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키아는 원래 '혁신 조직'이었는데 왜 경직된 조직이 됐는가. 

"노키아의 최전성기인 2006년, 올리 페카 칼라스부오(Kallasvuo)가 CEO가 된 후 관료화 현상이 본격화됐다. 법률·회계전문가인 그는 어떤 사업을 하건 '비용관리'를 제1원칙으로 내세웠다. 그러다 보니 엔지니어보다 재무 파트의 발언권이 세졌다. 노키아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매우 실행력 강한 '혁신 회사'였다. 예컨대 그럴 듯한 아이디어를 내면 얼마 안 가 이탈리아·미국·싱가포르 등 세계 각지의 노키아 연구소에서 같은 주제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매우 놀라운 조직이었다. 이후 노키아 종업원 수는 두 배가 커져 한때 13만명까지 늘었다. 이 과정에서 관료화는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회사가 비용관리에만 신경을 쓰자 조직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 직원들이 속출했고 특히 창의적인 중간 간부 중 상당수가 퇴사하기 시작했다. 유능한 모바일 인력들은 노키아를 떠나 애플과 삼성, 블랙베리 등으로 몰려갔다."

2) 애플 아이폰이 2007년에 처음 나왔을 때 노키아의 반응은? 

"아이폰을 일종의 '조크(joke)'라고 봤다. 그다지 매력적인 제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노키아는 아이폰이 나오기 2년 전 터치스크린폰을 내놓았다가 시장에서 실패를 맛봤다. 그래서 터치스크린폰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한손으로 작동시키기 힘든 폰을 왜 만드느냐는 식이었다. 물론 오판(誤判)이었다."

3) 노키아 CEO 엘롭은 취임 후 6개월 만인 작년 2월 "노키아 심비안 운영체계를 버리고 MS 윈도폰을 주력으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노키아폰의 추락은 한층 가속화했다.  왜 당시 발표가 실수였나? 

 "정작 엘롭 CEO가 얘기한 MS윈도폰은 그해 10월이 돼서야 나왔다. 윈도폰이 나올 때까지 8개월 동안 공백이었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앞으로 만들지 않겠다고 하는 심비안폰을 누가 사겠는가. 영락없는 '오스본 효과(Osborne effect)'였다. (※1983년 오스본 컴퓨터 회사의 창업주인 아담 오스본은 계획 중인 차세대 휴대용 컴퓨터를 시장에 발표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은 앞으로 나올 신형 모델을 구입하려고 구형 모델의 구매를 미뤘다. 그러자 회사에 현금이 돌지 못해 부도가 났고 이를 '오스본 효과'라고 한다.)"

4) 10년 후 모바일 산업계에서 살아남을 회사 3곳을 꼽는다면? 

"애플은 10년 후 휴대폰 회사가 아니라 TV, 로봇회사가 돼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안전하게 톱3 안에 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때쯤 아이폰11이 나올까. 모바일에만 집중하는 구글도 안전하다. 2005년 에릭 슈미트는 미래는 인터넷 모바일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결과적으로 다 들어맞았다. 삼성은 회장부터 말단까지 회사 가치를 공유하고 근면성으로 세계 시장을 정복하고 있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지만 확실하지 않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18/2012051801265.html


5) 노키아의 짧은 역사

1865년 광산 엔지니어 프레드릭 이데스탐(Idestam)은 핀란드 서남부 노키안비르타(Nokianvirta)강 인근에 목재펄프 공장을 지었다. '노키아(Nokia)'란 회사명은 이 강의 이름을 딴 것. 종이공장 노키아는 1967년 핀란드 고무회사, 핀란드 전선(電線)회사와 합병해 '노키아 그룹'으로 재탄생했다. 종이·고무·전선 3개 업종으로 뭉쳐진 노키아 그룹은 1970년대 20여개 계열사를 가진 핀란드 최대 재벌로 컸다. 그러나 1980년대 말 구소련 붕괴로 그룹 핵심인 펄프·제지 산업의 매출이 급감했고, 1988년에는 최고경영자(CEO) 카리 카이라모(Kairamo)의 자살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후 노키아를 살려낸 것은 '미운 오리' 신세였던 통신 부문이다. 요르마 올릴라(Ollila) 당시 회장은 통신에서 미래를 보고 주력 업종이었던 제지·펄프·고무·타이어 등을 매각하고 휴대폰 부문에 집중했다. 그의 선택은 적중해 노키아는 이후 휴대폰 등 통신업종으로만 유럽 최초로 시가총액 2000억달러를 돌파했다. 2006년 매출은 핀란드 정부 예산(404억8200만유로)보다 많았다. 하지만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후 노키아는 내리막길을 탔다. 지난해에는 자체 운영체제(OS)를 포기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7' OS를 도입했지만, 몰락은 계속됐고 올 1분기에는 세계 휴대폰 판매량 1위 자리를 삼성전자에게 뺏겼다. 1998년 정상에 오른 지 14년 만이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18/2012051801309.html



6) 노키아도 다시 경영을 잘하면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지 않나?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까지 역사적 사실로 미뤄볼 때 확률이 떨어진다. 이는 휴대폰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다. PC나 다른 제품군은 제조사가 물건을 만들면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다. 하지만 휴대폰은 통신사가 중간에 끼어있다. 한 휴대폰 브랜드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전 세계 통신사들은 그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팔기를 꺼려한다. 조그마한 리스크라도 짊어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

7) 당신이 지금 노키아 CEO라면 무엇을 당장 고치겠나? 

"하드웨어 중심에서 서비스·플랫폼·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중점으로 하는 비즈니스모델에 주력하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소트프웨어와 플랫폼(구글안드로이드 같은 운영체계 등) 없는 하드웨어 중심 회사는 몰락할 것이란 점이다."

