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기업들은 성공적인 혁신을 위해, 하드 워킹(Hard working)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회사에 오래 남아서 일을 오랫동안 한다고 해서 혁신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영학자 Elsbach와 Hargadon(2002)은 창의성을 요구하는 업무를 하는 구성원은 일하는 시간 (얼마나 오랫동안 일했는가)보다는 일한 결과의 질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구성원이 스스로 일의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고 인식할수록 일하는 시간에 대한 예측력과 통제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근무시간에 신경 쓰기보다는 창의적인 일 자체에 힘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약 2,200여명의 영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5년의 시차를 두고 조사한 Virtanen 교수팀의 연구결과(2009)를 보면, 주당 40시간 이내로 근무하는 사람에 비해 주당 55시간 이상 근무하는 사람들은 단어 기억 및 추론 등 인지 능력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혁신기업의7가지일하는방식_2012_0715.pdf

2) “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는 목록에서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삭제하지 못하는 한, 당신은 무슨 일이 가장 중요한가를 잘 모르는 것이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Peter Drucker)의 말이다.

3)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결정하는 것은 할 일을 결정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평소 구성원들이 일하는 과정에서 일을 선별하고 집중하도록 유도하였다. 예컨대, 한번은 잡스는 경영층들에게 향후 애플 이 해야 할 일 Top 10 리스트를 선정해 보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경영층이 힘겨운 고민 끝에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10가지를 선정하자, 잡스는 Top 10 리스트의 맨 아래에서부터 위로 7개의 일들을 지우면서, “우리는 위에서부터 딱 3개, 그것만 한다”고 말했다. 또한, 애플은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최고로 잘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은 당당하게 “할 수 없다(Say No)”고 말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이러한 일의 선별과 집중을 통해, 애플은 제품 라인업(Line-up)을 단순화 하였으며, 통상 임원이 1년 동안 담당하는 프로젝트는 3개 정도라고 한다.

4) 흔히 일반적인 기업들은 ‘회사가 얼마나 잘 할 수 있는 일인가’, ‘과연 회사가 나아갈 비전과 방향에 부합하는 일인가’를 면밀히 살피기 보다는 최소한의 성과라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을 시도하곤 한다. 또한, 새로운 혁신을 추진하고자 하는 기업 중에서도 최대한 새로움을 많이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기능이나 디자인을 한꺼번에 만들어 시장에 출시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번에 많은 일을 다 이루겠다는 욕심은 ‘과연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 하는 일의 초점을 흐리게 하여 정작 제대로 된 실행을 저해할 수 있다. “최고로 잘 할 수 있는 것 에 집중하는 것이 회사와 제품을 위한 진리이다”라는 스티브 잡스의 말의 의미는 되새겨 볼 만 하다.

5) 기업이 혁신을 얼마나 잘 하는가의 여부는 구성원들이 주어진 시간을 어떠한 일에 투입하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당수의 구성원들을 보면, 고객, 제품, 시장을 어떻게 혁신해 나갈 것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에 비해, 실속 없는 형식적인 보고서 작성 등 소모적·비효율적 업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곤 한다. 예컨대, 회의의 경우, ▲이슈·문제 발생 시, ‘일단 모여서 논의해보자’는 식으로 특별히 관련 없는 사람까지도 참여하는 회의,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자리가 아 닌, 단순한 현황 공유를 위해 모여서 한 마디씩 하는 회의 등으로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곤 한다. 또한, 보고 관련 업무 역시, ▲보고의 내용보다는 보고서의 형식이 더 중시되어, 보고서를 미화(美化)하는 데에 오랜 시간을 들이거나, ▲동일한 보고 내용임에도 보고받는 사람의 보고서 취향에 맞춰 수 차례 보고서를 수정하거나, ▲본질을 논의하기보다는 단지 많은 현상을 분석하고 자료를 수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수 십여 장의 슬라이드 유첨 자료를 만드는 관행등은 구성원들의 업무 피로도만 높일 수 있다. 반면, 글로벌 혁신 기업들의 경우, 구성원들이 혁신을 위한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회의 및 보고 관련 업무를 효율화 하는 데에 노력하고 있다.



6) GM은 2009년 미국 연방 정부로부터 긴급 구제 자금을 받는 등 신속한 혁신과 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GM의 개혁이 시급한 상황에서도, 당시 다수의 스탭들은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다는 ‘개혁과 관련한 보고서를 어떻게 잘 만들까’에 치중하였다. 이에 당시 CEO, 프리츠 헨더슨(Fritz Henderson)은 외형에 치중한 보고서 작성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타가 가득한 GM 개혁 방안을 담은 공문을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직접 발송하였다. 이러한 상징적 행동을 통해, 헨더슨은 보고서 의 외형에 공들이는 것보다 비록 오타가 있더라도 GM 개혁에 대한 의사결정을 신 속히 내리고 하루라도 빨리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함을 직접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또 한번은 헨더슨이 미국 연방 의회에서 GM의 회생 전략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스탭들은 한달 동안의 밤샘 작업을 통해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보조 자료를 바인더로 묶어서 헨더슨에게 중간 산출물 차원에서 보고하였다. 다음날, 헨더슨은 해당 자료를 만든 팀에게 당장 보조 자료 만드는 일을 중단하라고 지시하면서,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만드느라, 적어도 20여명의 직원이 한 달은 고생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이 자료를 사용하지 않겠다. 이러한 불필요한 자료를 활용하느니, 불완전한 정보라도 의회에 빨리 GM 회생 전략을 말하고 실행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스탭들의 보고 방식에 대한 인식이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7) 인텔(Intel)은 일의 실행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일을 시행하면서 학습하고 개선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처음부터 일을 100% 완벽하게 성공시키겠다는 생각은 성공에 대한 부담감(즉,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일의 진행을 더디게 할 수 있다. 예컨대, ‘과연 이렇게 일하면 계획대로 될 것인지’, ‘혹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좀 더 보완할 부분은 없는지’ 등에 대해 분석 및 점검하느라 정작 일은 시작도 못할 수 있다. 요즘처럼 기술·제품의 개발 및 출시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일의 시시비비를 수 많은 회의나 보고서를 통해 논의만 하기보다는, 때로는 과감하게 일을 시행해 가면서 그 과정에서 학습하고 개선해 가는 방식도 필요할 것이다.

8) 2011년, 구글(Google)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Larry Page)가 구글의 CEO로 복귀 했다. 페이지는 구글이 창업 당시의 신생기업으로서의 신속함과 민첩성이 약화되고, 약 3만여 명의 구성원을 거느린 거대 관료 기업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페이지는 거대하지만 신생기업처럼 빠른 기업의 면모를 되찾기 위한 조직 혁신을 추진하였으며, 그 첫 카드로서 명확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회의방식의 개혁을 꺼내 들었다. 페이지가 추진하는 회의 개혁의 몇 가지 원칙을 보면, ▲‘모든 회의에는 1명의 명확한 의사결정권자가 있어야 한다. 만일, 의사결정권자가 회의에 참석 하지 못하거나, 의사결정이 이루어 질 수 없는 경우에는 절대 회의 하지 않는다’, ▲ ‘의사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무작정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뭔가 신속하고 중요한 결정이 요구된다면, 즉각 회의를 열고 의사 결정하라’, ▲‘회의에는 반드시 10명 미만의 사람만 참석시키라’, ▲‘회의 참석자는 반드시 발언해야 한다. 발언을 통해 공헌할 내용이 없다면 참석하지 마라’ 등이다.

9) 페이지의 회의 효율화 노력은 공식적 회의에서 그치지 않고, 비공식적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성격인 ‘경영진 불펜(Bullpen)’이라는 프랙티스로도 이어지고 있다. 경영진 불펜이란 구성원들이 일하는 과정에서의 부딪히는 장애요인을 직접 듣고 즉석에서 해결해 주기 위해 주요 경영진이 대기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페이지는 2011년, 마운틴 뷰에 소재한 본사의 빌딩(43층)에 작은 소파가 비치된 장소를 마련하고, 자신을 비롯한 제품관리 부사장(Jonathan Rosenberg), 유튜브 최고 임원(Salar Kamangar), 엔지니어링 임원(Jeff Hurber) 등 주요 경영진들이 일주일에 몇 시간을 할애하여 불펜 투수처럼 대기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를 통해 엔지니어들은 경영진들과 소위 임원 사무실이 아닌 좀 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경영층과 논의하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0) 스티브 잡스는 픽사(Pixar)의 CEO로 재직할 당시, “최고의 회의는 우연히 일어나는 회의이다”라고 말하면서, 구성원들이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치며 대화하는 것이 혁신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하였다. 이에 Pixar 본사의 중앙에 아트리움(Atrium)이라는 건물을 배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른 건물(사무실) 둘러싼 형태로 배치함으로써, 아티스트, 작가, 컴퓨터엔지니어 등 모든 구성원이 서로 지나가며 자연스럽게 대화하도록 유도하였다. 특히, 많은 구성원들이 아트리움에 자주 찾아오도록 만들기 위해, 화장실, 회의실, 카페테리아, 커피숍, 기념품 가게 등을 아트리움에 배치하였다. 처음엔 구성원들이 모든 시설이 한 곳에 몰려 있는 것이 불편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화장실을 가거나 음료수를 마시러 가면서 동료들과 자주 마주치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머리 속에 싸매고 있던 고민들을 해결하게 되면서 차츰 이러한 통합적 건물배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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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었던 이원호 소설중 특히, 초반부에 조금 몰입하기 힘들었던 작품... 다만, 2권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부터는 흡입력이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크게 3부정도로 구성될 수 있겠다. 프랑스외인부대 용병 피에르 김과 대원전자 유영화의 고군분투가 1부, 미국 군수산업체의 대리인을 맡으며 서울로 돌아온 김한의 활약이 2부, 미국에서의 스릴넘치는 첩보전이 그 3부이다. 재미있는 것은 네이버, 다음의 블로그나 카페등 어디에도 "유라시아의꿈" 에 대한 관련글은 없다는 것... ㅡ,.ㅡ;; 아무튼, 아쉬운 마음에 3권의 가장 격렬한 액션장면 2곳을 짧게 옮겨본다.   

※ 예스24 중고샵에서 배송료포함 9천5백원에 3권구입, 훈민스캔에서 권당 2천2백원에 PDF스캔, 총 1만6천1백원...

<3권 29p ~ 31p CIA 부국장보 에릭 윌슨 제거 장면> 

12층까지 13개층의 계단을 뛰어내려 오는 동안 김한은 코트를 벗어 던졌고 우지를 빼 들었다. 12층의 비상문 앞에 멈춰선 그는 가쁜 숨을 고르며 손목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헬리롭터에서 내린 지 1분 35초가 지나 있었다. 비상구에서 보면 앞쪽의 왼쪽 세 번째가 윌슨의 사무실이다. 심호흡을 한 그는 비상구의 문을 손톱만큼 열었다. 복도는 조용했지만 왼쪽 엘리베이터 부근에서 낮은 말소리가 들려왔다. 윌슨의 경호원일 것이다. 문을 조금 더 연 그가 한쪽 눈만 내놓고 복도를 보았다. 그러자 시무실 앞에 서있는 두 명의 사내가 보였다. 그들은 앞쪽을 바라보며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신 김한은 복도로 들어섰다. "타타타타타" 몸을 내놓는 순간에 복도가 한눈에 보였고 사내 네 명이 일제히 그를 향해 돌아섰지만 이미 우지는 1분에 600발의 속도로 총 탄이 발사된 후였다. 사내들이 제작기 두 팔을 휘저으며 쓰러진 순간 뒤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탕탕탕" 김한은 어깨를 찢는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 순간 몸을 굴리며 뒤쪽을 향해 우지를 겨누었다. 사내 하나가 한 손으로 총을 쏘며 달려오고 있었다. "타타타타" 엎드린 채 쏘아 갈긴 우지가 사내의 몸에 어지럽게 박혔다. 사내는 이쪽의 동료들 때문에 제대로 겨누지를 못했던 것이다. 사내가 쓰러지기도 전에 몸을 솟구쳐 일어선 김한은 사무실의 문을 발로 차고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그러자 사무실 안에서 요란한 총성과 함께 문에 십여 발의 총탄이 뚫고 나왔다. 김한은 주머니에서 최루탄을 꺼내들고는 안전핀을 이빨로 잡아뜯었다. 그리고는 반좀 열려진 문틈으로 던져 넣었다. 허리에 찬 가스 마스크를 재 빨리 뒤집어쓴 그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앞쪽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안에 가득 타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높고 낮은 비명을 질렀다. 김한은 문을 박차고는 이미 최루가스로 가득찬 방으로 뛰어들었다. 총탄이 쏟아졌지만 위협적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것으로 목표를 찾을 수가 있었다. 짧게 속사를 해서 두 사내를 쓰러뜨린 그는 우지의 탄창을 갈아 끼웠다. 앞쪽 윌슨의 방문은 굳게 닫쳐져 있었다. 방바닥에 엎드린 그는 바깥 사무실은 제압되었다고 느꼈다. 우지를 겨누어 문의 손잡이에 대고 1 초쯤 쏘았을 때 문이 한 뼘쯤 안쪽으로 열려졌다. 몸을 솟구쳐 일어선 그는 문을 박차고는 우지를 좌우로 쏘아 갈기면서 안으로 뛰어들었다. "탕탕탕탕" 뛰어든 순간에 안에서 총성이 울리면서 빛줄기가 보였는데 두 사내였다. 김한은 겨드랑이와 허리에 격심한 충격과 함께 통증을 느꼈으나 몸을 굴리면서 갈라선 두 사내를 향해 탄창이 비워질 때까지 마주 쏘았다. 우지의 탄창에서 빈 쇳소리가 나는 순간 엎드려 있던 김한은 허리춤에 꽂은 베레타를 뽑아 쥐면서 일어섰다. 이미 한 사내는 쓰러져 있었지만 다른 하나는 엎드린 채 권총을 들어 올리려고 기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가스 마스크를 벗어 던진 김한은 비틀거리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사내가 겨우 머리를 들었다. 눈을 부릅뜬 사내는 악문 잇새로 핏줄기를 떨어뜨리고 있었는데 윌슨이었다. 김한은 총구를 윌슨의 옆머리에 대었다. "네 놈이군" 윌슨이 붉은 입을 벌리며 웃는 순간 김한은 방아쇠를 당겼다.



