡스와는 화해한다. Be의 설립자로 Be OS를 만들었다.

* Jef Raskin (1943 ~ 2005) : 1970년대 후반 애플의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담당한 컴퓨터 과학자. 애플II를 위한 매뉴얼 작성을 의뢰받아 애플에 합류한 이래,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 빌 앳킨슨등 뛰어난 전문가들과 팀을 조직하였으나, 매킨토시 프로젝트는 이후 잡스가 관할하게 된다. 맥OS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며 인간 중심 인터페이스 설계의 권위자로 꼽힌다.

* 토니 파델, Anthony M. Fadell (1969 ~ ) : 아이팟 부문의 전 수석 부사장. 미시간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후 애플에 입사하였으며, 2001년 온라인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와 연동되는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아이팟을 개발했다. 존 루빈스타인과 함께 '아이팟의 아버지'로 불리며 아이팟 신화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2008년 애플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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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와 애플에 대한 책은 꽤 많은 편인데, 이번에 읽은 책 "스티브잡스, 신의 교섭력 - 신인가 악마인가 위기에서 빛나는 잡스의 마력!"은 제목도 재미 (사실, 제목을 보고 구입... ㅡ,.ㅡ;;)있지만, 일본실용서 특유의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스타일로 스티브잡스의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을 단숨에 정리해준다. 특히, 한 챕터가 끝나고 나면, 꼭 소니나 혼다, 마쯔시타등의 일본 회사들과 짤막한 비교를 해주는 미니 칼럼이 있는데, 특히 이 부분이 독특하다.

iCon, Inside Steve's Brain등의 책을 이미 읽었다면, 굳이 읽어 볼 필요는 없음.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한 책을 한번도 읽지 않았고, 두꺼운 책을 싫어한다면, 이 책은 좋은 대안 (겨우 236페이지...)이 될 수 있다. 2시간 정도면 바로 읽어버릴수 있을 정도... 참고로, 저자 (다케우치 가즈마사)는 파나소닉의 엔지니어였고, 애플컴퓨터에서도 90년대 후반까지 프로덕트 마케팅을 담당했었다.

※ 현재 타임지 편집장 출신의 월터 아이작슨이라는 작가가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를 저술하고 있다고... 원래 잡스는 자신에 대한 책들이 출간될때마다 불같이 화를 냈었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작가와 함께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을 돌아보는 등 자료수집도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자신의 전기저술에 보다 적극적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건강문제가 큰 영향을 끼친듯... 스티브 잡스는 현재 55세...

2008/12/27 - 잡스처럼 일한다는 것 (원제 : Inside Steve's Brain) ★★★★☆
2006/01/26 - iCon 스티브 잡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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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p : 그의 협상력은 동지에게는 큰 용기를 주고, 적에게는 공포의 폭풍을 일으킨다. 책략은 신처럼 담대하고 비상식은 악마같다.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협상조차 가능하게 만드는 그다.

19p : 잡스를 보고 있으면 메시지란 단지 알기 쉽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열의와 감동을 담아서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9p : 나약한 동지는 잠재적인 적이다.

40p : "화합"으로는 이길수 없다. 이겨야 화합할수 있다.

45p : 잡스는 받은 은혜에 전혀 감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인간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얽매여서 판단이 흐려진 적이 없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설령 끔찍이 싫어하는 빌 게이츠와도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았다.

55p : "좋은 사람"은 결국 패한다. ㅡ,.ㅡ;;

57p : 잡스는 남의 아이디어나 공로를 아무렇지 않게 가로채기도 하고, 상황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불리할 것 같으면 아무 상관없는 사람처럼 굴기도 한다.

60p : 간절히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공로를 빼앗아서라도 목적을 달성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간의 평가는 "무엇을 이루었느냐"로 결정된다. 훌륭한 일을 하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고, 나머지는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준다.

65p : 1997년, 잡스가 임시 CEO로 복귀한 뒤 반년동안 애플은 몹시 힘들었다. 간부들은 대부분 잡스의 전제군주같은 태도가 싫어서 회사를 떠났다. 당시 이런 조크가 나돌 정도였다. "잡스가 요구하는 게 Yes야, 아니면 Quit이야?" 거기에 No는 없었다.

71p : "타당한안"보다 "부당한안"으로 협상을 움직여라.

72p : "전문가의 지혜"는 한계를 느낄때 시작된다. "못한다"는 말은 받아주지 않는다. "못하는 이유"를 들어줄 귀도 없다. 스티브 잡스의 이런 사고회로가 실리콘밸리에서는 기발한 생각을 낳는 원천이 된다.