8) 노키아의 조직문화를 고친다면… 

"가장 큰 문제는 '거만한 문화(culture of arrogance)'였다. 이 회사는 소프트웨어, 서비스, 플랫폼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실제 모바일 소프트웨어 분야의 리더였다. 하지만 그들은 애플·구글처럼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 그들은 자신의 회사가 너무 커서 몰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18/2012051801338.html

9) 조직 관점에서 보면 혼자서 시장을 끌고 가는 선발자는 지쳐 추진동력을 잃을 수 있다. 더 나쁜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대응하는 경우이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제품 개선도 해 나가지만 기존 틀을 깨지는 못한다. 조직 전체에 매너리즘과 냉소주의가 흐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설사 경쟁력 있는 후발자가 등장하더라도 선발자가 더 빨리 달아나면 될 텐데, 이게 어려운 이유가 조직 이슈 때문이다. 외부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그거 내가 다 경험한 거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경쟁자가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와도 "그거 내가 해 봤는데, 잘 안 돼"라고 무시하게 된다. 소위 '겪어 본 일, 해 본 일(Been There, Done That) 증후군'이다. 그러는 사이 후발자는 선발자를 제치고 앞으로 나선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18/20120518013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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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ㅁ
    2012.05.20 14: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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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보고갑니다
    역시 소프트웨어가중요한듯요
    심비안을버리지말고
    그냥갔었으면더좋았을텐데요
    윈도우폰만만들면 ms만키워주는
    꼴이될텐데요
    삼성도 폰이잘팔린다하지만
  2. ㅁㅁ
    2012.05.20 15: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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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엔 구글만키워주는꼴이죠
    뭧바다os가있긴하지만아직은미약하구요
    네이버는뭐하는건지모르겠어요
    엘지는자체os도없죠
    개다가엘지폰은 안드로이드업그레이드느리더군요
  3. 2012.05.20 15:5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4)의 내용이요.
    "삼성은 회장부터 말단까지 회사 가치를 공유하고 근면성으로 세계 시장을 정복하고 있다."
    조선 비즈에서 써서 그런건지...
    국내 기업들이 '가치를 공유'하는 방식이 상명하달 방식에,
    '근면성'은 보기 따라 다르게 평가할만한 부분인거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삼성바라보기'하면서도 '살아남을 확률은 높지만, 확실하지 않다.'로 나름 비평을 한 것 같네요.

    • 백현
      2012.05.20 23: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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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디어나 조직혁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근면성실"이라는 점이 좀 짠하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람몸에 전도성 잉크를 발라, 각종 통신 및 컴퓨터 인터페이스, 의료기기 등에 응용이 가능한 흥미진진한 디자인 아이디어... 위 이미지대로 붓이나 스프레이등으로 특수한 전도성 페인트를 몸에 그리고, 배터리와 LED등을 연결하면 불이 들어오는 식이다... 물론, 무독성이고 수용성이어서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디자이너 : Bibi Nelson, Matt Johnson, Isabel Lizardi & Becky Pilditch (영국 RCA)

※ 아래 두번째 동영상은 영국의 DJ Calvin Harris가 전도성 잉크를 사용하여, 15명의 비키니 여성과 함께 신곡 Ready for the weekend를 연주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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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라이버전스 (Trivergence) : 네트워크 상시접속 – 하드웨어 플랫폼 – 소프트웨어 플랫폼 – 콘텐츠 & 서비스가 하나로 연결되는 수직통합 현상이 단말 제조사 및 이동통신사 등에게 중요시 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 트라이버전스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손꼽히고 있는 기업이 바로 애플(Apple)이다. 애플은 하드웨어 플랫폼(H/W Platform) – 소프트웨어 플랫폼(S/W Platform) – 서비스 플랫폼(Service Platform)에 이르는 3가지 핵심 플랫폼 영역을 완벽히 수직 계열화(Vertical Integration)화 함으로써 MP3P, 휴대폰 등 단말 시장에서부터 앱스토어(App Store)로 대변되는 서비스 시장에 이르는 전 부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통제의 결과, 소비자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이 애플 비즈니스 영역에서만 돌고 도는 현상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즉, 아이폰(iPhone)을 구매한 소비자는 다시 앱스토어나 아이튠스(iTunes)에 들어와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 받고, 애플이 인수한 광고업체 콰트로 와이어리스(Quattro Wireless)에서 쏴주는 어플리케이션 홍보광고에 매혹되어 다시 어플리케이션을 재구매하게 된다.

2) 2010년 국내 휴대폰의 전체 시장 규모는 약 2,400만 대로 예상... 이중 스마트폰은 약 200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함. (2009년 약 50만대)

3) 이동통신사 및 단말 제조사의 단말 전략 관점은 더 이상 디자인/폼 팩터(Form Factor)가 아닌 하드웨어 플랫폼 – 소프트웨어 플랫폼 – 콘텐츠 & 서비스로 이어지는 수직체계의 효율적 통합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4) 퀄컴의 경우, 스마트폰이나 스마트북(Smartbooks) / MID를 겨냥한 최고 사양의 스냅드래곤(Snapdragon) 라인업을 개발하여 기존 휴대폰 시장에서의 독보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개화기에 있는 단말 시장 장악을 위한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퀄컴의 SoC 집적도 수준은 업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스냅드래곤은 3G + Wi-Fi + GPS + Bluetooth + Media Core + GPU + Mobile TV(Media Flo) + HD 통합의 총 8 in 1 기능(하나의 칩에 8가지 시스템 기능을 통합)까지 구현하고 있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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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9 15: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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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이동통신업계 동향 분석 회사 Juniper Reserch의 2010 톱10 Wireless Prediction : PDF 다운로드 --> http://www.juniperresearch.com/toptenwirelesspredictions2010/TopTenWirelessPredictions2010.pdf
  2. 2010.01.20 10:4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모바일 마케팅쪽에서 일하고 있는 초짜 사원입니다^^이렇게 좋은 자료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려요~
  3. 2010.01.22 23:4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Top 8 Mobile Trends of 2010 --> http://blog.appboy.com/2010/01/top-8-mobile-trends-of-2010/

Freeconomics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예시를 정리해 놓은 LG경제연구원의 훌륭한 PDF자료 (21페이지)...

http://www.lgeri.com/uploadFiles/ko/pdf/man/LGBI1007-02_20080923150035.pdf

-공짜경제 (Freeconomics =Free+Economics)란 과거에 유료였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무료로 또는 매우 저렴하게 제공하고, 대신 시장의 관심(attention)과 명성(reputation), 광범위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해, 이를 바탕으로 관련 영역에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방식을 말한다.