<3권 88p ~ 91p 박필성씨 일가족 구출 장면>

로비로 뛰어든 김한은 시야에 들어온 네 사내를 보았다. 하나는 정면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고 둘은 우측 데스크에서 서로 얼굴을 맞댄 자세였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계단 위에 앉아 있었다. 몸을 굽히며 발사한 김한의 첫발은 엘리베이터 앞에 선 사내의 가슴을 꿰뚫었다. 김한은 몽을 굴리면서 데스크 앞의 두 사내를 향해 네 발을 연발로 쏘았다. 두 사내가 미처 총을 뽑지도 못하고 겹쳐 쓰러졌을 때 계단 위의 사내는 총을 꺼내 들고 있었다. 김한은 엎드린 채 사내를 향해 두 발을 쏘았다. 한 발은 빗나 갔지만 두 번째 총탄에 이마를 뚫린 사내가 계단을 굴러 내려왔다. 퉁기듯이 몸을 일으킨 김한은 계단으로 달려갔다. 계단을 뛰어 오르면서 베레타의 탄창을 빼내고 15발이 장전된 새 탄창을 갈아 끼웠다. 2층의 계단을 달려 오르면서 그는 뒤쪽 혁대에 꽂아 놓았던 또 한 정의 베레타를 왼손으로 뽑아 쥐었다. 이제 두 정의 권총에는 32발의 총탄이 들어 있다. 그가 3층으로 계단을 달려 올라갈 적에 옆쪽 복도에서 떠들썩 한 남녀의 목소리와 함께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방에서 파티를 하는 모양이었다. 4층의 복도가 왼쪽으로 보이는 계단에 닿았을 때 그는 발을 멈추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짐작으로 건물에 뛰어든 지 2분쯤 지났을 것이다. 세 번 숨을 마셨다가 뱉은 그는 발끝으로 걸어 벽에 몸을 붙이고는 복도를 보았다. 한쪽 눈만 내 놓은 그의 눈에 복도 끝의 창가에 서 있는 두 사내가 보였다. 거리는 20미터 정도였다. 다시 한 번 숨을 마셨다가 뱉은 그는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는 똑바로 선 채 두 사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연발로 네발을 쏘았을 때 두 사내는 쓰러졌지만 한 명이 상반 신을 들어 올렸으므로 그는 다가가면서 정확하게 사내의 이마를 쏘아맞췄다. 복도는 조용했고 문이 세 곳 있었지만 안쪽에서는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그는 끝쪽 방 앞으로 다가가 섰다. 그리고는 문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으나 열리지 않았다. 문에 보안구가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권총을 쥔 주먹 끝으로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5초 간격으로 두 번째로 세 번 두드렸을 때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구야?" 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 김한이 벽으로 붙어서면서 입만 문쪽에 대고 말했다. "문 열어. 급하다,급해" "이런, 어지간히 처먹지" 문의 고리가 풀리는 쇳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아래쪽 빗장이 끌러지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김한은 문이 한 뼘 정도 벌어졌을 때 드러난 사내의 이마에 총구를 붙이고는 발사했다. 방 안으로 뛰어든 김한은 응접실의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이 서슬에 이쪽으로 상반신만 비트는 사내를 보았다. 다시 김한의 총구에서 두 번 불꽃이 튀었고 가슴에 두 발을 맞은 사내가 두 다리를 치켜들면서 자빠졌다 "박현옥 씨!" 그때서야 김한이 소리쳤다. "박필성 씨!" 그러자 옆쪽 방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리더니 바지에 셔츠 차림의 박현옥이 먼저 뛰어나왔다. 김한을 본 박현옥이 얼굴을 일그러 뜨리고 이를 드러내 보였는데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었다. "7분 35초가 지났군." 김한에게는 시간을 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비키는 비짝 마른 입술을 혀로 빨았다. 왜건은 건물 바로 건너편에 세워두고 있었지만 길가에 차가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어서 바짝 붙였어도 길 복판에 서 있는 꼴이었다. 그는 아직도 끈적이는 손바닥의 피를 핸들에 문질러 닦았다. 내일 아침에는 핸들을 닦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고 다시 머릿속으로 다짐했다. 현관 앞의 계단에 쓰러진 놈을 현관 안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그때 그는 로비의 참혹한 장면을 보았다. 노랭이 그놈은 전문가였던 것이다. "7분 50초다." 시계를 다시 내려다본 비키가 현관으로 시선을 돌렸다. 건물 안에서는 아직 어떤 낌새도 없었는데 그것이 더 불안했다. 차라리 총소리라도 났다면 개운할지도 몰랐다. 물론 그것은 북한놈들의 총이 발사된 경우겠지만. "8분 5초" 다시 중얼거린 그는 정확히 10분이 되었을 때 떠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미 안병선으로부터 3만 불을 더 받았으니 일이 끝났을 때의 사례금 2만 불은 포기해도 된다. 그때 차 한 대가 뒤에서 다가오더니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제기,8분 15초" 그때 비키의 심장이 벌떡 뛰었고 동시에 눈도 크게 떠졌다. 현관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남녀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눈을 치켜 뜬 그는 이쪽으로 달려오는 두 여자와 두 남자를 보았다. 그중 한 명은 김한이다. 그가 이쪽을 손가락질하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비키는 먼저 핸드 브레이크부터 풀었다. 

※ 이원호 작품목록 : http://www.leewonho.com/sec01/book.php

[이전글] 2012/03/19 - 조폭사 1-2권 + 정복자 1-2권 (이원호,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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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라인서점등에서 사용하는 B4크기의 얇은 뾱뾱이 배송용 봉투를 준비한다. 

2) 아이패드를 이 봉투에 가로로 넣어보면, 안성맞춤으로 잘 맞아 깜짝놀라게 된다.

3) 그냥 남는 공간을 접어도 될것 같긴한데 아무래도 뾱뾱이다보니 두꺼워 각이 잘 안나온다. 자, 이제 가위를 들고 한쪽면과 귀퉁이를 제거해준다.  

4) 아이패드가 쏙 들어간 모습...





5) 날개를 접으면 이런 모양

6) 마지막으로, 책상서랍에 굴러다니는 길다란 고무줄로 한번 묶어준다...

이렇게 해서 1분만에 만드는 아이패드 악세사리 씨리즈 제2호 대충 완성... ㅡ,.ㅡ;;

[이전글] 2010/10/16 - 1분만에 뚝딱 만드는 아이패드 골판지 크래들(?)

※ 참고로 알라딘서점과는 아무런 사이도 아님... 그냥 봉투만 재활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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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ㅋㅋㅋ
    2012.06.28 19: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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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머야ㅋㅋㅋ 하지만 왠지 멋져요
  2. ^^
    2012.07.08 17:5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진짜 넘 맘에 드네요 하하하하.
    기기 자체도 비싼데 비싸게 악세사리 거 들이는 것보다 이렇게 개성 있게 하면 넘 멋질 거 같아요.
    전 죠스바 아이스크림 패키지로 만들어봐야겠습니다.
  3. 아웅굿
    2012.09.16 08:5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ㅋㅋ 멋지당

10년동안 현대차만 벌써 4대째다. 

① 첫번째 차 : 2002년식 아반테 5도어 해치백 1600cc 가솔린 (실버) : 7만3천km 정도 뛰었고, 580만원정도에 SK엔카에 중고로 판매...

② 두번째 차 : 2005년 NF 소나타 2000cc 가솔린 (실버) : 2100만원 정도에 구입해서 3만km 정도 뛰었다. i30사면서 현대 대리점에 1380만원에 넘김...   

③ 세번째 차 : 2008년 i30 1600cc 디젤 프리미어 : 1950만원에 구입, 5만6천km 정도 뛰었고, 1230만원에 중고 판매 --> [이전글] 2008/01/05 - i30 디젤 구입기 및 시승기 / 장단점 분석...

네번째 차로 독일산 해치백을 고집하는 집사람의 주장으로 골프나, 미니, A3등을 수차례 시승해보긴 했으나, 올 초 등장한 신형 i30 시승 한방으로, 결국 i30 재구입 완료... (개인적으로는 레이가 너무 귀여워서 끝까지 레이를 밀어붙였으나 기아 대리점 어디에서도 시승을 해 볼수는 없었다. 차값도 1600만원이 넘는데, 시승없이 그냥 사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실제 운전을 해볼 수가 없으니, 더더욱 집사람을 설득시킬 수도 없었다. 경차니까 그냥 대충~ 사라??)

★ 가솔린 1.6 GDi 블루세이버 오토 차량 가격

- 기본가격 1965만원 + 옵션 (인텔리전트 내비게이션 + 후방카메라 + 가죽시트) 155만원 = 2120만원

- 기타 부대 비용 : 단기의무보험료 3,200원 + 취득세/등록세 1,214,370원 + 공채 124,800원 + 증지대 2,000원 + 차량번호판 28,000원 = 약 140만원

- 총 가격 : 약 2260만원

★ 출고 : 블루세이버 트림 + 산토리니 블루 칼라 + 풀옵션을 선택했더니, 계약후, 인수까지무려 3주나 걸렸음... 

★ 기본 제원 비교

 

 구형 i30 가솔린

 신형 i30 GDi
블루세이버

구형 i30 디젤

신형 i30 디젤

 전장 (mm)

 4245

4300

 4245

4300

 전폭 (mm)

 1775

1780

 1775

1780 

 전고 (mm)

 1480

1470

 1480

1470 

 무게 (kg) 
자동변속기

 1247

1210 

 1328

1290 

 연비 (km/l)

 13.8

17.3 

 16.5

20.0 

 최고출력
(ps/rpm)

 124/6200

140/6300 

 117/4000

128/4000 

 최대토크
(kgm/rpm)

 15.9/4700

17.0/4850 

 26.5/2000

26.5/1900~2750 


★ 구형에 비해 확실히 좋아진 점

1) 디자인 : 역동적이면서도 지저분하지 않고, 스타일리쉬하다. 폭스바겐 골프등과 비교해 봐도 월등한 느낌이다. 국내에서 구입가능한 어떤 해치백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2) 승차감 : 전체적인 느낌은 독일차처럼 단단해졌지만, 승차감은 더 편안해졌다. 과속방지턱을 넘을때도 구형은 조금 꿀렁(?)거려 은근히 신경쓰였는데, 신형은 그렇지 않다. 부드럽고 빠르게 훌쩍 넘어선다. 베리굿...

3) 가속력 : GDI 1.6은 구형 디젤 1.6과 비교해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조용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현대자동차 특유의 초기 가속력도 매우 좋다. 살짝만 밟아도 부웅~ 나간다는 얘기... 

4) 주행시 안정감 : 이부분이 특히 독일차스러워졌다. 코너링할때나 고속주행시, 운전자 의지대로 조종이 가능하다는 믿음감이 조금(?) 생겼다. (그렇다고 골프정도의 수준은 아님...) 가속시나 감속시의 위화감도 없다. 그저 물흐르듯이 부드럽다. 너무 과한 칭찬인가 싶지만, 일단 지금 생각은 그렇다. 다만, 120km/h 정도가 넘으면서 부터는 조금씩 불안해진다.  

5) 정숙성 : 어떨 땐 마치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를 운전하고 있는 것처럼 조용하면서도 민첩하다. 물론, 바로 이전까지 승용디젤을 타고 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저속에서나 고속에서나 흠잡을때없이 조용하다.  

6) 전방시야 : 구형보다 많이 시원해졌다. 프리우스와 느낌이 비슷하다.

7) 오르간 타입 악세레타 페달 : 부드럽고 편안하다. 구형대비 완전 마음에 드는 부분...

8) 깜빡이와 와이퍼 조작 스위치 : 절도감이 확실히 좋아졌고, 단단해진 느낌이다. 사실 구형은 너무 장난감같은 느낌이라 조금만 힘을 줘서 조작해도 부러질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9) 콘솔 : 수납공간이 훨씬 깊어졌다. 역시 만족스럽다.

10) 하이패스 리어뷰 미러 : 더이상 하이패스 단말기를 윈드쉴드에 부착할 필요가 없다. (하이패스 카드만 끼운다고 되는게 아니고, 블루핸즈 A/S 센터가서 기기등록을 해야 한다.)