80p : 야망은 무모함을 가능하게 만든다.

81p : 소니와 마츠시타에도 하드웨어가 아닌 아이튠즈 스토어 같은 콘텐츠 서비스를 해야 종합적인 사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엔지니어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회사에는 현장의 의견을 이해하는 경영자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 있는 하드웨어 영역을 넘어서 워너같은 음악 산업의 까다로운 사람들과 귀찮은 협상을 벌일 열정이 없었다. 그 귀찮은 협상 자리에 나가서 음반업계의 상식을 깨뜨린 것이 잡스와 아이팟이 성공할 수 있었던 첫걸음이었다.

81p : 하부에서 상부에 정보를 제공해 의사결정이 되는 Botton up 으로 올라온 의견을 경영진이 음미하고, 그러고 나서 겨우 사장이 움직이는 느린 경영으로는 이길 수 없다.

83p :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조직을 중시하고 쌓기 나무를 하나씩 쌓아올리듯 업무를 수행한다. 번뜩임이나 열정보다 합리성과 규칙을 중시한다. 자연히 대부분 중요한 업무지만 재미는 부족하다.

85p : 대개 사람들은 현실을 발판삼아 실현가능한 계획을 세우는데, 그렇게 해도 늦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반해 잡스는 현실 따위는 처음부터 무시한다. 시간 제약도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92p : 잡스는 태양같은 사람일지 모른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 따뜻하고 기분좋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작렬하는 에너지에 불타 버린다. 대규모 행사에서 잡스는 할리우드 스타처럼 수천 명의 관중을 매료하지만 회의실에서는 화를 내고, 군림하려 들고 지시한다. 잡스의 에너지는 반지름 10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열광시키고, 반지름 5미터 이내에 있는 사람들은 공포에 떨게 한다.



93p : 잡스가 두려워한 "바보들의 폭발적 증대" -->  일류만 모아서 회사를 만들면 모두 일류만 고용하려 한다. 하지만 거기에 이류를 한 명 넣어두면 그 사람은 자기같은 이류를 모으려고 하기 때문에 회사는 순식간에 이류와 삼류투성이가 되어 버린다.

96p : 사원들이 조화를 이루어서 성과를 올리는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독창적이라는 면에서 볼때, "불꽃의 예술가"라고 부르는 오카모토 타로의 "대극주의"도 필요하다. 완전히 반대쪽에 있는 것끼리 부딪칠때 불꽃을 내뿜으며 멋진 결과를 낳는다는 발상이다. 그는 이 발상에 기초해서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잡스의 매니지먼트 수법이 바로 대극주의다. 사이좋게 놀면서는 세상이 깜짝놀랄 만큼 멋진 물건을 창조할 수 없다. 서로 신뢰하는 것끼리 세게 부딪혀서 빠지직빠지직 불꽃을 내뿜어야 비로소 멋진 물건이 나타나는 것이다.

119p : 비즈니스에서 싸우는 상대는 날마다 변한다.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 아니면 변화를 볼 용기가 없어 첫인상만 고집하는 비즈니스맨과 경영자가 많다. 하지만 선입견에 사로잡히면 유리하게 협상을 끌고 갈 수 없고, 그만큼 이길 기회도 멀어진다.

123p : 아이튠즈 스토어 협상에서 당시 미국 레코드 협회 회장을 지낸 힐러리 로젠은 중요한 말을 했다. "테크놀로지업계 사람들에게 음악은 소프트웨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스티브는 열광적인 음악팬이다. 이것은 음악산업에 큰 의미가 있다.

133p : 협상에서는 뻔뻔함도 미덕이다.

137p : 낙관은 생각 없음에서 비롯되지만 비관은 능력 없음에서 비롯된다.

138p : 승리는 타협으로 얻을 수 없다.

140p : (아이팟 최초 개발시...) 잡스는 날마다 개선해야 할 항목을 뽑아서 개발팀에 보냈다. 시간은 부족한데 까다로운 요구는 늘어만 갔다. 잡스가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지적할수록 결과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세상의 찬사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적자와 비웃음의 제물이 될 것인가?