-향후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공짜경제 사업모델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공짜경제는 다음 4
가지 특성을 가진 산업에서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강력한 대체재가 나타났거나 제품 범용
화가 빠르게 진전되는 산업(음악, 서적, 방송, 신문), 둘째, 고정비가 크고 한계비용이 적은 산업(항
공, 운송, 인프라), 셋째, 시장이 크고 성숙되었거나 특정 기업이 거의 독점하는 산업(패키지 소프트
웨어), 넷째, 산업간 융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분야(방송통신) 등이다.

-유럽 저가 항공사의 선두주자인 라이언에어(Ryanair)는 2007년 5월 100만 좌석 무료 행사를 벌였다. 또한 금년 9월 초 항공료 0파운드(세금은 10파운드 별도) 행사도 진행했다. 라이언에어의 CEO인 마이클 올리어리(Michael O’leary)는 “미래에는 승객 중 절반 이상에게 무료로 비행기를 타게 해주겠다”는 호기로운 포부도 밝힌 바 있다. 놀랍게도 라이언에어는 공짜 항공권을 뿌리는 기행을 하면서도 10%대 중반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다.


-라이언에어가 고수익을 거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비결은 3가지이다. 첫째, 비용 절감이다. 기
내 서비스나 편의장치들을 없애고, 발권도 인터넷으로만 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였다. 또한 이용률이 떨어지는 변두리나 시골지역의 공항을 이용해 공항 이용료도 낮췄다. 둘째, 항공요금의 극단적인 차별화이다. 공짜 항공권은 주로 주중이나 심야 등 공석이 많은 시간대에 쓸 수 있는 것이다. 주말이나 인기시간대에는 제값을 받는다. 빈 좌석으로 가느니 아예 공짜로 제공해 확실한 초저가 이미지를 심고 손님도 더 태우자는 것이다. 셋째, 수익원 다변화이다. 라이언 에어는 항공권 자체는 공짜 또는 저렴하게 주지만, 대신 수화물료, 기내 음료수 판매, 우선 탑승 시 요금, 신용카드 취급수수료, 탑승자 보험 판매, 호텔 및 렌탈카 예약 연계 수수료 등에서 수익을 창출한다. 빈 자리로 가는 것보다는 한 명이라도 더 태우는 것이 유리한 이유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기내 광고를 강화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수익원들의 성격이다. 수화물료, 기내 음료수 판매, 우선탑승 시 요금, 신용카드 취급수수료 등은 사업 재정의 관점에서 기존 항공료 요금체계를 분해하여 만들어낸 수익원이다. 기존의 비싼 요금에 포함된 요소들을 분리해 내서 소비자들이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 만든 것이다. 당연히 여행객 중 필요한 사람들은 이를 이용하게 된다. 또한 탑승자 보험이나 호텔 및 렌탈카 예약 연계 수수료는 가치이전 방식이다. 라이언에어는 자체 보험회사를 만들고 홈페이지를 여행 포털 형태로 구축해 다른 보험회사나 여행사로 갈 가치를 자신이 획득한다. 나아가 최근에는 기내 광고를 통해 스폰서 방식의 수익까지 창출하려 하고 있다. 이처럼 복합적인 사업 모델을 만들었기 공짜로 항공권을 주고도 고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공짜경제 개념은 롱테일 경제의 주창자인 크리스 앤더슨이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의 ‘2008년 세계경제 대전망’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트렌드로 소개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내년에 공짜경제를 다룬 신간 서적을 출간할 예정인데 이 책 역시 디지털 파일 형태로 무료로 배포할 계획이다.

-질레트는 이미 100년 전에 면도기를 공짜로 주고 면도날 판매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일회용 면도기 시장을 창조했다. 이런 수익모델은 이동통신 산업에서도 나타난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휴대전화를 사실상 공짜로 주고, 이동통신 요금에서 그 이상의 수익을 낸다. TV, 라디오, 신문 등 미디어 산업도 공짜경제가 보편화된 곳이다. 공중파 TV나 라디오는 고객에게 방송 컨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에서 수익을 낸다. 신문 또한 잘 알려진 것처럼 수익의 대부분을 구독료가 아니라 광고에서 얻는다. 특히 최근들어 공짜경제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것이 인터넷 산업에서 보편적인 사업모델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구글이나 네이버는 서비스 이용자로부터 사용료를 받지 않는 대신 인터넷 광고를 통해 광고주로부터 수익을 얻는다.