11) 후방 카메라 : 필요 없을 것 같았는데, 실제 써보니 나쁘지 않다. 다만, 후방 주차 카메라에만 의존하여 주차시 실제 사이드미러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조금 달라, 아직 어색하긴 하다. 

12) 시트 : 역시 구형대비 더 단단해졌고, 몸도 잘 잡아준다. 천연 가죽시트 옵션 굿~  

13) ISG : 연비개선에 초점을 맞춘 블루세이버 트림답게 정차시 자동으로 시동이 꺼져 연료를 아낄 수 있는 Idle Stop & Go 기능을 제공한다. 다만, 조건이 조금 까다롭다. 일단, 엔진이 일정온도 이상이어야 하고, 시트워머, 에어컨, 서리제거기능등을 사용중에는 동작하지 않을수도 있다. (결국, 한여름, 한겨울, 우천시에는 쓸모없다는 얘기... ㅡ,.ㅡ;;) 게다가, ISG가 동작하지 않으면 왜 정차중에 시동이 자동으로 꺼지지 않는지 궁금해서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어떻게 하면 다시 ISG가 동작한다고 클러스터 LCD에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 ISG기능과 블랙박스 카메라와의 관계 : 주차녹화기능을 사용하게 되면, 배터리가 계속 소모되어 ISG기능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 블루핸즈에 문의해보니, 70% 이상 배터리가 남아있어야 ISG가 동작한다고 함. 따라서, 주차녹화기능을 꺼놓거나 아예 시거잭에 전원을 연결해야 원활한 ISG 사용이 가능하다. 

14) GPS : 그동안 외장형 사제 네비만 써왔었는데, 순정으로 매립하니 이렇게 편하고 깔끔 할 수가 없다. 특히 GPS가 순간에 바로 연결되어 깜짝 놀랐다. 네비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AVN시스템의 동작속도 또한 무척 만족스럽다. 이래서 다들 순정네비를 쓰나보다. 굿~

15) HID헤드램프 + LED 포지셔닝 램프 : 구형대비 램프가 훨씬 밝아졌고, LED 포지셔닝 램프는 특히 밤에 멋지다.

16) 사이드 미러 : 걸윙도어처럼 살짝 위로 접혀져 은근히 멋지고, 구형보다 날렵한 모습도 나쁘지 않다.  





★ 거의 단점을 찾아볼 수 없지만, 굳이 사소한 몇가지 언급하자면... 

1) 스티어링 휠 : 단단한 느낌은 구형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다만, 조금만 더 묵직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 스티어링휠의 느낌을 스포츠, 노말, 콤포트, 이렇게 3개로 선택할 수 있는 신기능을 집중적으로 광고했었던 기억인데, 노말, 콤포트 2가지는 너무 가벼워서 사실상 유명무실하고, 그냥 스포츠모드로 고정하고 타면 된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고, 가벼운 휠을 선호하는 사람들한테는 꽤 만족스러울 수도 있겠다.)

2) 시계 : AVN 옵션을 다니, 외장시계가 따로 없고, AVN 내부에서만 시계를 표시하는데, 눈에 잘 띄지 않아 좀 불편하다. 게다가, 네비에서는 시계위치가 좌측으로 옮겨지고 크기도 작아져서 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디지털 외장시계 하나 달아줬으면 참 좋겠구만...  

3) DMB 버그 : DMB를 볼륨/파워 knob으로 OFF하면, 화면이 네비로 진입하게 되는데, 갑자기 DMB가 다시 켜지고 백그라운드에서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ㅡ,.ㅡ;; 좀 황당한 버그이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4) 연비 : 블루세이버 트림의 공인연비는 리터당 17.3km인데,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못하다. 예전 디젤때보다 공인연비는 더 높은 반면, 실연비는 훨씬 덜 나오는 듯한 느낌이다. 현재까지의 평균연비는 12.5km/리터 정도... (600km 주행)

5) 뒷 문짝 : 살짝 밀면 잘 닫기지 않는다. 생각보다 힘껏 밀어야 제대로 닫힘... 구형은 안 그랬음...

6) 운전석 유리 : 낮에는 대쉬보드 끝쪽 바람구멍이 유리에 비쳐 좀 난감하다. 선팅필름 때문인가...

7) 듀얼존 오토에어컨 : 운전석, 조수석의 온도를 각각 따로 세팅할수 있는 기능인데, i30에는 좀 과하다. 가뜩이나 공조버튼 많아 지저분하고 복잡한데 이 작은 차에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8) 직진성 : 스티어링휠을 반듯이 유지해도 좌우로 조금씩 흐르는 듯한 느낌은 역시나 좀 아쉬운 부분...

9) 변속충격 : 감속이나 가속시 악셀에서 발을 떼면 조금 울컥하는 게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은근히 신경쓰일 수도 있겠다.


★ 결론 : 개인적으로 현빠라고 하기엔 좀 억울(?)하고, 아무래도 수입차를 살 용기가 없다고 하는 게 맞을 듯 한데... 일단, 가격대성능비로는 어떤 해치백도 따라올 모델이 없다. 가장 큰 경쟁자라고 생각되는 골프 1.6 TDi 블루모션 디젤 보다 무려 1000만원 정도 저렴한 순간 이미 게임 오버... 게다가 성능까지 엇비슷하니... 해치백 좋아하고, 가격에 민감하다면 여러모로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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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몬스터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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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수
    2012.05.03 08: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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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봤습니다
  2. 고냥
    2012.05.03 11:5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i30 뽐뿌 땡기네요.
  3. 정지원
    2012.05.04 16: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글이, 제 생각과 같네요...
    현빠는 아니지만.,,현.기차를 구매할 수 밖에 없는 현실...ㅋ


1) 스티브 잡스와 관련된 책들은 수도 없이 많다. 무엇이든 3-4권 이상 본 사람이라면 아마 이 9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내용들 중 절반 이상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 감춰져 있었던 스티브 잡스의 사생활과 가족관계, 그리고 사업상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 때문이다. 

- 스티브 잡스의 어린 시절과 양아버지 폴 잡스에 대한 얘기
-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나기까지의 좀더 자세한 내막 (스티브 잡스 나이 30) 
- 스티브 잡스의 여인들 : 크리스앤 브레넌, 존 바에즈, 제니퍼 이건, 티나 레지, 로렌 파월까지...
- 마치 아침 드라마(?)와도 같은 복잡한 가족 관계 : 친여동생 모나 심슨, 생모 조앤 시블(조앤 심슨), 생부 압둘파타 존 잔달리, 친자확인 DNA검사까지 했던 딸 리사 브레넌...
- 맥의 차세대 OS로 고려대상이었던 윈도우NT, BeOS, NeXT간의 대결구도 및 자세한 협상과정
- iTunes 스토어를 위한 음반사들과의 협상과정 + 윈도우용 iTunes 개발을 위한 내부진통
- 스티브잡스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밥딜런, 비틀즈, 요요마...)와 노래에 얽힌 얘기들...
- 아이팟 U2에디션이 나오게되기까지의 애플과 U2의 흥미진진한 협상 과정
- 디즈니와 픽사의 드라마틱한 인수합병과정...  
- 형식적으로는 연봉 1달러에 CEO직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스톡옵션에 은근히 욕심(?)이 많았다는 사실... 
- 스티브잡스의 터틀넥 유니폼에 대한 얘기... 원래 잡스는 (소니를 벤치마킹하여) 애플직원들을 위한 작업복(?)을 만들려고 했었다는 사실... ㅡ,.ㅡ;;  
- 2005년, 아이폰 프로젝트보다 아이패드 프로젝트가 먼저 진행중이었다!
- 어느 스마트폰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고릴라 글라스가 사실은, 1960년대에 개발된 것이었고, 현재 코닝은 고질라 글라스라는 초강력 유리 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 췌장암 수술(2004년 7월)과 간이식수술(2009년 3월)등 암투병과 병가에 대한 얘기들 
- 자신만의 요트설계 프로젝트 (네덜란드 피드쉽에서 건조중...)
- 자식들에 대한 얘기 : 아들 리드 잡스에게는 지극한 사랑을 보여줬으나, 딸 3명과의 관계는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다. 리드 잡스는 아버지의 투병을 계기로 스탠퍼드 암연구소에서 여름방학마다 일하기 시작했고, 의사나 암연구원이 되고 싶어함... 
- 오바마 대통령의 2012년 재선을 위해 광고제작을 도와주려고 했던일...

2) 다만, 스티브 잡스의 갑작스런 사망이후, 출판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조금 서둘렀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좀더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수박겉핥기식으로 대충 나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책의 전체 흐름과 구조도 대체로 단조로운 편이다. 스티브 잡스와의 수십차례 인터뷰내용이 그다지 반영이 안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 ㅡ,.ㅡ;;

아무래도 1-2년후, 1000페이지가 넘는 개정증보판이 등장할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무튼, 자신의 전기라는 또다른 형태의 놀라운 제품(?)으로 전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킨 스티브 잡스는 아무리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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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글] 2009/01/04 - 위기에서 빛나는 잡스의 생존본능 (Inside Steve's Bra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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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p : 그의 아버지 폴 잡스는 캐비닛이나 울타리 같은 것을 만들 때에는 숨겨져 잘 안 보이는 뒤쪽도 잘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다. "아버지는 일을 제대로 하는 걸 철칙으로 여기셨지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쓰면서 말이에요."
 
37p : 4학년 말, 힐 선생은 잡스가 수학 능력을 평가받도록 조처했다. "고등학교 2학년 수준의 수학 능력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지요." 그의 회상이다. 이제는 잡스 자신과 부모뿐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그가 지적으로 특별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39p : "신앙보다는 예수님처럼 살거나 예수님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오히려 신앙 그 자체만 너무 강조하는 바람에 기독교가 핵심을 잃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가 말한다. "각 종교는 동일한 집에 들어가기 위한 각기 다른 문이라고 생각해요. 어떨 때는 그 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떨 때는 안 그래요. 엄청난 미스터리지요."

71p : 동양종교, 특히 선불교에 대한 잡스의 관심은 단지 한때의 흥미나 젊은 시절의 취미가 아니었다. 그는 특유의 열성으로 그것을 받아들였고, 결국 자신의 인성 깊은 곳에 뿌리내리게 했다. "스티브는 선에 심취한 사람입니다. 젊은 시절에 받은 영향이 더욱 깊어진 거지요. 그의 모든 접근 방식은 순수한 미니멀리즘적 미학과 강렬한 집중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다 선에서 얻은 겁니다." 잡스는 또한 불교에서 강조하는 직관적 통찰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직관적 이해와 자각이 추상적 사고와 지적 논리 분석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80p : "LSD는 심오한 경험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였지요. LSD는 사물에 이면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할 수 없었지만 뭔가를 보았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저의 인식을 강화해 주었습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멋진 무언가를 창출하는 것,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역사의 흐름과 인간 의식의 흐름 속에 되돌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93p : 저는 선불교의 진리를 깨우쳤습니다. "스승을 만나고자 세계를 돌아다니려 하지 말라. 당신의 스승은 지금 당신 곁에 있으니..."

102p : "나는 그에게 어떤 일이든 그것을 해낼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해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굴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줄로 알 것이다.' 이게 내가 그에게 강조한 말입니다." --> 아타리 공동 창업자 놀런 부시넬

108p : "신뢰성 있게 작동하는 도구와 기계들에서 나는 신을 목격한다" (벅민스터 풀러)

108p : 잡스는 이 카탈로그의 열렬한 팬이 되엇다. 특히 고등학생이던 1971년에 나온 최종판에 크게 매료되었는데, 그는 대학 생활을 할 때와 All in one farm 에서 지낼 때도 이 카탈로그를 곁에 두었다. "최종판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의 시골길 사진이 실려 있었어요. 모험심 가득한 사람이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을 법한 그런 길요.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llish." --> 스튜어트 브랜드가 1968년 출간한 <더 홀 어스 카탈로그> http://www.wholeearth.com/index.php
 
130p : 잡스는 가벼운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미끈한 애플2 케이스를 만들기로 했다. 그는 홈브루 컴퓨터 클럽 모임에서 지역 컨설턴트인 제리 매녹에게 1500달러를 줄 테니 그런 디자인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잡스의 외모가 미덥지 않았던 매녹은 돈을 선불로 달라고 했다. 잡스는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고, 결국 설복을 당한 매녹이 일을 맡기로 했다.

136p : 마이크 마쿨라 (당시 33세, 페어차일드와 인텔에서 일했다. 인텔이 상장하면서 행사한 스톡옵션으로 부자가 됨. 애플의 최초 투자자. 9만1천달러는 현금으로, 25만달러는 은행신용보증으로 투자함.)는 잡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마쿨라는 잡스의 양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의 강한 고집을 포용해 주지만, 나중에는 친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를 버린다.) 마쿨라는 잡스에게 마케팅과 세일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잡스는 말한다. "마이크는 제게 보호막 같은 존재였어요. 저와 가치관도 굉장히 비슷했고요. 그는 절대로 돈을 벌겠다는 목표로 회사를 차려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쏟아부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오래도록 생명력을 지닐 회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지요."