141p : 아이팟은 왜 일본의 소니나 마츠시타에서 태어나지 않았을까? 애플은 컴퓨터 회사다. 전 세계에 오디오 제품을 1억대 이상 팔았고, 사전에까지 실린 "워크맨"을 만든 소니가 먼저 만드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나는 경영자의 역량 차라고 단언하고 싶다. 멋진 상품을 만들려면 현장의 "NO"를 들어주지 않는 강한 군인같은 관리직이 필요하다. 현장의 "불가능하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마음 약한 관리직은 필요없다. 상식의 한계에 부딪쳐서 머뭇거리는 부하의 등을 발로 차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예를 들어, 혼다 소이치로는 "상식은 인간이 생각한 것이다. 그것을 의심하고 깨뜨리는 것이 진보다."라고 말하며 때로는 부하직원에게 철권을 휘둘렀다. 또, 목표는 크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실현방법은 모두 부하직원에게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146p : 자신의 방법이 아니라 최고의 방법을 선택하라.


146p :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의 회심작 애플II... 20대의 잡스는 이 개발에도 끝까지 참견했다. 1) 소음이 없을것 2) 납땜을 깨끗이 할것... 다니던 아타리를 그만둔 잡스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정신세계와 선, 명상에 흥미를 갖는다. 그래서 조용함을 중요시 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책상 위에서 윙하는 소음이 나지 않는 조용한 컴퓨터가 필리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150p : 혼다 소이치로는 "독창적인 신제품을 만드는데 힌트를 얻고자 한다면 시장조사의 효력은 제로다."라고 말했다. 대중은 창의력없는 비평가다. 기업은 작가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해 내지않고 대중을 상대로 한 시장조사에서 발상을 구하려고 한다면 기업은 작가가 될 수 없다. 대중은 자신이 전혀 깨닫지 못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독창적인 상품에 열광한다. 시장조사에 의존해서 상품을 개발하면 "좀 더 좋은 물건"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이 손에 넣은 뒤에야 비로소 "아! 이게 바로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이라고 깨달을 만한 "아무데도 없는 상품"은 결코 만들 수 없다. 앞으로는 눈에 보이는 수요를 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수요를 만들어 가는 시대다.

154p : 잡스는 젊었을때 불법행위로 돈을 번 적이 있다. 1970년 초반, 16세의 잡스는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꼬드겨 AT&T 전화 시스템을 속여서 무료로 전화를 걸 수 있는 "블루박스"라는 장치를 만들었고, 그것으로 장사를 했다. 워즈니악이 40달러에 블루박스를 만들면 잡스가 팔았다. 가격은 상대에 따라 달랐다. 학생에게는 150달러를 받았지만 돈이 많아 보이는 손님에게는 300달러에 팔았다. 그후, AT&T가 부정사용 단속에 나섰고, 잡스는 피자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블루박스 장사를 하다가 총에 맞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이 일이 계기가 되었는지, 머지않아 두 사람은 블루박스 세계에서 손을 뗀다.

156p : 잡스는 모든 협상을 직접 한다. 통상 이런 협상은 CEO끼리 잘해 보자며 악수를 나누고, 그 다음은 담당자가 알아서 처리한다. 하지만 잡스는 대략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뿐만 아니라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자신이 도맡아 한다.

156p : 왜 수많은 유능한 인재들은 잡스와 일하고 싶어 할까? 첫째, 잡스와 함께라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멋진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둘째, 잡스가 모든 장애물을 완벽할 정도로 제거해 주니까... 특히 협상을 할 때는 협상이 어려워 보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 믿음직하게도 몸소 나서서 자기 손으로 해결한다.

157p : 타협을 좋아하는 사람은 '창조적인 협상'을 할 수 없다.

158p : 세상에는 CEO만이 할 수 있는 결단과 협상이 있다. 그런데도 모든 일을 사원에게 맡기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CEO가 적지 않다. 가마만 타고 있으면 가마꾼이 알아서 모셔다 주던 시대는 예전에 끝났다. 그걸 모른다면 CEO자격이 없다. CEO만이 할 수 있는 일, CEO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을 하지 않는 CEO가 이끄는 회사는 아무리 현장에서 열심히 일해도 성장에 한계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이 교섭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아무리 어려워도 직접 나서서 협상한다. 필요한 무기도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준비한다. 협상에서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185p : 질까봐 겁내기 때문에 진다.

205p : 조지 루카스가 픽사를 스티브 잡스에게 판 이유 --> 부인 마르시아와의 이혼 위자료로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루카스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부문을 매각한 것... 멋진 컴퓨터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뛰어난 인재. 그 모든 것을 루카스는 팔고 싶어 했다. 가격은 3000만 달러... 빨리 팔고 싶은 루카스는 느긋한(?) 잡스를 참지 못하고 협상중단을 통보했으나, 스티브 잡스는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루카스를 쫓아가서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 그 결과 무려 1000만 달러로 값을 깎는 데 성공... --> 잡스는 처음부터 픽사의 영화 제작 능력을 꿰뚫어 보았던 것일까? 사실, 잡스는 영화 제작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오히려 픽사가 소유한 하드웨어에 매력을 느꼈다.