-2007년 8월 영국 음반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1980, 1990년대 팝 음악계를 주름잡았던 가수 프린스(Prince)가 일간 신문인 데일리메일의 일요판에 신작 앨범을 끼워 공짜로 뿌렸기 때문이다. 프린스는 이를 통해 런던 콘서트 투어를 홍보했고, 실제로 큰 성공을 거뒀다. 공짜로 배포한 CD 300만장의 인세(560만 달러)는 날렸지만, 콘서트는 21회 모두 성황을 이루었다. 프린스는 콘서트 입장권 판매만으로 2,340만 달러를 벌었고, 데일리메일로부터 100만 달러의 라이선스료도 받았다. 프린스는 결국 신작 앨범을 공짜로 뿌려 1,880만 달러(한화 190억원 상당)를 버는 통큰 장사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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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산업에서도 공짜 사업모델이 큰 이슈이다. 유선통신에서는 스카이프가 선두주자다. 이 회사는 인터넷 전화(VoIP) 기반의 ‘가입자간 통화 무료’ 정책을 내세워 전세계에서 2억 7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그럼 스카이프는 어디에서 돈을 벌까? PC에서 일반전화나 휴대전화로의 통화는 유료이다. 또한 음성메일에 저렴한 요금을 부과하고, 헤드셋이나 전화기 등 관련 하드웨어 장비에 대한 라이선스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창출한다.


-잭스터(Jaxtr)는 소셜 네트워킹에 VoIP를 결합시켜 주목을 받고 있다. 블로그나 미니 홈피에 게재한 잭스터 위젯을 통해 블로그 방문자가 블로그 주인에게 전화를 걸 수 있게 하는 컨셉이다. 전화 요금은 받는 사람이 시내 통화료 수준으로 부담한다. 전화 거는 사람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해도 공짜라는 것이다. 한편 자자(Jajah)는 스카이프와 달리 별도 소프트웨어가 필요 없고, 회원 간에 일반전화로도 무료통화가 가능하다. 회원이 자기 번호와 상대방 번호를 입력해 놓으면, 서버가 양쪽으로 전화를 걸어 연결해주는 콜백(call-back)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전화료는 거는 측에서 내는데, 이를 서버 측에서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자자는 통화 중 PC 화면에 광고를 띄우거나 일반전화의 통화연결 시 컬러링 형태의 음성광고를 내보낸다. 인터넷 광고 모델을 음성통화에 적용한 셈이다.

-버진 모바일은 2006년 여름부터 슈거 맘마(Sugar Mama)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휴대전화로 배달된 광고메일을 보고 설문조사에 응답하면 1분 무료통화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2007년말 공짜 통화 이용자는 60만 명(총 가입자 510만 명의 12%)으로, 총 900만 분의 무료 통화가 제공됐다. 영국의 블라이크도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16~24세 집단을 고객으로 겨냥해 2007년 9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광고 수신자가 10만 명, 광고응답률이 29%에 이르는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대학가에서는 최근 공짜 복사 서비스가 좋은 반향을 얻고 있다. 게이오대학 학생들이
2006년 4월 설립한 타다카피(Tadacopy)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대기업이나 학교근처의 사업자들로부터 스폰서링을 받아 복사용지 뒷면에 광고를 싣는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공짜로 복사해서 좋고, 광고주들은 광고지를 학생들이 오래 간직하게 되니 좋아한다. 이처럼 높은 호응을 기반으로 공짜 복사 사업은 2년만에 44개 대학으로 확대됐다.

-미국의 프리로드 출판사(Freeload Press)는 경영, 금융, 컴퓨터분야의 교과서들을 전자 파일로 만들고, 챕터 마지막 페이지마다 광고를 삽입해 무료로 배포한다. 덴마크의 벤터스 출판사(Ventus Publishing)도 유사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냉장고를 공짜로 주는 기업도 나타났다. 유럽의 백색가전 기업인 보쉬-지멘스(Bosche-Siemens)는 브라질의 전력회사와 제휴해 빈민들에게 고효율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줄 계획이다. 이 사업의 수익모델은 청정개발체제(CDM)에 숨어있다. 청정개발체제는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실시하고, 탄소배출권 형태로 보상을 받아 수익을 보전하는 사업 형태다. 보쉬-지멘스는
최신 냉장고를 공짜로 주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구형 냉장고를 수거한다. 이후 냉장고의 전기 사용량 감소분과 구형 냉장고의 HFC(수소불화탄소) 냉매 처리분을 CDM 실적으로 인정받아 비용을 보전한다.

-최근 ‘도시 교통 체제의 녹색 전환’ 성공 사례로 각광받는 프랑스 파리의 벨리브 (Velib) 사업도 공짜경제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벨리브(Velib)는 자전거(Velo)와 자유(Liberte)의 합성어로 대기오염과 교통 체증을 줄이기 위해 2007년부터 시작한 자전거 무인 대여 프로젝트이다. 사용하려면 일단 연간(29유로), 주간(5유로), 일간 (1유로)의 이용권을 사야 한다. 실제 사용 요금은 매우 저렴하다. 30분 미만은 무료, 30분~1시간은 1유로, 그 이상은 추가요금이 붙는다. 또한 파리 지역에 대여소가
1,200개나 있는데, 아무 곳에 돌려줘도 된다. 저렴성 과 편리함 때문에 하루 평균 11만~12만 명 정도가 이용한다. 재미있는 점은 사업의 운영 주체가 파리시가 아니라 JC드코(JC Decaux)라는 유럽 굴지의 옥외광고 회사라는 사실이다. JC 드코는 벨리브 사업에 9000만 유로(한화 1,400억원 상당)라는 큰 돈을 들였다. 대신 파리 시내 1,600여개의 옥외광고판에 대한 10년간 독점 이용권을 연 350만 유
로라는 염가에 얻어 손실을 보전했다. 2~3년 후에는 흑자 전환도 예상된다.