138p : 레지스 매케나의 회사는 애플2의 제품 소개 팸플릿을 제작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론 웨인이 만들었던 고풍스러운 회사 로고를 바꾸는 것이었다. 로고 디자인은 아트 디렉터 롭 자노프가 맡았다. 잡스는 "너무 유치하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자노프는 간단한 사과 모양의 두 가지 시안을 만들었다. 하나는 온전한 사과 그림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이었다. 그냥 사과 그림은 마치 체리처럼 보였기 때문에 잡스는 베어 먹은 사과 그림을 택했다. 이 사과의 제일 위쪽은 초록색, 제일 아래쪽은 파란색으로 모두 여섯 색깔 줄무늬가 들어가 있었다. 로고 인쇄에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디자인이었지만 잡스는 이 도안으로 결정했다. 매케나는 애플2 팸플릿 상단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것으로 알려진 문구를 찍어 넣었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그리고 이후 이 말은 잡스가 지향하는 디자인 철학의 핵심 뼈대가 된다.

 
141p : 잡스의 위생 문제도 불거졌다. 잡스는 자신이 야채와 과일만 먹으므로 샤워를 할 필요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또 잡스는 때때로 스트레스를 푼다면서 변기에 발을 담그곤 했다. 동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22살때...)

143p : 잡스는 남을 통제하기는 좋아했지만 권위적인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 것은 극도로 싫어했다.

143p : 한번은 직원 이름표 번호를 매기는 문제로 갈등이 불거졌다. 마이크 스콧은 워즈에게 1번을, 잡스에게 2번을 배정했다. 그러자 잡스는 자기가 1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 줄 순 없었습니다. 훨씬 더 기고만장해졌을 테니까요." 스콧의 말이다. 잡스는 불끈 화를 내면서 눈물까지 보였다. 그러다 마침내 해결책을 제안했다. 자신에게 0번을 달라는 것이었다. 스콧은 잠시 그럴까도 생각했지만, 급여 통장 개설 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임금 대장 명부의 숫자를 양의 정수로만 기재하도록 요구했기 때문에 잡스는 2번으로 남아야 했다.

144p : 두 사람은 (마이크 스콧과 스티브 잡스) 애플2의 케이스 디자인을 놓고도 충돌했다. 플라스틱 케이스 색깔을 결정하기 위해 애플이 선택했던 색상 전문 업체 팬톤 사는 2000가지 종류의 베이지색을 갖추고 있었다. 스콧은 이렇게 회상한다. "세상에, 스티브는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고 했어요. 좀 더 다른 베이지색을 원했어요. 결국 제가 나서서 설득해야 했지요." 케이스 디자인의 세부적인 부분을 조율할 때도 잡스는 모서리 부분을 어느 정도로 둥글게 만들어야 할지를 놓고 며칠동안 고민했다. 또 다른 논쟁은 작업대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스콧은 평범한 회색 작업대를 쓰자고 했지만, 잡스는 흰색 작업대를 특별 주문해서 쓰자고 주장했다.

144p : 잡스는 고객을 대우하는 방식에서 애플이 타사와 달라야 한다면서 애플2의 제품 보증 기간을 1년으로 하자고 고집했다. 스콧은 깜짝 놀랐다. 전자 제품의 일반적인 보증기간은 90일이었기 때문이다. 잡스는 이 문제로 언쟁하면서 눈물까지 보였다. 두 사람은 주차장을 함께 걸으면서 마음을 진정시켰고, 결국 스콧이 양보하여 잡스가 원하는 대로 보증 기간을 1년으로 결정했다.

145p : 워즈는 잡스의 스타일에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사람들을 너무 무례하게 대했어요. 저는 우리 회사가 가족적인 분위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모두가 즐겁게 일하고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공간 말입니다."

145p : 애플2는 향후 16년간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며 600만대 가까이 판매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컴퓨터가 PC업계를 탄생시킨 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워즈는 이 놀라운 회로 기판과 관련 운영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역사적 공로를 인정받을 만하다. 그러나 워즈의 고안물을 전원 장치와 근사한 케이스까지 갖춘, 사용자 친화적인 패키지로 변신시킨 인물은 바로 잡스였다. 또한 잡스는 워즈의 기계들을 중심으로 회사를 일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레지나 매케나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워즈는 놀라운 기계를 설계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아마 그 물건은 지금도 컴퓨터 애호가들이 드나드는 상점에만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애플2가 워즈의 창조물이라고 여겼다. 이것이 잡스로 하여금 자신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창조물을 만들도록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151p : "스티브는 크리스앤이나 그녀의 임신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는 어느 순간 상대방에게 완전히 몰두하다가도, 또 어느새 차갑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오싹할 만큼 냉정한 면이 있는 친구였지요." (그레그 칼훈)

152p : 묘한 아이러니가 하나 있다. 잡스와 브레넌은 둘 다 23살이었는데, 조앤 시블이 잡스를 임신했을 때 조앤 시블과 압둘파타 잔달리도 23살이었다는 점이다. 잡스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 본 적은 없었지만, 양부모에게서 친부모 이야기를 조금씩 들은 적은 있었다. "그땐 우리나이와 제 친부모가 저를 가질 당시의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앤과 임신문제를 얘기하는 데 그 사실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어요." 훗날 그가 말했다. 잡스는 자신이 23살때 현실과 책임감을 직시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전철을 비슷하게 밟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다.

153p : 1978년 5월 17일 브레넌은 예쁜 여자아이를 낳았다. 사흘 후 잡스는 그곳으로 날아가 아기의 이름을 짓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아기에게 '리사 니콜 브레넌'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기의 성에는 '잡스'를 넣지 않았다.

180p : (애플의 기업공개이후)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베푼 대상은 부모님인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였다. 잡스는 부모에게 약 75만 달러어치 주식을 전달했다. 잡스의 부모는 주식 일부를 팔아 로스앨터스 집의 대출금을 갚았다. 잡스의 부모는 이후 더 크고 좋은 집을 장만하지는 않았다. "두분은 그런 데는 관심이 없었어요. 당시의 삶에 충분히 만족스러워하셨거든요." 그들의 유일한 사치는 1년에 한 번씩 휴가로 프린세스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일이었다. 

206p : 하루는 잡스가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던 엔지니어 래리 케니언의 작업 공간으로 찾아갔다. 그러고는 부팅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캐니언이 변명을 하려고 하자 잡스는 그의 말을 끊었다. "만약 그걸로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수 있다면 부팅시간을 10초 줄일 방법을 찾아볼 의향이 있는가?" 그가 물었다. 케니언은 그럴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잡스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더니 만약 맥 사용자가 500만 명인데 컴퓨터를 부팅하는 데 매일 10초를 덜 사용한다면 그들이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이 연간 3억 시간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것은 100명의 일생에 해당되는 시간이었다. "래리는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고, 몇 주 후에 보니 부팅 시간을 28초나 앞당겨 놓았어요." 앳킨슨은 회상한다. "스티브는 큰 그림을 보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212p : "신은 디테일 속에 존재한다."

218p : 매킨토시 폰트디자인을 위해 앤디 허츠펠드는 필라델피아 외곽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 수잔 케어를 영입했다. 

220p : 잡스는 매킨토시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모든 애플 제품을 위한 일관된 디자인 언어를 창출하길 원했다. 그래서 제리 매녹과 '애플 디자인 길드'라는 이름의 비공식적인 그룹의 도움을 받아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뽑기 위한 콘테스트를 개최했다. 거기서 뽑힌 디자이너는 디터 람스가 브라운을 대포했듯이 애플을 대표하게 될 터였다. 그 프로젝트 코드명은 '백설공주'였는데, 흰색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디자인될 제품들의 코드명이 일곱 난장이들 이름을 딴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승자는 소니의 트리니트론 TV를 디자인한 독일의 디자이너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였다. 잡스는 그를 만나기 위해 독일 바이에른 주의 슈바르츠발트까지 날아갔다. 그는 에슬링거의 열정뿐만 아니라, 시속 160킬로미터로 벤츠를 모는 기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221p : 에슬링거는 독일인이었지만 "애플의 DNA를 위한 미국 특유의 유전자가 있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그럴 경우 "할리우드와 음악, 반항심, 그리고 자연스러운 섹스어필"을 바탕으로 한 "캘리포니아식 글로벌" 느낌이 창출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의 제일 원칙은 "형태는 감정을 따른다."였다. 그는 그 개념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40개의 목업을 만들었고, 그것을 본 잡스는 소리쳤다. "그래, 바로 이거야!" 애플IIc에 즉각 적용된 그 '백설공주' 디자인은 흰색 케이스, 간결하고 둥근 모서리, 그리고 통풍과 장식을 위한 얇은 홈들이 특징이었다. 잡스는 에슬링거가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옮기는 조건으로 계약을 제안했다. 에슬링거의 프로그디자인 회사는 애플과 120만 달러상당의 연간 계약을 맺고 1983년 중반 팔로알토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후부터 모든 애플 제품에는 "designed in California"라는 문구가 포함되었다.

221p : 프로그디자인 --> 에슬링거가 애초에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개구리의 탈바꿈 능력을 고려하는 동시에 회사의 뿌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frog = Federal Republic Of German (독일연방공화국)의 머리글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말한다. "이름을 소문자로 쓴 이유는 바우하우스의 비계급적 언어에 경의를 표하며 회사의 민주적 기풍을 강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247p :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의 임시 사장직이 결코 반갑지 않았다. 그는 새로 장만한 집의 구조를 디자인하거나 전용기를 타고 비행하는 것을 즐겼고 스톡옵션을 행사해 넉넉한 삶을 즐기는 데 만족했다. 갈등을 조정하거나 자아가 강한 까다로운 인물들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마쿨라는 마이크 스콧이 사임한 이후 마지못해서 사장직을 맡은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잠시 동안만 사장 자리를 맡는 것뿐이라고 장담했다. 마쿨라가 사장직에 앉은 지 거의 2년이 가까워 가던 1982년 말, 그의 아내는 당장 새로운 적임자를 찾아보라고 다그쳤다. 잡스는 회사를 이끌고 싶은 마음이 약간은 있었지만 자신이 그 자리를 맡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거만한 성격임에도 스스로에 대한 자각은 있었던 것이다. 마쿨라도 잡스와 같은 의견이었다. 마쿨라는 잡스가 애플의 사장을 맡기에는 아직 너무 거칠고 미숙하다고 그에게 말했다.

254p : 스컬리는 이렇게 회상한다. "연봉 100만 달러에 입사 보너스 100만달러, 고용 계약이 예기치 않게 조기 종결되는 경우 퇴직금 100만달러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255p : 마쿨라는 스컬리를 설득해 연봉 50만 달러와 보너스 50만 달러라는 조건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259p : 스컬리의 단점 가운데 하나는 사내 문제를 조정할 때 직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다는 점이었고, 이는 분명 잡스와 다른 면이었다. 쉽게 말해서, 스컬리는 정중하고 예의바른 타입이었고, 잡스는 그 반대였다. 직원들을 건방지고 무례하게 대하는 잡스의 모습을 보고 스컬리는 깜짝 놀랐다.

281p : 잡스가 매킨토시를 세상에 선보인 그날 파퓰러 사이언스의 기자 하나가 어떤 방식으로 시장조사를 했느냐고 잡스에게 물었다. 잡스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시장조사같은 걸 하고 전화를 발명했습니까?"

297p : 애플이 제록스 PARC가 개발한 것들에 대한 사용권 계약을 맺긴 했지만, 다른 회사들이 유사한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애플이 나중에 깨달았듯이, 컴퓨터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모습과 느낌'은 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보호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잡스의 심정도 이해할 만했다. 사실 애플은 창조력과 상상력이 더 풍부했으며 실현해 내는 방식도 더 품격 있었고 디자인 역시 더 뛰어났다. 하지만 남의 것을 대충 모방하여 일련의 제품을 생산했다 해도 결국 운영체제 전쟁의 승자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이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에 일종의 심미적 결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가장 품질이 높고 가장 혁신적인 제품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315p : 예술가로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고 싶다면 자주 뒤돌아보면 안됩니다. 그동안 무엇을 해왔든, 어떤 사람이었든 다 버릴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바깥세상이 당신에게 '이게 바로 너'라는 식으로 모종의 이미지를 강요할수록 예술가는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지요. "안녕, 나 이제 가야 돼. 나 미칠 거 같으니까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그러고는 어딘가로 가서 은둔해 버립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중에 약간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 수도 있지요. <잡스가 서른이 되던 해, 플레이보이와 가졌던 인터뷰>

322p : "스컬리는 가급적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 주고 관계에 신경쓰는 유형이었어요. 스티브는 그런 것에 콧방귀도 안 뀌었고요. 하지만 그는 스컬리로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제품에 정성을 쏟았고, A급 직원이 아닌 모든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애플에 얼간이들이 눌러앉지 못하게 했지요."