231p : 2007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 연설중 --> 인생의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남의 인생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상식이라는 덧에 걸려들지 마십시오. 남의 의견이라는 잡음에 여러분 내부의 목소리가 지워 없어지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과 직감을 따를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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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몬스터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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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7 08: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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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2. 인연의고리
    2010.04.30 20: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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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이렇게 써 있는 글을 읽어보고 책을 사게 될 줄이야.. ^^(방금 인터넷을 통해 질렀습니다.)
    자주 와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고(저는 전혀 관계없는 직업을 가졌지만요... ㅎㅎ)
    즐거운 상상도 얻고 가는데 이번엔 이렇게 좋은 책을 얻고 가서 감사 인사드립니다. ^^
    앞으로도 좋은 정보(?) 계속 잘 부탁드려요~ ㅎㅎㅎ
    항상 건강하시구요~
  3. 2010.04.30 21:2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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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고맙습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ㅋㅋㅋ
  4. 2010.05.15 10: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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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당장 사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입니당~ 좋은리뷰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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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red의 08년 1월 기사 "The Untold Story: How the iPhone Blew Up the Wireless Industry" 를 애플포럼의 casaubon님(http://casaubon.tv/)이 번역한글...

http://www.appleforum.com/mac-column/53674-iphone-%EA%B0%9C%EB%B0%9C%EC%9D%98-%EB%92%B7%EC%9D%B4%EC%95%BC%EA%B8%B0.html

http://www.wired.com/gadgets/wireless/magazine/16-02/ff_iphone?currentPage=all (--> Wired 원문보기)

데모는 잘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2006년 가을, 늦은 오전이었다. 거의 한 해 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제작에 200여명의 애플 엔지니어들을 소집하였다. 애플 내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들이었다. 하지만 애플 이사회의실 안에 들어온 아이폰 프로토타입은 여전히 재앙적인 수준이었다. 버그가 많았다. 잘 돌아가지 않았다. 전화도 계속 끊겼고 배터리 또한 완충 전에 충전이 멈출 정도였다.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 또한 사용이 불가능했다. 문제점은 끝이 없었다. 데모 마지막 순간, 잡스는 십 수번의 지적을 하고는, 방 안 사람들을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물건이 못나왔구만."

잡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짜증 이상의 공포감이 감돌았다. 직원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애플 CEO도 무섭기는 하지만, 으레 그러려니 하면 된다. 하지만 CEO께서 이번만은 대단히 차분하고 조용히 말했었다. 이 회의에 참가했던 한 직원의 말이다. "애플에 들어와서 이번만큼 으스스했을 때가 거의 없었어요."

결과는 심각했다. 아이폰은 매년 열리는 맥월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물건이었고, 몇 달 뒤 출시를 해야 했다. 1997년 애플 복귀 이후, 잡스는 맥월드를 활용하여 주력 제품을 선보여왔고, 애플 소식통들은 언제나 맥월드를 손꼽아 기대해왔다. 잡스는 이미 차세대 맥 OS, 레퍼드의 연기를 인정한 상태였다. 아이폰마저 준비가 안된다면 맥월드는 김빠진 맥주였다. 비판자들이 달려들 테고, 주가도 폭락할 것이었다.

AT&T는 또 어떻게 생각할까? 1년 반에 걸친 비밀회의 끝에 잡스는 마침내 AT&T의 휴대폰사업부(당시는 Cingular였다)와 계약을 끌어낼 수 있었다. 5년간의 독점판매권은 판매의 약 10%를 AT&T 스토어에서 하고, 아이튠스 수입의 약간을 넘기면서 잡스에게 전에 없던 권력을 쥐어주는 계약이었다. 그는 일전에 AT&T를 부추겨서 신기능, 소위 비쥬얼 보이스메일을 개발하도록 시키고, 휴대폰 등록 과정 시간을 단축시키도록 하였다. 이것만으로도 AT&T는 수 백만 달러와 수 천 시간의 수고를 들여야 했다. 게다가 잡스는 독특힌 수입-배분을 고집했다. 아이폰 고객의 AT&T 통신요금 10%를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아이폰 디자인과 제조, 마케팅을 애플이 완전히 통제하겠다는 조항도 물론이다. 실로 잡스는 가늠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제일 거대한 휴대폰 업체를 상대로 유리한 협상을 끌어낸 것이다. 이제 그가 할 일이라고는 시한 지키기 뿐이었다.