-심지어 2011년경에는 자동차를 공짜로 주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벤처 기업인 베터플레이스는 이스라엘에서 무료 전기 자동차 보급 사업을 추진 중이다. 통신회사가 휴대전화를 공짜로 주고 분당 통화요금에서 수익을 내는 것처럼, 이 회사는 전기 자동차를 무료 또는 낮은 가격에 소비자에게 주고 주행거리에 따라 사용료를 받을 계획이다. 이 사업모델이 주목받는 이유는 배터리의 높은 가격, 짧은 주행거리, 긴 충전시간 등 지난 20년간 풀지 못했던 전기자동차 사업의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했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 배터리는 약 1만 2,000달러로 차량 가격 상승의 주범이다. 배터플레이스는 배터리 소유권을 갖고 배터리를 운전자에게 대여한다. 운전자는 자동차를 배터리 없이 개별 구매하든지, 배터리 포함해 렌트하는 방식으로 초기 구매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한 전기자동차는 현재 배터리 기술로 4~5시간 충전해 150km 정도만 갈 수 있어 장거리 운행에 취약하다. 이 점은 충전소 인프라를 마치 주유소처럼 전국에 구축해 장거리 운행 시 쉴 때마다 배터리를 교체해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공짜경제가 주목할 만한 트렌드로 부상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1) 소비자들의 공짜 심리, 실질 구매력 약화, 정보력 증대 때문이다. 2) 기술 진보에 따른 한계비용 감소, 제품 범용화, 컨버전스도 원인이다. 3) 가장 주목해야할 원인은 희소 자원의 변화와 창의적 사업모델의 중요성 증
대이다. 경영학자 토머스 데이븐포트는 기업이 선점해야 할 핵심 자원이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즉 글로벌화와 정보화의 급속한 진행에 따라 토지, 자본, 노동은 더 이상 희소 자원이 아니며, 진정 희소한 자원은 고객의 관심, 시간, 평판이라는 것이다.

-애플, 노키아, 구글 등은 최근 경쟁적으로 SDK(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무료 배포하고 있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금전적 수익이 아니라 차세대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의 지배력이다.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무료 제공하여 프로그램 및 콘텐츠 프로슈머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고 자사 중심의 ‘프로슈머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수준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익 창출 복안을 본격적으로 펼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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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red의 08년 1월 기사 "The Untold Story: How the iPhone Blew Up the Wireless Industry" 를 애플포럼의 casaubon님(http://casaubon.tv/)이 번역한글...

http://www.appleforum.com/mac-column/53674-iphone-%EA%B0%9C%EB%B0%9C%EC%9D%98-%EB%92%B7%EC%9D%B4%EC%95%BC%EA%B8%B0.html

http://www.wired.com/gadgets/wireless/magazine/16-02/ff_iphone?currentPage=all (--> Wired 원문보기)

데모는 잘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2006년 가을, 늦은 오전이었다. 거의 한 해 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제작에 200여명의 애플 엔지니어들을 소집하였다. 애플 내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들이었다. 하지만 애플 이사회의실 안에 들어온 아이폰 프로토타입은 여전히 재앙적인 수준이었다. 버그가 많았다. 잘 돌아가지 않았다. 전화도 계속 끊겼고 배터리 또한 완충 전에 충전이 멈출 정도였다. 데이터와 애플리케이션 또한 사용이 불가능했다. 문제점은 끝이 없었다. 데모 마지막 순간, 잡스는 십 수번의 지적을 하고는, 방 안 사람들을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물건이 못나왔구만."

잡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짜증 이상의 공포감이 감돌았다. 직원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애플 CEO도 무섭기는 하지만, 으레 그러려니 하면 된다. 하지만 CEO께서 이번만은 대단히 차분하고 조용히 말했었다. 이 회의에 참가했던 한 직원의 말이다. "애플에 들어와서 이번만큼 으스스했을 때가 거의 없었어요."

결과는 심각했다. 아이폰은 매년 열리는 맥월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물건이었고, 몇 달 뒤 출시를 해야 했다. 1997년 애플 복귀 이후, 잡스는 맥월드를 활용하여 주력 제품을 선보여왔고, 애플 소식통들은 언제나 맥월드를 손꼽아 기대해왔다. 잡스는 이미 차세대 맥 OS, 레퍼드의 연기를 인정한 상태였다. 아이폰마저 준비가 안된다면 맥월드는 김빠진 맥주였다. 비판자들이 달려들 테고, 주가도 폭락할 것이었다.

AT&T는 또 어떻게 생각할까? 1년 반에 걸친 비밀회의 끝에 잡스는 마침내 AT&T의 휴대폰사업부(당시는 Cingular였다)와 계약을 끌어낼 수 있었다. 5년간의 독점판매권은 판매의 약 10%를 AT&T 스토어에서 하고, 아이튠스 수입의 약간을 넘기면서 잡스에게 전에 없던 권력을 쥐어주는 계약이었다. 그는 일전에 AT&T를 부추겨서 신기능, 소위 비쥬얼 보이스메일을 개발하도록 시키고, 휴대폰 등록 과정 시간을 단축시키도록 하였다. 이것만으로도 AT&T는 수 백만 달러와 수 천 시간의 수고를 들여야 했다. 게다가 잡스는 독특힌 수입-배분을 고집했다. 아이폰 고객의 AT&T 통신요금 10%를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아이폰 디자인과 제조, 마케팅을 애플이 완전히 통제하겠다는 조항도 물론이다. 실로 잡스는 가늠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제일 거대한 휴대폰 업체를 상대로 유리한 협상을 끌어낸 것이다. 이제 그가 할 일이라고는 시한 지키기 뿐이었다.