358p : 그가 정한 새 회사의 이름은 다소 간단하면서도 밋밋한 '넥스트'였다. 여기에 좀 더 독특한 색깔을 덧입히기 위해서 그는 세계적 수준의 로고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기업 로고 디자인 분야의 전설적 인물인 폴 랜드에게 구애 작전을 펴기 시작했다. 브루클린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71세의 랜드는 에스콰이어, IBM, 웨스팅하우스, ABC, UPS등 유수 기업의 로고를 디자인한 인물이었다. 랜드는 팔로알토로 찾아가 잡스와 산책을 하면서 그가 구상하는 비전에 대해 들었다. 잡스는 정육면체 형태의 컴퓨터를 구상중이라고 설명했다. 정육면체는 평소 그가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랜드는 회사 로고도 정육면체 모양으로 하되, 경쾌하게 28도쯤 기울인 형태로 디자인하기로 했다. 잡스는 여러개 중에서 고를 수 있도록 다양한 시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랜드는 고객을 위해 '여러 가지 시안'을 만들지는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고 당신은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입니다. 내 디자인을 쓰든 안 쓰든, 그건 당신 마음이오. 하지만 난 여러 시안을 만들진 않습니다. 그리고 내 디자인을 쓰든 안 쓰든, 비용은 지불해야 합니다." 잡스는 랜드의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자신과 비슷한 면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당히 대담한 제안을 내놓았다. 군소리 않고 무조건 10만달러를 지불할 테니 죽이는 로고를 '하나만' 디자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359p : 랜드는 'e'자를 짙은 노란색으로 칠했는데 잡스는 좀 더 밝고 평범한 노란색으로 바꾸길 원했다. 랜드는 주먹으로 쾅 하고 테이블을 내리치며 말했다. "나는 이 바닥에 50년이나 있었소. 뭘 알고나 얘기하시오." 잡스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408p : 잡스가 서른할 살 되던 해 (애플서 쫓겨나고 1년후) 자신을 입양시킨 생모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잡스는 자신의 출생증명서에 적힌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의사 이름에 주목하고, 전화번호부를 뒤져 그 의사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그 의사는 화재로 인해 예전 환자들의 기록이 소실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의사는 전화를 끊자마자 편지 한장을 써서 봉투에 담고는 밀봉했다. 그리고 봉투 겉면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사망 후 스티브 잡스에게 전달할것." 얼마 후 그가 죽자, 그의 미망인이 잡스에게 그 편지를 보냈다. 잡스의 어머니가 위스콘신 출신의 미혼 대학원생이었으며, 이름은 조앤 시블이라는 내용이었다.

409p : 잡스는 자신이 진짜 부모로 여기는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에게 생모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길 꺼렸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감수성과 부모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그는 그들이 상처 받을까 봐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1986년 클라라 잡스가 사망하고 나서야 조앤 심프슨에게 연락을 취했다.

415p : 잡스의 친동생 모나 심프슨은 친아버지 압둘파타 잔달리를 찾는 과정을 1992년 출간한 자신의 두번째 소설 "잃어버린 아버지"의 소재로 삼았다. (잡스는 넥스트의 로고를 제작한 디자이너 폴 랜드를 설득해 책 표지를 디자인하게 했으나, 모나의 말에 의하면 "너무 끔찍해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436p : 스티브의 아버지 폴 잡스와 여동생 모나 심프슨을 비롯해 약 50명이 잡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심프슨은 약혼자 리처드 어펠을 데리고 왔는데, 변호사였던 그는 나중에 텔레비전 코미디 작가로 전업했다. (인기 만화영화 "심슨 가족"의 작가가 된 그는 극중 '호머 심슨'의 어머니 이름을 아내의 이름에서 따왔다.) 

440p : 잡스는 애플에 복귀한 이후에도 집에 안전 요원이나 상주 관리인 들을 두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갑부로서는 드문 경우였다. 낮에는 뒷문을 열어 놓기까지 했다. 그의 유일한 안전 문제는 슬프고 기이하게도 버렐 스미스 때문에 생겼다. 더부룩한 머리에 순진한 얼굴을 한 그는 한때 매킨토시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고, 앤디 허츠펠드의 단짝 친구이기도 했다. 애플을 떠난후 스미스는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허츠펠드의 집에서 몇 집 떨어진 곳에 살던 그는 병세가 심해지자 알몸으로 거리를 배회했으며, 어떤 때는 자동차와 교회의 창문을 부수기도 했다. 그는 강한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한번은 병세가 최악에 달해 저녁마다 잡스의 집에 나타나 창문에 돌을 던졌고, 알 수 없는 내용의 편지를 놓고 갔으며, 붉은색 폭죽을 집안에 던지기도 했다. 그는 체포되었지만 치료를 더 받는다는 조건으로 기소유예되었다. "버렐은 굉장히 재미있고 순수한 친구였어요. 그런데 4월 어느 날부터 정신이 이상해진 거에요." 잡스가 회상했다. "너무도 이상하고 슬픈 일이었지요."

* 앤디 허츠펠드 : 1979년 8월 애플에서 일하기 시작해 애플II 주변장치와 관련된 일을 했다. 1981년 2월 맥 팀에 합류해 매킨토시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주 개발자가 됐고 핵심 운영체제와 사용자 인터페이스 툴박스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데스크 액세서리를 만들었다. --> "Revolution in the valley"라는 매킨토시 개발비화에 대한 책을 썼다. --> http://monsterdesign.tistory.com/1370

* 버렐 스미스 : 1979년 2월 애플에서 서비스 기술자로 일을 시작했다. 다섯 가지 서로 다른 매킨토시 외에도 레이저라이터 프린터용 디지털 보드도 설계했다. 1985년 2월 애플을 떠났다.

473p : 애플은 우선 장 루이 가세가 창업한 'Be'라는 회사에 연락을 취했다. --> 90년대를 풍미했었던 BeOS를 전 애플임원이었던 장 루이 가세가 창업했다는 사실... 게다가, 장 루이 가세는 존 스컬리와 함께 스티브 잡스를 애플에서 쫓아내는데 일조한 인물이어서 스티브 잡스의 원한 리스트 1순위 인물이기도 했다.
--> http://www.appleforum.com/mac-column/44317-장-루이-가세에-대하여.html
--> BeOS와 NeXT의 경쟁 : http://ebizbooks.tistory.com/507

489p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부문의 책임자로는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친구 애비 테버니언을 택했다. 하드웨어 부문은 넥스트에 하드웨어 부문이 있던 시절에 그것을 담당했던 존 루빈스타인에게 맡겼다.

490p : 스티브 복귀후, 그의 신경을 거슬리는 제품 중에 필기 문자 인식 기능을 갖춘, '뉴턴'이라는 개인용 소형 디지털 기기가 있었다. 나쁜 제품은 아니었지만, 잡스는 뉴턴을 싫어했다. 그는 화면에 무언가를 적으려면 스타일러스나 펜을 사용해야 하는 방식을 경멸했다. "신은 우리에게 스타일러스 열개를 주셨어." 그가 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며 말하곤 했다. "그런데 한 개를 더 창조하자고?" 또한 잡스는 뉴턴이 존 스컬리의 유일한 주요 혁신 제품이며 그가 가장 아끼던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잡스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500p : (잡스가 애플에 다시 복귀한후...) 잡스는 가족들과의 시간을 즐겼다고 말했지만, 아무리 여유 시간이 많다 해도 '올해의 아버지상'을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아이들, 특히 리드 잡스에게 관심을 쏟는 일을 전보다 잘하고 있었지만 그의 주된 초점은 늘 업무에 맞춰져 있었다. 그는 어린 두 딸에게 거리를 두며 냉정하게 대하는 일이 잦았고, 리사 브레넌과의 관계도 다시 소원해졌으며, 남편으로서도 종종 까다롭게 굴었다.

515p : (1997년 8월 보스턴 맥월드에서 빌 게이츠와 스티브잡스간의 화성통화연결후...) 잡스는 자신과 청중들을 압도하는 게이츠의 이미지를 띄운 게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원래 그가 보스턴에 와 주길 바랐어요." 그가 나중에 말했다. "그건 내 최악의 무대연출이었어요. 나를 작아 보이게 했고, 애플을 작아 보이게 했고, 마치 모든 게 빌의 손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으니까요."


532p : 잡스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제대로 집중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것은 회사 차원에서도, 제품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533p : 잡스가 복귀한 후 애플 제품들을 검토하는 기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파워포인트 사용을 금지한 것이었다. "머리를 써서 생각하지는 않고 슬라이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에 저는 반대합니다. 프레젠테이션 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더 생기지요. 슬라이드만 잔뜩 들이대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끈질기게 논의해서 결론을 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에겐 파워포인트 같은 게 필요없습니다." 잡스의 말이다.

540p : 처음에 잡스는 회사 바깥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디자이너를 찾았다. 그는 IBM 씽크패드를 디자인한 리처드 새퍼, 페라리 250과 마세라티 기블리I을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 등과 상의했다.

541p : 처음에 아이브는 잡스가 하드웨어 부문 책임자로 임명한 존 루빈스타인에게 업무를 보고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잡스에게 직접 보고를 하며 그와 유난히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점심 식사를 같이하기 시작했고, 잡스가 아이브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방문해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도 잦아졌다. "조니는 특별한 지위를 얻었어요." 파월이 말했다.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왔고 가족끼리도 아주 친해졌어요. 스티브가 그에게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는 일도 전혀 없었어요. 스티브의 인생에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체가 가능한데, 조니는 결코 거기에 속하지 않아요."

542p : "나 (스티브 잡스)를 제외하고 회사의 운영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조니에요.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내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놨거든요."

542p : 잡스가 만든 애플의 첫 브로셔가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라고 선언했을 때부터, 잡스는 복잡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얻는 단순성을 추구했다. "상당한 노력이 있어야 하죠. 무언가를 단순화하는 것, 잠재적인 난제들을 이해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 말입니다."

543p :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의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545p : 컨디션이 좋고 사무실에 있을 때면 잡스는 거의 항상 아이브와 점심을 같이 먹었고 오후에는 스튜디오에 들렀다. 대개 잡스와 아이브는 둘이서만 얘기를 나눴다. 나머지 디자이너들은 일을 하다가 가끔 머리를 들고 쳐다보긴 했지만 예의상 거리를 두었다.

546p : 디자인 과정의 상당 부분은 대화로 이루어져요. 테이블 주위를 돌며 모형을 가지고 놀면서 서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 식이죠. 그는 복잡한 설계도를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 대신 모형을 보고 느끼길 원하죠. 그가 하는 방식이 옳아요. CAD렌더링에서는 아무리 훌륭해 보여도 실제 모형으로 만들었을 때 형편없게 나올 때가 있거든요. 공식적인 디자인 검토 회의가 없기 때문에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도 없어요. 그 대신에 우리는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유동적인 결정들을 내리곤 해요. 매일 이런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에 바보같은 프레젠테이션을 할 필요가 없어요. 덕분에 의견이 크게 충돌할 일도 없고요.

547p : 맥북의 흰색 전원 장치는 물론이고 기분 좋은 '탁'소리를 내며 꽂히는 자석 연결 장치에 대한 특허를 출원할 때 잡스의 이름도 포함되었다. 사실 2011년 초까지 그는 212개의 특허에 이름을 올렸다.

548p : 예술가의 섬세한 기질을 가진 아이브는 때때로 잡스가 모든 성과의 공훈을 너무 많이 차지하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 수년 동안 다른 동료들 역시 불편함을 느낀 부분이었다. "저의 아이디어들을 살펴보고는 '이건 별로, 이것도 별로, 이건 좋다.'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발표할 때면 그는 그게 마치 자신의 아이디어인 것처럼 이야기했죠. 제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도 말이에요. 저는 아이디어의 출처에 극도로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제 아이디어들을 공책에 적어 관리할 정도죠. 그러니 저의 디자인이 잡스의 공훈으로 돌아갔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요." 하지만 그는 실제로 잡스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른 수많은 회사들에서는 훌륭한 아이디어와 디자인들이 업무 처리 과정에서 사라지고 말아요. 저와 제 팀의 아이디어들은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인정도 못 받고 사장되었을 거에요. 만약 스티브가 이곳에서 우리를 밀어붙이고 함께 일하며 수많은 저항을 헤쳐 나가도록 돕지 않았다면 우리의 아이디어 상당수는 제품으로 현실화되지 않았을 겁니다."

552p : (반투명 아이맥 디자인시) 아이브와 디자인팀의 부팀장 대니 코스터는 초현대적(futuristic) 디자인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아이브의 팀은 애플의 한국 제조 업체와 협력하여 케이스 생산 공정에 완벽을 기했다. 또한 매력적인 반투명 색깔을 만들고자 젤리 과자 공장까지 찾아다니며 연구를 거듭했다. 케이스의 가격은 개달60달러로, 보통 컴퓨터 케이스에 비해 세배나 비쌌다. 다른 회사였으면 반투명 케이스가 추가비용을 정당화할 만큼 매출을 늘려 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과 연구를 수차례 실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잡스는 그와 같은 분석을 요구하지 않았다.


554p : 루빈스타인은 아이브의 미적 요구와 갖가지 디자인 아이디어를 접할 때마다 현실적인 비용 문제를 제기하곤 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디자인 모델을 가지고 엔지니어에게 갔더니 그걸 만들 수 없는 이유 서른여덟 가지를 내놓더군요."