즉, 아이폰 작업 실무자들로서, 향후 3개월은 제일 스트레스가 많은 기간이 되리라는 의미였다. 시한을 지키라는 소리가 복도까지 연일 들릴 정도였다. 밤새 코딩을 해서 피곤해 하는 엔지니어들은 잠만 보충하고 다시 합류했으며, 한 제품관리자는 사무실 문을 너무나 세게 닫아서, 손잡이가 부러지고 갇혀버린 적도 있었다. 1시간 뒤에야 동료들이 와서 알루미늄 뱃트로 그녀를 구해낼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압력 끝에, 2006년 12월 중순(맥월드 열리기 불과 수 주일 전), AT&T에 보여줄 프로토타입이 나올 수 있었다. 그는 AT&T의 보스, 시그맨(Stan Sigman)을 라스베가스의 Four Season 호텔에서 만났고, 아이폰의 훌륭한 화면과 강력한 웹브라우저, 매력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보여주었다. 과묵한 텍사스 사나이 시그맨은 미국의 거대 전화통신업체에 만연한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이폰을 본 뒤, "내가 이제까지 본 그 어떤 것보다도 최고다"라 말할 정도였다. (이런 저런 뒷이야기는 아이폰 제작에 관여한 이들로부터 입수하였으며, 애플과 AT&T는 특정 내용이나 회의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을 것이다.)

여섯 달 뒤인 2007년 6월 29일, 아이폰이 발매된다. 분석가들은 2007년 말까지 300만 대 정도 팔려나가지 않겠나 말했었다. 이는 최고로 빨리 팔려나간 스마트폰이라는 얘기였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아이폰은 제일 이윤이 남는 애플 기기이기도 하다. 399달러짜리 아이폰 당 80달러 씩의 이윤을 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약정 AT&T 요금 240달러도 있다. 게다가 아이폰 구매자의 약 40%는 새로 AT&T를 선택한 이들이었으며,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도시에서 AT&T의 데이터 트래픽은 3배가 더 늘어났다.

분명 아이폰은 애플과 AT&T 양사의 효자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그 진짜 충격은 110억 달러 어치의 미국 휴대폰 산업에 있었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휴대폰 제조사들을 농노 취급해왔다. 통신망을 담보로, 휴대폰 사양이나 비용, 기능을 모두 일일이 통제해 온 것이다. 이들은 휴대폰을 손해보고 파는 싸구려 물건 취급하였다. 게다가 대량의 보조금으로 이용자들을 통신사 요금제에 묶어 놓았다. 그리고 아이폰은이러한 힘의 균형 상태를 깨버렸다. 통신사들은 비싸다 하더라도 잘 만들어진 휴대폰만 있으면 고객을 유치하고 수입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제 통신사의 마음이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을 끌 만한 휴대폰 제작 경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각 제조업체들은 애플과 같은 계약을 하려하고 있다. Piper Jaffray의 증권분석가 올슨(Michael Olson)의 말이다. "아이폰은 이미 통신사와 제조업체의 지형을 뒤바꾸고 있습니다."

첫 아이포드가 나온지 얼마 안된 2002년이었다. 그 때부터 잡스는 휴대폰 개발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보기에, 수 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휴대폰과 블랙베리, 이제 MP3 플레이어까지 따로 따로 들고다니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당연히 한 개만 들고다니고 싶어한다. 그는 앞으로 휴대폰과 휴대용 이메일기기, 그리고 더 많은 기능이 합쳐져서 아이포드의 지위를 위협하리라 생각했다. 아직 새로운 아이포드 라인을 지키기 위해, 잡스는 결국 휴대폰 사업에 진출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개념이 이렇게 확실하다면, 장애물도 확실했다. 데이터 통신망은 느리고, 휴대용 인터넷 기기용으로 준비도 안되어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가 아이폰에게 필요했다. 아이포드 OS는 복잡한 네트워킹이나 그래픽용으로는 충분하지 못했고, 오에스텐을 작게 만들어도 휴대폰이 다루기는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경쟁도 강력했다. 2003년, 소비자들은 Palm Treo 600과 블랙베리에 몰렸다. Palm Treo 600은 PDA와 휴대폰을 합쳤고, 블랙베리 역시 단일 패키지였다. 소위 컨버전스의 수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애플 엔지니어들이 넘어서야 할 벽이 또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통신사 문제도 있었다. 통신사가 휴대폰의 모든 것을 지시내린다는, 휴대폰을 통신망 가입을 위한 미끼 정도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잡스도 알고 있었다. 통제에 관한 한 악명높은 잡스다. 양복쟁이들(group of suits)에게 아이폰 디자인을 맡길 사람이 아니다.