즉, 아이폰 작업 실무자들로서, 향후 3개월은 제일 스트레스가 많은 기간이 되리라는 의미였다. 시한을 지키라는 소리가 복도까지 연일 들릴 정도였다. 밤새 코딩을 해서 피곤해 하는 엔지니어들은 잠만 보충하고 다시 합류했으며, 한 제품관리자는 사무실 문을 너무나 세게 닫아서, 손잡이가 부러지고 갇혀버린 적도 있었다. 1시간 뒤에야 동료들이 와서 알루미늄 뱃트로 그녀를 구해낼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압력 끝에, 2006년 12월 중순(맥월드 열리기 불과 수 주일 전), AT&T에 보여줄 프로토타입이 나올 수 있었다. 그는 AT&T의 보스, 시그맨(Stan Sigman)을 라스베가스의 Four Season 호텔에서 만났고, 아이폰의 훌륭한 화면과 강력한 웹브라우저, 매력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보여주었다. 과묵한 텍사스 사나이 시그맨은 미국의 거대 전화통신업체에 만연한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이폰을 본 뒤, "내가 이제까지 본 그 어떤 것보다도 최고다"라 말할 정도였다. (이런 저런 뒷이야기는 아이폰 제작에 관여한 이들로부터 입수하였으며, 애플과 AT&T는 특정 내용이나 회의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을 것이다.)

여섯 달 뒤인 2007년 6월 29일, 아이폰이 발매된다. 분석가들은 2007년 말까지 300만 대 정도 팔려나가지 않겠나 말했었다. 이는 최고로 빨리 팔려나간 스마트폰이라는 얘기였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아이폰은 제일 이윤이 남는 애플 기기이기도 하다. 399달러짜리 아이폰 당 80달러 씩의 이윤을 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약정 AT&T 요금 240달러도 있다. 게다가 아이폰 구매자의 약 40%는 새로 AT&T를 선택한 이들이었으며,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도시에서 AT&T의 데이터 트래픽은 3배가 더 늘어났다.

분명 아이폰은 애플과 AT&T 양사의 효자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그 진짜 충격은 110억 달러 어치의 미국 휴대폰 산업에 있었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휴대폰 제조사들을 농노 취급해왔다. 통신망을 담보로, 휴대폰 사양이나 비용, 기능을 모두 일일이 통제해 온 것이다. 이들은 휴대폰을 손해보고 파는 싸구려 물건 취급하였다. 게다가 대량의 보조금으로 이용자들을 통신사 요금제에 묶어 놓았다. 그리고 아이폰은이러한 힘의 균형 상태를 깨버렸다. 통신사들은 비싸다 하더라도 잘 만들어진 휴대폰만 있으면 고객을 유치하고 수입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제 통신사의 마음이 아니라, 소비자의 마음을 끌 만한 휴대폰 제작 경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각 제조업체들은 애플과 같은 계약을 하려하고 있다. Piper Jaffray의 증권분석가 올슨(Michael Olson)의 말이다. "아이폰은 이미 통신사와 제조업체의 지형을 뒤바꾸고 있습니다."

첫 아이포드가 나온지 얼마 안된 2002년이었다. 그 때부터 잡스는 휴대폰 개발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보기에, 수 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휴대폰과 블랙베리, 이제 MP3 플레이어까지 따로 따로 들고다니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당연히 한 개만 들고다니고 싶어한다. 그는 앞으로 휴대폰과 휴대용 이메일기기, 그리고 더 많은 기능이 합쳐져서 아이포드의 지위를 위협하리라 생각했다. 아직 새로운 아이포드 라인을 지키기 위해, 잡스는 결국 휴대폰 사업에 진출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개념이 이렇게 확실하다면, 장애물도 확실했다. 데이터 통신망은 느리고, 휴대용 인터넷 기기용으로 준비도 안되어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가 아이폰에게 필요했다. 아이포드 OS는 복잡한 네트워킹이나 그래픽용으로는 충분하지 못했고, 오에스텐을 작게 만들어도 휴대폰이 다루기는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경쟁도 강력했다. 2003년, 소비자들은 Palm Treo 600과 블랙베리에 몰렸다. Palm Treo 600은 PDA와 휴대폰을 합쳤고, 블랙베리 역시 단일 패키지였다. 소위 컨버전스의 수요가 있다는 의미였다. 애플 엔지니어들이 넘어서야 할 벽이 또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통신사 문제도 있었다. 통신사가 휴대폰의 모든 것을 지시내린다는, 휴대폰을 통신망 가입을 위한 미끼 정도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잡스도 알고 있었다. 통제에 관한 한 악명높은 잡스다. 양복쟁이들(group of suits)에게 아이폰 디자인을 맡길 사람이 아니다.

2004년, 애플의 아이포드 사업은 날로 중요성을 더해갔다. 하지만 전에 없이 취약한 부분도 늘어났다. 아이포드가 애플 수입의 16%를 차지했지만, 당시 3G 휴대폰들이 인기를 얻는 중이었다. Wi-Fi 폰도 곧 나올 태세였으며, 스토리지 가격은 떨어지고, 뮤직스토어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지배적인 뮤직플레이라는 위치가 위험해 보였다.

그 해 여름, 잡스는 공개적으로 애플폰을 개발하고 있지 않다 말하였지만, 그는 휴대폰 산업 진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통신사를 우회하기 위해 그는 모토로라에 접근하였다. 손쉬운 전략처럼 보였다. 모토로라는 RAZR로 유명했고, 모토로라 CEO, 잰더(Ed Zander)와 잡스는 잰더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있을 때부터 알던 사이였다. 애플은 뮤직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였고, 모토로라와 통신사인 Cingular는 복잡한 하드웨어 개발에 집중하였다.

잡스 계획에 따르면, 모토로라는 당연히 RAZR의 멋진 후계 기종을 내보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플과 모토로라, Cingular는 거의 모든 것을 흥정했다. 노래가 들어가는 방법과 저장 방법, 심지어 회사 이름을 어떻게 표시하는 것까지 모든 것이었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2004년 말에 나왔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휴대폰 자체가 못생겼다.