561p : 아이맥은 1998년 8월 1299달러의 가격으로 시판되었고, 처음 6주 동안 27만 8000대, 그해 말까지 80만대가 팔리며 애플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판매된 컴퓨터가 되었다. 주목할 점은 매출의 32퍼센트는 컴퓨터를 처음 구매하는 소비자가 차지했으며, 12퍼센트는 윈도PC를 쓰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562p : 잡스가 아이맥에서 꼭 개선하고 싶어 하던 중요한 문제가 한 가지 남았다. 바로 그가 혐오하던 CD트레이였다. "소니의 고급 스테레오에 슬롯 드라이브가 장착된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드라이브 제조 업체를 찾아가 9개월 뒤 출시할 아이맥 새 버전에 사용할 슬롯 드라이브를 만들어 달라고 했지요." 루빈스타인은 잡스를 설득해서 슬롯 드라이브 장착을 막으려고 했다. 그는 장차 재생뿐만 아니라 음악을 CD에 구울 수 있는 CD드라이브가 나올 것이며, 그런 드라이브는 슬롯보다는 트레이 형태에서 먼저 이용이 가능해질 것이라 예상했다. "슬롯 방식을 택하면 우리는 최신 기술에 뒤처질 겁니다." 루빈스타인의 주장이었다. "상관없어요. 난 슬롯을 원하니까." 잡스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슬롯 드라이브쪽으로 갑시다. 내게 베푸는 개인적 호의라고 생각해줘요." 물론 루빈스타인은 잡스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루빈스타인의 예측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파나소닉에서 읽고 쓰기가 모두 가능한 CD드라이브가 출시되었는데 초기에는 구식 트레이 로더가 달린 컴퓨터에서만 쓸 수 있었다. 이 일은 향후 몇 년에 걸쳐 애플에 흥미로운 영향을 미쳤다. 슬롯 드라이브를 채택한 애플은 음악을 선별해 CD로 굽고 싶어 하는 사용자들의 요구에 신속히 대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애플은 경쟁자를 뛰어넘을 수 있는 창의적이고 대담한 길을 찾아야 했고, 잡스는 마침내 음악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565p : 잡스의 경영 좌우명은 '집중'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많은 제품 라인업을 정리하고 애플이 개발중이던 새로운 운영체제에서 필요없는 기능을 제거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품을 꼭 자사 공장에서 제조해야 한다는 과도한 통제욕구를 버리고 회로 기판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산 과정을 외부업체에 위탁했다.

566p : 한번은 VLSI테크놀로지사가 정해진 기한 내에 칩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할 위기에 빠졌다. 그러자 잡스가 그 회사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미팅 자리에 난입해 "빌어먹을 고자 새끼들! (Fucking Dickless Assholes!)" 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결국 칩은 제시간에 모두 납품되었고 VLSI사의 경영진은 등에 자랑스럽게 "TEAM FDA" 라고 새겨진 재킷을 만들어 입었다.

566p : 1998년, 잡스는 37세의 정중한 남성 한명을 만났다. 컴팩 컴퓨터의 조달 및 공급망 관리자인 팀 쿡이었다. 그는 오번 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듀크 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위를 받은 뒤 IBM에 입사해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리서치 트라이앵글 연구 단지에서 12년간 근무했다. 잡스가 그를 면접한 시기는 쿡이 컴팩으로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569p : 1980년대 초, 일본을 방문한 잡스는 소니 회장 모리타 아키오에게 회사 공장의 전 직원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무척 부끄러워하면서, 전후에 다들 입을 옷이 없다 보니 소니 같은 회사가 근로자들에게 입을 것을 줘야 했고 그게 전통으로 굳어졌다고 이야기했지요." 이와 같은 유니폼은 시간이 흐르며 그 회사만의 특징적인 스타일로 발전해 근로자와 회사 사이에 유대감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스타일을 중시하던 소니는 유명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에게 유니폼 개발을 맡겼다. 그리고, 애플에도 그와 같은 유대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잡스는 이세이 미야케에게 전화를 걸어 애플 직원들이 입을 조끼를 디자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잡스는 이세이 미야케와 친구가 되어 자주 그를 찾아갔다.

571p : 애플이 새로운 운영체제에 사용할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할 사람을 구할 당시, 잡스는 한 젊은이에게 이메일을 받고 그를 회사로 불렀다. 하지만 면접 결과는 좋지 않았다. 지원자가 너무 긴장했기 때문이다. 그날 늦게, 잡스는 낙담에 빠져 로비에 앉아 있던 지원자와 마주쳤다. 그는 잡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한번 봐 달라고 청했고, 잡스는 어도비 디렉터로 제작된 짤막한 데모를 보았다. 매킨토시 화면 하단 dock에 더 많은 아이콘을 집어 넣는 방법을 보여 주는 데모였다. 그가 dock안에 빽빽하게 들어찬 아이콘 위로 커서를 옮기자, 커서가 확대경처럼 변하며 하나하나의 아이콘을 크게 부풀렸다. "저도 모르게 '이런, 세상에!' 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 자리에서 그를 채용했습니다." 잡스의 회상이다. 이 기능은 맥OS X의 매력적인 일부가 되었고, 그날 채용된 디자이너는 이후 멀티터치 스크린용 관성 스크롤등을 고안했다.

583p : 잡스는 1999년 말부터 비밀리에 면접을 진행하며 애플 소매점 체인을 개발할 경영자를 찾았다. 여러 후보 가운데 디자인에 대한 애착과 소년같은 열정을 지닌 타고난 소매업 전문가가 한 명 있었다. 론 존슨이라는 인물이었다. 대형 할인점 '타겟'의 상품 기획 부문 부사장이던 존슨은 독특한 외관의 제품을 출시하는 일을 책임지고 있었다.


587p : 드렉슬러 (1999년부터 애플의 사외이사로 활동한 갭의 CEO)는 잡스에게 한가지 조언을 했다. "회사 근처에 비밀리에 시험매장을 짓고 설비를 완전히 갖춘 다음, 편안한 기분이 들 때까지 거기서 시간을 보내 보세요." 다시 말해서 앞으로 모든 애플 스토어의 기준이 될 "프로토타입 스토어"를 하나 만들어 보라는 조언이었다.

606p : 한 때 애플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던 빌 킨케이드는 맥에서 쓸 수 있는 리오용 mp3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역시 애플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 친구인 제프 로빈과 데이브 헬러를 불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운드 잼'이라는 SW를 만들어 냈다. 사운드 잼은 리오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인터페이스, 컴퓨터의 음악 파일을 관리하는 주크박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리듬에 맞춰 화면에 표시되는 몽환적인 라이트쇼등이 특징이었다. 2000년 7월, 음악 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을 추진하던 시기에 사운드잼을 발견한 애플은 그 프로그램을 사들이고 사운드잼의 개발자들도 다시 애플의 울타리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때부터 그들 셋은 계속 애플에서 근무했으며 로빈은 이후 10년동안 음악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이끌었다. 잡스는 그의 가치를 매우 높이 평가하여 한번은 <타임> 기자에게 그의 성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다음에야 인터뷰를 허락한 적도 있다.) --> 사운드잼이 바로 2001년 1월 맥월드에서 공개된 아이튠스의 원형이다.


609p : 토니 파델과 존 루빈스타인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둘 모두 자신이 아이팟을 탄생시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빈스타인 입장에서 보면, 그는 파델이 오기 몇 개월 전에 잡스에게서 임무를 부여받았고, 도시바의 디스크 드라이브를 찾아냈으며, 스크린과 배터리 문제를 해결했고, 그 밖의 핵심 요소들을 준비했다. 파델을 데려온 것도 그였다. 파델만 주목받자 그게 못마땅한 루빈스타인 쪽 사람들은 그를 '토니 발로니'(허튼소리)라 부르기 시작했다. 반면 파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애플에 오기 전부터 이미 훌륭한 MP3플레이어를 만들 계획이 있었고 다른 회사들과 일할 가능성도 타진하던 중이었다. 아이팟 개발의 일등 공신이 누구인가, 즉 '아이팟의 아버지'라 불러 마땅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이후 수년간 인터뷰, 기사, 웹페이지 등에서, 심지어는 위키피디아 표제어를 통해서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612p : 스티브는 그때그때의 순간을 중시하고 주로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이해하려 합니다. 한번은 그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슬라이드가 있어야 설명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오.'

643p : 나이가 들수록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zune이 시시한 이유는 MS사람들이 음악이나 예술을 우리처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승리한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음악을 사랑해서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아이팟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또는 절친한 친구나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한다면 결코 게으름을 피우며 대충대충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누구든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는 뭔가를 할 때는 특별히 더 노력하거나, 주말에 일을 더 하거나, 현재 상태에 과감히 도전하려 애쓰지 않겠지요.


644p : 잡스는 결코 애플에 준자치적 사업 부문을 편성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부문을 가까이에서 관리했으며 그들이 결속력 있고 유연한, 단일 손익구조를 갖는 하나의 조직으로서 일하도록 했다. "애플에는 독자적으로 손익계산을 하는 사업 부문이 없습니다." 팀 쿡은 말한다. "우리는 회사 전체적으로 손익 계정을 하나만 운영합니다."

667p : U2는 광고에 출연하고 애플은 옥외 광고판부터 아이튠스 홈페이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U2의 신규 앨범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을 활발히 홍보하기로 했다. U2측은 출연료는 받지 않기로 했지만 특별 제작되는 아이팟 U2에디션에 대해 로열티를 받고자 했다. 보노는 아이팟이 한 대 판매될 때마다 뮤지션이 로열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669p : 빈센트 (아이팟의 광고제작 감독)는 또 다른 U2열성 팬인 조니 아이브 (그는 1983년 뉴캐슬에서 처음으로 그들의 공연을 봤다.)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상황(협상이 난항에 빠졌다는...)을 설명했다. 아이브는 이미 검은색 몸체에 붉은색 휠이 달린 아이팟 모형을 만들어 두었다고 했다. 앨범 커버의 색깔에 맞추기 위해 U2의 보노가 요구했던 배색이었다. 빈센트는 잡스에게 연락해서 아이브를 더블린으로 보내 보노에게 블랙&레드 아이팟을 보여주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잡스가 승낙하자 그는 다시 보노에게 전화해 조니 아이브를 아느냐고 물었다. 빈센트는 이미 그들이 전에 만났고 서로 존경하는 사이임을 몰랐다. "조니 아이브를 아느냐고요?" 보노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친구를 사랑해요. 그의 목욕물도 마실 수 있어요." "아마 좀 짤걸요." 그렇게 농담을 건넨 후 빈센트가 물었다. "그를 그쪽으로 보내서 새로 제작한  아이팟이 얼마나 멋진지 보여 드리려 하는데 어떨까요?" "내가 직접 마세라티를 몰고 그를 마중 나가지요. 내 집에서 머물게 하면서 같이 나가서 밥도 먹고 코가 비뚤어지게 술도 마실 겁니다."


 673p : 잡스는 자신의 결혼식에서 연주를 해 달라고 요요마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마침 요요마의 해외 순회공연과 일정이 겹쳤다. 몇년 뒤, 잡스의 집을 방문한 그는 거실에 앉아 173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를 꺼낸 뒤 바흐의 곡을 연주했다. "그때 결혼식에서 연주하려 했던 곡입니다." 잡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당신의 연주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군요. 인간 혼자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으니까요." 이후 다시 잡스의 집을 찾은 요요마는 그와 부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잡스의 딸 에린에게 자신의 첼로를 만져 보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 무렵 갑작스레 찾아온 암으로 투병 중이던 잡스는 요요마를 졸라 자신의 장례식에서 연주를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692p : 잡스는 밥 아이거 (디즈니의 새로운 CEO)를 좋아했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이 약간의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경탄하기도 했다. 잡스의 예전 여자 친구인 제니퍼 이건이 펜실베니아 대학 시절 아이거의 아내 윌로 베이와 룸메이트였던 것이다.

700p : 나의 목표에는 언제나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위대한 회사를 세우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그것을 해냈지요. 그리고 그때 우리가 그 합병에 응합으로써 우리는 픽사를 위대한 회사로 유지하는 동시에 디즈니 역시 위대한 회사로 남도록 도왔습니다.

703p : 우린 많은 것을 생략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함으로써 진보합니다.

712p : 잡스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기꺼이 연봉 1달러를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대량의 스톡옵션을 받고 싶어 했다.

725p : 잡스는 여러 그룹이 제각기 마케팅을 고려해 제품 라인을 늘리도록 허용하거나 수백 가지 아이디어들이 꽃을 피우도록 방치하기보다는 애플 전체가 한 번에 두 세가지 우선순위에 초점을 맞출 것을 주장했다. 쿡은 말했다. "주변에서 울려대는 잡음을 끄는 데 잡스만큼 능숙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극소수의 것들에 초점을 맞추고 많은 것들을 거부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런걸 진정으로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736p : (초기 아이폰 프로젝트 진행시...) 잡스는 휴대전화가 무선 제품이라는 이유로 에어포트 무선 공유기를 만드는 그룹에 프로젝트를 맡겼다. 그러나 곧 그것이 기본적으로 아이팟과 같은 소비자 기기라는 점을 깨닫고 해당 프로젝트를 다시 파델과 그의 팀원들에게 할당했다.