2004년, 애플의 아이포드 사업은 날로 중요성을 더해갔다. 하지만 전에 없이 취약한 부분도 늘어났다. 아이포드가 애플 수입의 16%를 차지했지만, 당시 3G 휴대폰들이 인기를 얻는 중이었다. Wi-Fi 폰도 곧 나올 태세였으며, 스토리지 가격은 떨어지고, 뮤직스토어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지배적인 뮤직플레이라는 위치가 위험해 보였다.

그 해 여름, 잡스는 공개적으로 애플폰을 개발하고 있지 않다 말하였지만, 그는 휴대폰 산업 진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통신사를 우회하기 위해 그는 모토로라에 접근하였다. 손쉬운 전략처럼 보였다. 모토로라는 RAZR로 유명했고, 모토로라 CEO, 잰더(Ed Zander)와 잡스는 잰더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있을 때부터 알던 사이였다. 애플은 뮤직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였고, 모토로라와 통신사인 Cingular는 복잡한 하드웨어 개발에 집중하였다.

잡스 계획에 따르면, 모토로라는 당연히 RAZR의 멋진 후계 기종을 내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플과 모토로라, Cingular는 거의 모든 것을 흥정했다. 노래가 들어가는 방법과 저장 방법, 심지어 회사 이름을 어떻게 표시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었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2004년 말에 나왔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휴대폰 자체가 못생겼다.

2005년 9월, 잡스는 태연자약하게 로커(ROKR)를 선보인다. 그는 로커가 "휴대폰용 아이포드 셔플"이라 소개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잡스는 로커가 별로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소비자들도 나름 로커를 증오하였다. 음악을 직접 다운로드할 수 없고, 100곡만 넣을 수 있었던 로커는 순식간에 미국 휴대폰 산업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드러냈다. 소비자들은 뒷전이었다. 본지는 2005년 11월, 커버스토리를 통해 휴대폰 산업이 어느 정도로 엉망진창인지 알린 바있었다. "YOU CALL THIS THE PHONE OF THE FUTURE?"


The Apple Touch
애플은 두 대의 뮤직폰을 개발하였다. 하나는 2005년, 모토로라와 합작한 로커다. 로커는 전통적인 휴대폰 제조업체와 통신사의 관계였다. 하지만 2007년 여름에 나온 아이폰은 애플이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로커는 생산에 들어갔지만, 잡스는 역시 휴대폰을 직접 만들어야겠노라 깨닫게 된다. 2005년 2월, 그는 Cingular와 함께 모토로라 없이 둘만의 파트너쉽을 꾸린다. 맨하탄의 한 호텔에서 열린 비밀회의에서 잡스는 Cingular 중역들에게 자기 계획을 털어놓는다. 이 자리에도 시그맨이 있었다. (2006년 12월, AT&T가 Cingular를 인수할 때에도 시그맨은 사장으로 남아 있었다.) 잡스는 세 문장으로 된 메시지를 남겼다. 첫 번째. 애플은 경쟁사를 수 년은 앞설, 정말 혁명적인 기기를 만들 기술을 갖고 있다. 두 번째. 애플은 협상을 위해 당신들에게 독점판매권을 고려할 준비가 되어있다. 세 번째. 하지만 애플은 아예 통신사로 나설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애플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1년간 타블렛 PC용 터치스크린 기술을 연구해오고 있었다. 이들덕분에 잡스는 휴대폰용 인터페이스도 유사하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게다가 ARM11 칩이 나온 덕에, 휴대폰 프로세서는 마침내 휴대폰과 컴퓨터, 아이포드 기능을 한데 다룰 만큼 빨라지고 효율성을 갖추게 되었다. 게다가 무선통신비도 저렴해서 애플이 이를 소비자에게 되팔 수 있었다. 이미 Vergin이 그런 사업을 하고 있었다.