2005년 9월, 잡스는 태연자약하게 로커(ROKR)를 선보인다. 그는 로커가 "휴대폰용 아이포드 셔플"이라 소개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잡스는 로커가 별로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소비자들도 나름 로커를 증오하였다. 음악을 직접 다운로드할 수 없고, 100곡만 넣을 수 있었던 로커는 순식간에 미국 휴대폰 산업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드러냈다. 소비자들은 뒷전이었다. 본지는 2005년 11월, 커버스토리를 통해 휴대폰 산업이 어느 정도로 엉망진창인지 알린 바있었다. "YOU CALL THIS THE PHONE OF THE FUTURE?"


The Apple Touch
애플은 두 대의 뮤직폰을 개발하였다. 하나는 2005년, 모토로라와 합작한 로커다. 로커는 전통적인 휴대폰 제조업체와 통신사의 관계였다. 하지만 2007년 여름에 나온 아이폰은 애플이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로커는 생산에 들어갔지만, 잡스는 역시 휴대폰을 직접 만들어야겠노라 깨닫게 된다. 2005년 2월, 그는 Cingular와 함께 모토로라 없이 둘만의 파트너쉽을 꾸린다. 맨하탄의 한 호텔에서 열린 비밀회의에서 잡스는 Cingular 중역들에게 자기 계획을 털어놓는다. 이 자리에도 시그맨이 있었다. (2006년 12월, AT&T가 Cingular를 인수할 때에도 시그맨은 사장으로 남아 있었다.) 잡스는 세 문장으로 된 메시지를 남겼다. 첫 번째. 애플은 경쟁사를 수 년은 앞설, 정말 혁명적인 기기를 만들 기술을 갖고 있다. 두 번째. 애플은 협상을 위해 당신들에게 독점판매권을 고려할 준비가 되어있다. 세 번째. 하지만 애플은 아예 통신사로 나설 준비도 되어 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애플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1년간 타블렛 PC용 터치스크린 기술을 연구해오고 있었다. 이들덕분에 잡스는 휴대폰용 인터페이스도 유사하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게다가 ARM11 칩이 나온 덕에, 휴대폰 프로세서는 마침내 휴대폰과 컴퓨터, 아이포드 기능을 한데 다룰 만큼 빨라지고 효율성을 갖추게 되었다. 게다가 무선통신비도 저렴해서 애플이 이를 소비자에게 되팔 수 있었다. 이미 Vergin이 그런 사업을 하고 있었다.

시그맨과 그의 팀은 즉각 아이폰 제작에 뛰어든다. Cingular의 전략도 다른 통신사와 다르지 않다.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더 많이, 휴대폰 상의 웹접근을 더 많이 해 주기를 바랬다. 음성 통신 사업은 쇠락중이었다. 가격경쟁이 마진을 하락시켰기 때문이다. 음악과 비디오를 직접 다운로드하고, Wi-Fi 속도로 인터넷을 누린다면, 아이폰은 데이터 통신망 사용자를 늘릴 수 있었다. 음성이 아닌 데이터다. 데이터의 마진이 훨씬 높다.

더 있다. Cingular 팀은 휴대폰 사업 방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통신사들은 통신망을 소중한 보물인양 다루고, 휴대폰은 그저 거들 뿐이라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전략이 그들을 배불렸다. 저렴한 휴대폰을 사도록 보조금을 지급하면, 신규 가입자를 끌기 더 쉬워진다. 이들을 장기 약정으로 묶으면 꾸준한 수입을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휴대폰 인터넷 접속은 이제 사치가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게다가 통신사 최대의 난제는, 신규 고객 확보가 아니라 상대방 고객 뺏어오기이다. 저렴한 휴대폰만으로는 안된다는 얘기이다. 시그맨과 그의 팀은 가입자들이 정말 반할 휴대폰, 다른 통신망에서는 못쓰는 휴대폰을 원했다. 잡스 아니고 누가 그런 휴대폰을 만들리?

Cingular 입장에서 애플의 야망은 감질나는 한편, 신경을 거슬리기도 하다. 아이포드 메이커와의 화기애애한 관계라면 AT&T에게 섹시함을 안겨다줄 수 있다. Cingular가 거절할 경우, 잡스를 분명 받아드릴 회사는 또 있다. 게다가 잡스가 자기 아이디어를 원하는 곳 어디에라도 팔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었다. 그러나 일찌기 잡스가 원하는 융통성과 통제력을 허용한 통신사는 없었다. 시그맨은 잡스의 제안에 대해, 이사진을 설득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시그맨이 옳았다. 협상은 1년을 더 끌었다. 시그맨과 그의 팀은 자기네가 너무 양보하는지 계속 의문스러워 하였다. 이 때 잡스는 Verizon 중역진도 만났는데, 이들은 즉각 거절하였다. 그들을 탓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통신사들은 독점적인 통신망을 통해 서비스를 판매하여 소비자들에게 요금을 부과해왔다. 잡스에게 통제권을 그렇게 많이 주어버리면, Cingular는 고가의 통신망을 단순한 콘텐트 전송수단으로 전락시켜버리는 꼴이 된다. 시그맨의 팀은 간단히 내기를 걸었다. 아이폰이 데이터 트래픽을 더 많이 일으키면, 콘텐트 협상에서 잃은 수익 이상을 채워주리라는 내기였다.

잡스는 협상의 상세한 부분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2005년 추수감사절 즈음, 그러니까 최종 계약이 성사되기 8개월 전이다. 이 때 그는 엔지니어들에게 지시하여 최대한 속도를 내도록 시켰다. Cingular와의 협상과는 별개로 엔지니어링과 디자인 면에 있어서의 장애도 만만하지 않았다. 우선은 운영체제 문제가 있었다. 애플 폰 개념을 착안한 2002년 이래 모바일 칩은 성장하였고, 이론상 맥 OS를 지원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상당한 재작성과 간소화가 필요했다. 아이폰용 OS는 수 백 메가바이트이어야 했다. 오에스텐 1/10 크기다.