737p : 처음에 애플은 아이팟을 변형하여 아이폰을 만드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트랙휠을 이용해 전화기의 기능을 훑어보고 (자판없이) 숫자를 입력하는 방식을 구상해 보았다. 하지만 그리 적절하지 않았다. 파델은 회상한다. "휠을 이용하는 방식에 많은 문제가 따르더군요. 특히 전화번호를 누르는 게 그랬지요. 아주 불편하더라고요." 전화번호부를 넘겨 볼 때는 괜찮았지만 뭔가를 입력하기에는 끔찍하리만치 불편했다. 그들은 사용자들이 주로 전화번호부에 입력된 번호로 전화를 할 거라며 자위하려 애썼지만, 그래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당시 애플에서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비밀리에 태블릿 컴퓨터가 개발되고 있었던 것이다. 2005년 이 두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태블릿 컴퓨터 관련 아이디어들이 휴대전화 기획 과정으로 흘러 들어갔다. 다시 말해 아이패드 관련 아이디어가 사실상 아이폰이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오히려 아이폰의 탄생을 돕기까지 했다는 얘기다.

738p : 다음날 잡스는 회사에 출근해 자신의 팀을 모아 놓고 말했다. "태블릿 컴퓨터를 만듭시다. 단, 키보드나 스타일러스가 딸려 있어선 안 됩니다."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터치 입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한꺼번에 여러 가지 입력을 처리할 수 있는 이른바 '멀티터치' 기능이 스크린에 갖춰져야 했다. "멀티터치, 터치 감지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겠지요?" 그가 물었다. 약6개월이 걸린 끝에 결국 그들은 조악하게나마 제대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을 고안했다. 잡스는 그것을 애플의 또 다른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에게 건넸고, 한 달후 그 사람은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가로지르면 이미지가 마치 물리적인 사물처럼 움직이는 관성 스크롤 아이디어를 갖고 왔다. "완전히 푹 빠졌지요." 잡스의 회상이다. 조니 아이브는 멀티터치 개발 과정을 다르게 기억한다. 그의 디자인팀이 이미 애플의 맥북 프로 트랙패드를 위해 멀티터치 입력 방식을 작업하고 있었으며 그 기능을 컴퓨터 스크린으로 옮기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었다고 한다.

739p :  사실 멀티터치 인터페이스는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였고, 잡스는 곧 그것이 고민 중이던 휴대전화용 인터페이스 제작에 따르는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태블릿 컴퓨터의 개발을 보류하고 일단 멀티터치 인터페이스를 휴대전화 스크린 크기에 맞게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이 프로젝트가 훨씬 중요했기 때문이다. "전화기에서 작동되면 다시 돌아가서 태블릿 컴퓨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740p : 잡스는 디자인 스튜디오 컨퍼런스 룸에서 비밀회의를 열고 그 자리에 파델과 루빈스타인, 실러를 불렀다. 아이브가 멀티터치를 시연했다. "와우!" 파델이 외쳤다. 모두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것이 휴대전화에 구현될 수 있을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들은 두 가지 경로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P1은 아이팟의 트랙휠을 이용해 개발하는 휴대전화의 코드명이었고 P2는 멀티터치 스크린을 사용하는 새로운 대안의 코드명이었다. 한편 핑거웍스라는 델라웨어의 작은 회사가 이미 일련의 멀티터치 트랙패드를 만들고 있었다. 델라웨어 대학교의 두 학자 존 일라이어스와 웨인 웨스터먼이 창업한 핑거웍스는 멀티터치 감지 능력을 가진 태블릿 컴퓨터를 몇 가지 개발했으며 꼬집기나 밀기 등의 다양한 손가락 제스처를 유용한 기능으로 전환하는 방법에 대해 특허를 취득한 상태였다. 2005년 초 애플은 핑거웍스와 그들이 소유한 모든 특허 그리고 두 창업자까지 비밀리에 인수했다. 핑거웍스는 자사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고 애플의 이름으로 새로이 특허를 출원하기 시작했다.

741p : 잡스가 P2로 아이폰의 개발방향을 결정한후, 팀원들은 잡스와 함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몰두해서 회의를 거듭하며 다른 휴대전화들이 복잡하게 만든 것들을 단순화하는 방법을 파악해 나갔다. 

743p : 잡스가 아이폰에 어떤 유리를 사용하고 싶은지 설명하자 코닝의 CEO 웬들 웍스는 코닝이 1960년대에 화학적 교환 공정을 개발해 이른바 '고릴라 글래스'를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이 유리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지만 시장을 찾지 못해 코닝이 더 이상 제조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잡스는 6개월 내에 코닝이 최대한 많은 고릴라 글래스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웍스가 대꾸했다. "생산 능력이 안됩니다. 지금 우리 공장들은 고릴라 글래스를 전혀 만들지 않고 있으니까요." 웍스는 이 일화를 회상하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가 실제로 6개월도 안 돼서 그 일을 해냈다니까요. 전혀 생산하지 않던 유리를 만들면서 말입니다." LCD 디스플레이를 제작하던 코닝사의 켄터키 주 해리스버그 공장은 거의 하룻밤 새에 고릴라 글라스 생산을 전담하도록 개조되었다. 


744p : 2010년 아이브는 자신의 수석 팀원들을 코닝으로 데려가 그곳의 장인들과 함께 유리를 만들어 보게 하기도 했다. 그해에 코닝은 '고질라 글라스'라는 코드명의 초강력 유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조만간 금속 테두리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력한 아이폰용 유리와 세라믹을 생산할 수 있기를 바랐다.

766p : 2009년 5월말, 간이식수술을 마친후 잡스는 팔로알토로 돌아오면서 자신이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맞서 싸워야 했다. 애플의 주가는 그가 없는 동안 적절한 궤도에 올랐다. 2009년 1월 병가를 발표할 때 82달러였던 것이 5월말 복귀 무렵에는 140달러까지 올라 있었다.

774p : 처음에 잡스는 아이패드에 인텔이 개발 중인 낮은 전압의 아톰 칩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토니 파델은 보다 단순하고 전력을 적게 사용하는 ARM 아키텍처 기반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애플은 초창기에 ARM과 파트너쉽을 맺었으며, 원조 아이폰에도 ARM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칩들이 들어갔다. 어느 날 회의에서 잡스가 적절한 모바일 칩 제작은 인텔에 맡기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하자 파델은 안된다고 소리쳤다. 파델은 심지어 애플 배지를 테이블에 놓고 사직하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잡스는 손을 들었다. "알겠네. 최고의 부하들을 거스를 순 없지." 그러고는 ARM 아키텍처의 라이선스를 얻는 한편, 팔로알토에 있는 사원 150명의 마이크로 프로세서 설계회사 P.A. 세미를 인수하고 그들에게 A4라는 맞춤형 SoC를 개발하게 했다. A4는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국의 삼성에서 제조되었다.

777p : 2010년 1월 27일, 아이패드의 역사적인 출시를 강조하려는 듯 잡스는 또 한 번 애플 초창기 시절의 사람들을 다수 초대했다. 그러나 더욱 심금을 울린 것은 그 전 해에 그의 간이식수술을 집도한 제임스 이슨과 2004년 그의 췌장 수술을 맡은 제프리 노턴이 참석해 잡스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모나 심프슨과 나란히 앉았다는 사실이다.

779p : 아이패드를 발표한 날 저녁, 스티브 잡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비서실장 람 이매뉴얼로부터 축하 전화를 한 통 받고 고마워했다. 그러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는 대통령이 취임 후로 자신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811p :  (테크 관련 웹 사이트 밸리웨그의 편집장, 라이언 테이트와의 이메일 논쟁중 스티브 잡스가 한 말...) "그건 그렇고, 당신은 어떤 대단한 일을 이루셨습니까? 무언가를 만드는 분입니까, 아니면 그저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비판하고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분입니까?"

826p : 잡스가 농담처럼 말했다. "이런 병을 갖고 살면서 고생하다 보면 자신이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하게 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머리까지 이상해질 수 있지요. 이런 상태에서는 대개 1년 이상의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데, 그건 좋지 않습니다. 억지로라도 수년을 살 것처럼 계획을 세워야 해요." 이런 마법적인 사고방식의 일환으로 그는 호화 요트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잡스는 언젠가 꼭 만들고 싶다던 배를 디자인하고 그것을 여러 번 수정하는 데서 기쁨을 찾기 시작했다. 그 무렵 배는 네덜란드 주문 제작 요트 건조 업체인 피드쉽에서 건조중이었지만 잡스는 여전히 디자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내가 죽고 로렌에게 만들다 만 배를 남겨 줄 수도 있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손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손을 놓으면 내가 곧 죽는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니까요."
 
861p : (구글에 대한 잡스의 조언) 내가 가장 강조한 것은 집중이었습니다. 구글이 어떤 회사로 성장하길 바라는지 파악해라, 구글은 이제 전 세계 어디에든 존재한다, 당신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다섯 가지 제품은 무엇인가? 나머지는 모두 제거하라, 그렇지 않으면 구글은 쇠약해질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되고 말 것이다, 적당할 뿐 훌륭하지는 않은 제품들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878p : 그의 성격 가운데 이런 심술궃은 부분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가 되었다. 그러나 가끔은 한 가지 목적에 기여하기도 했다. 다른 이들에게 상처주는 것을 피하려 노력하는 상냥하고 예의바른 리더들은 대개 효과적으로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잡스가 가장 못살게 군 동료들 수십 명의 입에서 나온 공포담 끝에는, 그들 자신이 꿈도 꾸지 못한 일들을 잡스가 하게끔 했다는 이야기가 뒤따르곤 했다.

881p :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 방식이 아니다.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고객은 '더 빠른 말!'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 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적히지 않은 것을 읽어 내는 게 우리의 일이다.

883p : 나는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이 쇠퇴하는 이유에 대해 나 나름의 이론을 갖고 있다. 이러한 기업은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혁신을 꾀하고 독점 기업 또는 그에 가까운 기이 되는데, 그러고 나면 제품의 질을 경시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훌륭한 세일즈맨들에게 가치를 두기 시작한다. 수익의 바늘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제품 엔지니어나 디자이너가 아니라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세일즈맨들이 회사를 운영하게 되는 것이다. IBM의 존 에이커스는 똑똑하고 언변이 뛰어난 환상적인 세일즈맨이었지만 제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제록스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세일즈맨들이 회사를 운영하면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다소 경시되기 시작하고 그렇게 되면 그중 상당수가 흥미를 잃는다. 나의 실수로 스컬리가 영입되었을 때 애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고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맡았을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애플은 운이 좋아서 재기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발머가 운영하는 한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884p : 나는 내가 사람들을 함부로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가 형편없으면 그저 면전에 대고 그렇게 얘기하는 것뿐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의 일이다.

885p : 혁신을 꾀하려면 언제나 끊임없이 밀어붙여야 한다. 진화, 바로 그것이 언제나 내가 노력하며 시도한 것이다.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 더그 엥겔바트, Douglas C. Engelbart (1925 ~ ) : 북유럽 출신 발명가. 컴퓨터 마우스의 발명자로 유명한 그는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하이퍼텍스트, 네트워크 컴퓨터 등의 분야를 연구한 세계적 권위자로, 1960년대 말 실리콘밸리의 독특한 문화적 흐름을 주도했다.

* 론 웨인, Ronald Gerald Wayne (1934 ~ ) : 잡스,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한 공동 창업자. 아타리에서 일하면서 잡스와 워즈니악을 만나 회사를 설립하기로 의기투합, 당시 800달러를 투자하면서 회사 지분의 10%를 배당받았으나 12일 만에 2300달러를 받고 회사 지분을 넘기고 만다.

* 랍 자노프, Rob Janoff (1952 ~ ) : 초창기 애플의 상징인 레인보우 애플 로고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레지스 매케나 아래에서 미술 디렉터로 근무하던 그는 애플 컴퓨터를 위한 로고 디자인 요청을 받고 처음에 '완전한 사과' 와 '한입 베어 먹은 사과' 두 가지 시안을 준비했는데 잡스는 두 번째 시안을 채택하였다. 이후 IBM과 인텔에서 근무했다.

* 빌 앳킨슨, Bill Atkinson (1951 ~ ) : 애플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관련 핵심 개발자, 원조 매킨토시 팀의 리더였던 제프 래스킨의 대학 제자로, 1978년부터 애플에서 근무하며 매킨토시 혁신의 중추로 활약한다. 매킨토시 히트 소프트웨어였던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맥페인트'의 개발자로도 유명하다.

 * 수잔 케어, Susan Kare (1965 ~ ) :  1980년대 애플 매킨토시의 아이콘, 글꼴 등 많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낸 그래픽 디자이너, 넥스트의 창립 멤버였으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하다가 이후 독립해 마이크로 소프트 윈도 3.0과  IBM OS/2 Wrap의 아이콘을 제작했다.

 * 애비 테비니언, Avadis Tevanian II (1961 ~ ) : 애플의 전 수석 부사장.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넥스트에서 일하다가 잡스의 복귀와 함께 애플에 들어가게 된다. 애플에서는 운영체계 개발의 중핵으로 활약했으며 맥 OS X의 초기 설계를 담당했다. 

 * 앤디 허츠펠드, Andy Hertzfeld (1953 ~ ) : 매킨토시 개발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를 졸업한 후 애플 II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면서 경력을 시작했다. 디자이너인 수전 케어와는 고교 시절부터 친구로 그녀를 애플에 소개했으며 잡스와는 단짝이었다. 애플을 떠난 뒤 몇몇 업체를 거쳐 최근에는 Google+의 유저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했다.