시그맨과 그의 팀은 즉각 아이폰 제작에 뛰어든다. Cingular의 전략도 다른 통신사와 다르지 않다.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더 많이, 휴대폰 상의 웹접근을 더 많이 해 주기를 바랬다. 음성 통신 사업은 쇠락중이었다. 가격경쟁이 마진을 하락시켰기 때문이다. 음악과 비디오를 직접 다운로드하고, Wi-Fi 속도로 인터넷을 누린다면, 아이폰은 데이터 통신망 사용자를 늘릴 수 있었다. 음성이 아닌 데이터다. 데이터의 마진이 훨씬 높다.

더 있다. Cingular 팀은 휴대폰 사업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통신사들은 통신망을 소중한 보물인양 다루고, 휴대폰은 그저 거들 뿐이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전략이 그들을 배불렸다. 저렴한 휴대폰을 사도록 보조금을 지급하면, 신규 가입자를 끌기 더 쉬워진다. 이들을 장기 약정으로 묶으면 꾸준한 수입을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휴대폰 인터넷 접속은 이제 사치가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게다가 통신사 최대의 난제는, 신규 고객 확보가 아니라 상대방 고객 뺏어오기이다. 저렴한 휴대폰만으로는 안된다는 얘기이다. 시그맨과 그의 팀은 가입자들이 정말 반할 휴대폰, 다른 통신망에서는 못쓰는 휴대폰을 원했다. 잡스 아니고 누가 그런 휴대폰을 만들리?

Cingular 입장에서 애플의 야망은 감질나는 한편, 신경을 거슬리기도 하다. 아이포드 메이커와의 화기애애한 관계라면 AT&T에게 섹시함을 안겨다줄 수 있다. Cingular가 거절할 경우, 잡스를 분명 받아드릴 회사는 또 있다. 게다가 잡스가 자기 아이디어를 원하는 곳 어디에라도 팔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었다. 그러나 일찌기 잡스가 원하는 융통성과 통제력을 허용한 통신사는 없었다. 시그맨은 잡스의 제안에 대해, 이사진을 설득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시그맨이 옳았다. 협상은 1년을 더 끌었다. 시그맨과 그의 팀은 자기네가 너무 양보하는지 계속 의문스러워 하였다. 이 때 잡스는 Verizon 중역진도 만났는데, 이들은 즉각 거절하였다. 그들을 탓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독점적인 통신망을 통해 서비스를 판매하여 소비자들에게 요금을 부과해왔다. 잡스에게 통제권을 그렇게 많이 주어버리면, Cingular는 고가의 통신망을 단순한 콘텐트 전송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리는 꼴이 된다. 시그맨의 팀은 간단히 내기를 걸었다. 아이폰이 데이터 트래픽을 더 많이 일으키면, 콘텐트 협상에서 잃은 수익 이상을 채워주리라는 내기였다.

잡스는 협상의 상세한 부분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2005년 추수감사절 즈음, 그러니까 최종 계약이 성사되기 8개월 전이다. 이 때 그는 엔지니어들에게 지시하여 최대한 속도를 내도록 시켰다. Cingular와의 협상과는 별개로 엔지니어링과 디자인 면에 있어서의 장애도 만만하지 않았다. 우선은 운영체제 문제가 있었다. 애플 폰 개념을 착안한 2002년 이래 모바일 칩은 성장하였고, 이론상 맥 OS를 지원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상당한 재작성과 간소화가 필요했다. 아이폰용 OS는 수 백 메가바이트이어야 했다. 오에스텐 1/10 크기다.

아이폰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 잡스와 애플 내 최고 중역들은 이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했다. 엔지니어들은 신중하게 리눅스를 고려하였다. 이미 휴대폰용 리눅스가 쓰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의 소프트웨어 쓰기를 잡스는 거부하였다. 그래서 애플은 일단 프로토타입 휴대폰을 만들고, 아이포드 안에 임베딩하여, 클릭휠을 다이얼로 만들었다. 이 때는 숫자 선택과 통화에만 쓰였다. 인터넷용은 안되었다. 2006년 초, 애플 엔지니어들은 드디어 오에스텐을 인텔칩용으로 만들어냈고, 이내 아이폰용 오에스텐의 재작성에 들어갔다.