아이폰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 잡스와 애플 내 최고 중역들은 이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했다. 엔지니어들은 신중하게 리눅스를 고려하였다. 이미 휴대폰용 리눅스가 쓰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들의 소프트웨어 쓰기를 잡스는 거부하였다. 그래서 애플은 일단 프로토타입 휴대폰을 만들고, 아이포드 안에 임베딩하여, 클릭휠을 다이얼로 만들었다. 이 때는 숫자 선택과 통화에만 쓰였다. 인터넷용은 안되었다. 2006년 초, 애플 엔지니어들은 드디어 오에스텐을 인텔칩용으로 만들어냈고, 이내 아이폰용 오에스텐의 재작성에 들어갔다.

어떤 운영체제를 써야하냐는 논의가 익숙한 곳이 애플 중역 회의다. 하지만 안테나 디자인이라든가, 라디오-주파수 방열(radiation), 통신망 시뮬레이션 등, 휴대폰에 대해서만은 준비가 덜되어 있었다. 아이폰의 자그마한 안테나가 효과적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는 작업에만, 수 백만 달러 어치의 구매와 로봇-장비 실험실이 필요했다. 발열 실험을 위해서는 아교로 만든 인간 머리 모형까지 제작하였다. 통신망 퍼포먼스 측정을 위해서는, 역시 수 백만 달러를 들여 십 수 곳의 서버-크기 라디오-주파수 시뮬레이터를 사들일 정도였다. 심지어 아이포드로 익힌 디자인도 아이폰 화면 제작에는 별 도움이 못 되었다. 잡스 자신이 프로토타입을 움직여보고 발견한 사실이었다. 스크래칭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터치스크린을 아이포드와 같은 플라스틱이 아니라, 유리로 만들어야 한다. 한 내부인에 따르면, 아이폰 제작에 애플이 거의 1억 5천만 달러를 썼으리라 한다.

이 온갖 과정 내내, 잡스는 비밀을 유지시켰다. 내부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P2로 불리었으며, 이 의미는 Purple 2였다. (포기한 아이포드 폰이 Purple 1이었다.) 팀도 애플의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캠퍼스 안에 쪼개져 있었다. 애플 중역들도 Cingular로 출장갈 때마다, 애플이 아이폰 트랜스미터를 만들 때 사용한 이름인 Infineon사의 직원으로 등록을 시켰다. 심지어 아이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팀도 분리되어 있었다.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가짜 소프트웨어로 가득찬 서킷으로 작업하였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나무상자에 놓인 서킷보드 상에서 작업을 하였다. 2007년 1월, 잡스가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선보였을 때, 실제로 작동하는 아이폰을 이전에라도 본 사람은 각 책임자와 중역 등 서른 명에 지나지 않았다.

하느님이 도우사 아이폰이 워낙 성공했기에, 아이폰의 불완벽성이 가려지기 쉽다. 첫 가격인 599달러는 너무 높았다. (나중에 399달러로 떨어진다.) 아이폰은 AT&T의 느린 EDGE 통신망에서 돌아갔다. 이메일 검색이나 비디오 녹화도 불가능하고, 브라우저도 자바나 플래시는 못돌린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문제가 안 되었다. 아이폰 크래킹이 금세 일어나 다른 통신사에서도 쓸 수 있게 되었고, 개발자와 심지어 업체들까지 뛰어들었다. 소비자들은 쓰기 쉬운 휴대용 컴퓨터를 구입하였고, PC의 발전에 따라, 아이폰은 보다 강력해질 개발의 파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월경 잡스는 개발킷을 공개하여, 누구나 아이폰용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할 참이다.

이제 휴대폰 제조업체들도 아이폰 덕분에 통신사들에 대해 협상력을 갖게 되었다. AT&T가 자기네 가입자들을 빼앗는 광경을 본 통신사들은 이제 경쟁력 있는 기기를 찾아나서는 중이다. 게다가 기꺼이 권위를 좀 내줄 모양새이기도 하다. 제조업체들은 이제 제품에 대해 보다 많은 통제력을 갖게 될 것이다. 가입자들도 이제 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도 이제 통신사들이 통신망에 대한 장벽을 조금씩 누그러뜨리면서, 보다 많은 기회를 얻게 된다. T-Mobile과 Sprint는 구글 Android(독립 개발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운영체제)와 파트너쉽을 맺었다. 제일 완고한 통신사 중 하나인 Verizon도 11월경, 통신망을 개방시켜서 호환되는 휴대폰을 써도 좋게 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AT&T도 며칠 뒤 유사한 발표를 하였다. 결국은 완전히 새로운 휴대폰 환경이 도래한다는 의미다. 즉, 어떤 휴대폰, 어떠한 통신망에서도 돌아갈 애플리케이션이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더 많은 융통성과 인터넷 기능이 휴대폰에 추가될 것이다.

통신사의 악몽이 재현된 것 같기도 하다. 아이폰이 권력을 소비자에게, 개발자에게, 핸드폰 제작사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통신망은 이제 단순한 전깃줄에 불과하게 된다. 하지만 보다 혁신을 북돋으려면, 통신망 자체의 가치가 더 높아져야 한다. 소비자들이 휴대폰에 더 많은 시간을 쓸수록, 통신망에도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즉, 통신 요금은 더 올라가고, 모든 수입도 더 올라갈 것이다. AT&T의 마케팅 수석, 로스(Paul Roth)의 말이다. "우리는 시장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그동안 통신사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시나리오야말로, 통신사들에게 절실하다는 의미다. 스티브 잡스가 나서서야, 그들이 이 교훈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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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6 10: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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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배님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제 블로그로 퍼감니다~
  2. jerome
    2009.11.23 17:3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번역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3. justjooo
    2009.11.23 21:1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덕분에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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