어떤 운영체제를 써야하냐는 논의가 익숙한 곳이 애플 중역 회의다. 하지만 안테나 디자인이라든가, 라디오-주파수 방열(radiation), 통신망 시뮬레이션 등, 휴대폰에 대해서만은 준비가 덜되어 있었다. 아이폰의 자그마한 안테나가 효과적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는 작업에만, 수 백만 달러 어치의 구매와 로봇-장비 실험실이 필요했다. 발열 실험을 위해서는 아교로 만든 인간 머리 모형까지 제작하였다. 통신망 퍼포먼스 측정을 위해서는, 역시 수 백만 달러를 들여 십 수 곳의 서버-크기 라디오-주파수 시뮬레이터를 사들일 정도였다. 심지어 아이포드로 익힌 디자인도 아이폰 화면 제작에는 별 도움이 못 되었다. 잡스 자신이 프로토타입을 움직여보고 발견한 사실이었다. 스크래칭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터치스크린을 아이포드와 같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유리로 만들어야 한다. 한 내부인에 따르면, 아이폰 제작에 애플이 거의 1억 5천만 달러를 썼으리라 한다.

이 온갖 과정 내내, 잡스는 비밀을 유지시켰다. 내부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P2로 불리었으며, 이 의미는 Purple 2였다. (포기한 아이포드 폰이 Purple 1이었다.) 팀도 애플의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캠퍼스 안에 쪼개져 있었다. 애플 중역들도 Cingular로 출장갈 때마다, 애플이 아이폰 트랜스미터를 만들 때 사용한 이름인 Infineon사의 직원으로 등록을 시켰다. 심지어 아이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팀도 분리되어 있었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가짜 소프트웨어로 가득찬 서킷으로 작업하였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나무상자에 놓인 서킷보드 상에서 작업을 하였다. 2007년 1월, 잡스가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 실제로 작동하는 아이폰을 이전에라도 본 사람은 각 책임자와 중역 등 서른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느님이 도우사 아이폰이 워낙 성공했기에, 아이폰의 불완벽성이 가려지기 쉽다. 첫 가격인 599달러는 너무 높았다. (나중에 399달러로 떨어진다.) 아이폰은 AT&T의 느린 EDGE 통신망에서 돌아갔다. 이메일 검색이나 비디오 녹화도 불가능하고, 브라우저도 자바나 플래시는 못돌린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문제가 안 되었다. 아이폰 크래킹이 금세 일어나 다른 통신사에서도 쓸 수 있게 되었고, 개발자와 심지어 업체들까지 뛰어들었다. 소비자들은 쓰기 쉬운 휴대용 컴퓨터를 구입하였고, PC의 발전에 따라, 아이폰은 보다 강력해질 개발의 파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월경 잡스는 개발킷을 공개하여, 누구나 아이폰용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할 참이다.

이제 휴대폰 제조업체들도 아이폰 덕분에 통신사들에 대해 협상력을 갖게 되었다. AT&T가 자기네 가입자들을 빼앗는 광경을 본 통신사들은 이제 경쟁력 있는 기기를 찾아나서는 중이다. 게다가 기꺼이 권위를 좀 내줄 모양새이기도 하다. 제조업체들은 이제 제품에 대해 보다 많은 통제력을 갖게 될 것이다. 가입자들도 이제 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도 이제 통신사들이 통신망에 대한 장벽을 조금씩 누그러뜨리면서, 보다 많은 기회를 얻게 된다. T-Mobile과 Sprint는 구글 Android(독립 개발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운영체제)와 파트너쉽을 맺었다. 제일 완고한 통신사 중 하나인 Verizon도 11월경, 통신망을 개방시켜서 호환되는 휴대폰을 써도 좋게 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AT&T도 며칠 뒤 유사한 발표를 하였다. 결국은 완전히 새로운 휴대폰 환경이 도래한다는 의미다. 즉, 어떤 휴대폰, 어떠한 통신망에서도 돌아갈 애플리케이션이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더 많은 융통성과 인터넷 기능이 휴대폰에 추가될 것이다.

통신사의 악몽이 재현된 것 같기도 하다. 아이폰이 권력을 소비자에게, 개발자에게, 핸드폰 제작사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통신망은 이제 단순한 전깃줄에 불과하게 된다. 하지만 보다 혁신을 북돋으려면, 통신망 자체의 가치가 더 높아져야 한다. 소비자들이 휴대폰에 더 많은 시간을 쓸수록, 통신망에도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즉, 통신 요금은 더 올라가고, 모든 수입도 더 올라갈 것이다. AT&T의 마케팅 수석, 로스(Paul Roth)의 말이다. "우리는 시장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그동안 통신사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시나리오야말로, 통신사들에게 절실하다는 의미다. 스티브 잡스가 나서서야, 그들이 이 교훈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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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몬스터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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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6 10:4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선배님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제 블로그로 퍼감니다~
  2. jerome
    2009.11.23 17:3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번역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3. justjooo
    2009.11.23 21:1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덕분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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