 * 앨런 케이, Alan Curtis Kay (1940 ~ ) :  세계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인 권위자이자 휴렛패커드 연구소 현 명예연구원. 그가 제록스에서 개발한 네트워크 워크스테이션 초기 모델은 애플 매킨토시 개발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84년부터 애플 특별 연구원으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뷰포인츠 연구소 대표로 재직 중이다.  

 * 에디 큐, Eddy Cue : 애플의 수석 부사장. 듀크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1998년 애플 온라인 스토어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이래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와 앱 스토어를 중추를 맡았던 그는 잡스 스 퇴임 후 팀 쿡 체제 아래에서 아이클라우드와 아이애드의 책임자로 임명, 인터넷 소프트에어 서비스 부문 수석 부사장을 맡게 되었다.

 * 장-루이 가세, Jean-Louis Gassee (1944 ~ ) : 애플의 제품 개발 관리자. 휴렛팩커드에서 일하다가 애플로 옮긴뒤 프랑스 지사서 높은 이윤을 기록하며 탁월한 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존 스컬리 체제 아래 매킨토시를 관리하였으며 잡스를 퇴출하고 복귀를 저지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나 이후 넥스트의 창의력을 인정하면서 잡스와는 화해한다. Be의 설립자로 Be OS를 만들었다.

* Jef Raskin (1943 ~ 2005) : 1970년대 후반 애플의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담당한 컴퓨터 과학자. 애플II를 위한 매뉴얼 작성을 의뢰받아 애플에 합류한 이래, 매킨토시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 빌 앳킨슨등 뛰어난 전문가들과 팀을 조직하였으나, 매킨토시 프로젝트는 이후 잡스가 관할하게 된다. 맥OS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며 인간 중심 인터페이스 설계의 권위자로 꼽힌다.

* 토니 파델, Anthony M. Fadell (1969 ~ ) : 아이팟 부문의 전 수석 부사장. 미시간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후 애플에 입사하였으며, 2001년 온라인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와 연동되는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라는 개념을 발전시켜 아이팟을 개발했다. 존 루빈스타인과 함께 '아이팟의 아버지'로 불리며 아이팟 신화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2008년 애플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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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다. 맥북 충전 어댑터의 돼지코부분을 제거하고 빨강색 플러그 버그를 꽂기만 하면 USB 충전포트가 하나 더 생긴다. 사실 그냥 맥북 USB포트에 꽂아 iPad나 iPhone 충전해도 되지만, 아무래도 전원에 바로 연결하는 방식이 충전은 빠르다. 지역별로 돼지코 분리 충전 플랫폼을 사용하는 맥북이나 되니까 가능한 아이디어... 


가격은 $34.99

http://www.twelvesouth.com/products/plugb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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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부분의 제조업체들은 수년전부터 도요타의 생산시스템 (TPS)을 벤치마크하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도요타 공장으로 실습도 가고, 관련책들도 공부시키고, 도요타 출신 컨설턴트들 세미나도 열고... 일단, 생산쪽 부서에게는 좋은 기회이고, 얻는 것도 많겠지만, R&D쪽에서 보자면, 좀 당황스러울때가 많다. 생산과 개발은 분명히 다름에도, 무조건 TPS를 R&D에도 적용하라고 하니, 좀 답답하기도 하고, 실제 도요타에서 제품개발은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드디어 그 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수 있는 "도요타 제품개발의 비밀"이란 책이 출시되었다.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듯, 많은 것을 기대하고, 479페이지를 정독하였지만, 결국 도요타의 제품개발 비법이란 누구나 다 아는 아래와 같은 진리들이다. 다만, 실천을 못할뿐...

- 도요타를 그대로 따라할수도 없지만, 따라할 필요도 없다. 수십년동안 쌓아올린, 도요타식의 치밀한 조직문화가 핵심이지, 특별한 기술이나 프로세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 도요타 웨이는 교실이나 온라인에서 배울 수 없다. 오직 수년간의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서 시스템을 배우게 되는것이다.
- 생산에서의 낭비제거도 중요하지만, 개발에서의 낭비제거가 더 효과가 크다.
- 치프 엔지니어 제도 : 해당 분야의 경험이 풍부하고, 탁월한 기술적 능력의 소유자를 가려내고 리더로 육성한다. --> 프로젝트 리더나 프로젝트 매니저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컨셉기획, 제품개발부터 양산준비까지 혼자(?) 책임을 진다. 경영진들의 눈치보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하에 어느정도 의사결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여러부서에서 모인 팀원들에 대한 인사권한은 없다. (매트릭스 조직) 
- 개발초기, 가장 우수한 인재를 투입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컨셉과 대안을 검토하게 하라.
- 개발초기 컨셉기획시, 관련된 모든 부서의 사람들이 다 모여, 많은 대안과 아이디어를 내며, 예상되는 문제점을 철저히 점검하고 해결해야 한다. 각 부서의 담당자들은 철저한 체크리스트 문서를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해나간다. (통합 개발팀 + 오베야 팀 시스템)
- 기술은 사람을 강화시켜야 한다. 사람을 대체해서는 안된다.
- 지속적인 개선은 수법이 아니고 정열이며 삶의 태도이다.
- 제조건, 제품개발에서건 가장 큰 문제는 주로 각부서간 활동의 접점에서 발생한다.
- 제품개발은 물리적인 흐름보다는 주로 데이터의 흐름에 관한 것이다. 데이터의 중요한 특성은 그것이 복수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제품개발 프로세스는 순차적이 아닌 동시병행적 처리가 가능하다.
- 제품개발 프로세스에서 기업이 과소평가하기 쉬운 측면은 설계 변경의 횟수와 그 영향이다. 때늦은 설계변경과 그로 인한 재작업 비용이 업계를 막론하고 모든 복잡한 제품개발 프로세스에서 낭비의 제1요인이다.
- 리더는 기술면에서 강해야 하며 젊은 부하직원에게 전할 수 있는 가치있는 경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문제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가서 보는 것이다. (현지현물주의) 리더의 기본 자질은 교육과 멘토링으로 평가해야 하고, 기본적인 전문 분야에서 필수적 스킬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그 누구도 승진할 수 없다. 철저한 기술능력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 사원들에게 투자하라. 위대한 기술자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프로세스는 단축될 수 없으며, 기술자가 다른 곳에서 교육 또는 훈련을 받아서 여러분의 회사에서 훌륭히 일을 해낼 것으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도요타 TPS를 제품개발/디자인에 적용하도록 압박(?)받고 있는, 모든 제조업 개발자/디자이너들에게 무엇이 도요타 제품개발의 핵심인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게 해주는, 보석과도 같은 책이다. 다만, 자동차 제조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좀 더 이해가 쉽고 빠를 듯...

★★★★☆


 
8p : 우리는 도요타를 연구하면서 도요타 시스템이 도요타만의 역사와 진화의 궤적 (도요타 가문과 일본 문화 그리고 도요타가 출현하고 발전하게 된 특수한 사회적, 경제적 환경 및 수십년에 걸쳐 효과를 발휘해온 범회사적 학습등)에 깊이 뿌리내려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렇기에 회사마다 독자적인 역사와 환경이 다르므로 어떠한 회사라도 도요타의 툴과 전략을 그대로 도입하여 스스로를 도요타로 변신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한 개별 툴이나 기술 혹은 프로세스 하나만을 뽑아내어 그것을 린 원칙에 통용되도록 변화시켜 놓고서 그것이 여타의 경우들과 똑같이 기능하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다. 모든 회사는 각자 독자적인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17p : 실제 제조현장에서 낭비를 제거하면서 많은 기업들은 제품이나 프로세스의 개발활동이 더욱 중대한 제약 조건이란 사실을 알게 되며, 실제로도 제품 및 프로세스 개발이 "린기업"을 실현하는데 있어 "린생산"보다 더 큰 영향을 주게 된다.

22p : 1980년대 후반, 자동차의 스타일링 결정에서부터 양산개시까지의 차량 개발 리드타임은 일반적으로 36 ~ 40개월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량 개발에 필요한 기간이 대폭 단축되어 일반적으로 24개월이 소요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업계 평균의 리드타임을 도요타는 15개월로 단축시켰으며, 일부 차종은 10개월이란 기록적인 리드타임에 개발하기도 했다.

23p : 자동차의 기능이 해마다 복잡해지는 지금의 상황에서 신제품 개발은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날 극도로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는 제조 능력보다는 탁월한 제품개발력이 전략적 차별화 요인이 되고 있다.

24p : 제조에 관한 기업들 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데도, 자동차 업계내에서의 제품 개발력 차이는 커지고 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1980년대 이후 린 생산 도입에 의해 생산 영역에서 큰 개선 성과가 있었지만, 지금의 생산성 수준을 고려해 볼때 생산활동에서 혁신을 지속해도 얻을 수 있는 성과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24p : 강력한 생산 시스템은 품질이나 생산성에 영향을 주지만, 고객정의 가치에 대한 영향이나 차종에 대한 투자금액, 변동원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품개발 초기 단계에서 가장 크고, 개발 프로그램이 진행됨에 따라 작아진다. 그리고 생산 그 자체는 개발비용을 절감하거나, 타사보다 빨리 신형차를 개발하거나, 차의 기능이나 기술 혹은 스타일링에 그다지 공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생산은 부품 공급업체의 초기 선정에도 그다지 영향력이 없다. 자동차의 60% 이상이 부품 공급업체의 제품으로 구성되므로 (기타의 산업도 같은 경향), 부품 공급업체의 개발이나 생산에 대한 공헌, 나아가서 부품 공급업체의 선정은 차의 비용이나 품질에 대단히 큰 영향을 준다. 마지막으로 도요타나 그 밖의 회사가 증명해 보여줬듯이 생산력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기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28p : 도요타의 린 시스템에서 툴을 빌려오는 것은 최신의 협업용 개발 IT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과 같이 쓸데없는 일이다. 회사가 제품 개발 능력을 대폭 향상하는 유일한 방법은 도요타나 그 밖의 위대한 기업의 기본사상을 바탕으로 끈기있게 자신만의 고유한 제품개발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30p : 미국의 도요타 제품개발부문의 간부는 "Common sense engineering"이란 말로 그 진실을 표현한 바 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것은 도요타에서는 상식인 것이 도요타밖에서는 상식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33p : 어떤 원칙을 구성하는 특정한 툴이나 인적 자원이 개별적으로는 유용하다 해도, 린 제품개발을 정말로 강력한 수단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상호보완적인 툴과 프로세스, 그리고 인적 시스템의 조화로운 작동에 의해서이다.

34p : 린 시스템에서는 항상 고객이 출발점이다. 따라서 낭비를 정의하는 것은 고객가치가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데서 시작한다.

35p : Set-based Approach : 단일안을 순차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아니고, 복수의 선택사항을 동시에 검토하는 방법

38p : 도요타에서는 전체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을 파악하고 조정 역할을 책임지는 치프 엔지니어를 두고 있다. 그는 단순한 프로젝트 매니저가 아니라 리더이자 기술시스템의 총괄 책임자이다. 따라서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어려운 의사결정은 치프 엔지니어의 몫이 된다. 많은 회사에서 치프 엔지니어나 프로그램 매니저라는 직위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사람이나 개발 스케줄을 관리하는 정도의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즉 기술적 아키텍처를 결정하는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46p : 효과적인 제품개발 : 고객이 정의한 가치를 가능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 그 가치에 맞는 제품개발을 방해하는 낭비를 없애거나 줄이는 것

49p : 도요타의 가치발견 프로세스에서 가장 중요한 제1스텝은 개발계획에서 중요한 리더의 선정이다. 도요타에서는 타깃 고객층과 공감할 수 있는 경력을 가진 인물을 개발계획 리더로 뽑는다. 렉서스 품질의 권위자로 유명한 시라미즈 고우스케부사장은 "베버리 힐즈에 간 적도 없는 기술자가 렉서스를 설계해서는 안된다."며 "독일의 아우토반을 운전해본적이 없는 기술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50p : 도요타 RAV4 자동차의 치프엔지니어가 미국에서의 타깃 고객층인 X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이해하고자 남캘리포니아에 가서 하숙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57p : 탁월한 제품개발을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리더가 프로그램 전체에 걸쳐 일관성 있는 구체적 목표를 명확히 전달하는 프로세스가 필요하고, 리더는 모든 기능별 부문을 고객정의 가치를 달성하는 활동에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58p : 린 제품개발 시스템 (LPDS) 의 원칙은 고객정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개발팀 전체에 널리 확산시키고, 프로그램 각 부문에서 의미가 있는 목표로 세분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린 제품개발 프로세스를 구축할 때에 매우 중요한 최초의 스텝은 이 고객정의 가치를 이해하고 세분화하는 것이다.

60p : 너무 조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관리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관리자는 절대 불가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이를 바꾸어서는 안된다.

60p : 경험적으로 볼때 초기 단계에서의 적절하지 못한 결정은 시간이 경과하고 프로젝트가 성숙함에 따라 비용이나 개발기간에 점차 더 큰 악영향을 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지만, 실제로 개발 초기 단계에 현명한 투자를 통해 절호의 기회를 잘 살리고 있는 회사는 소수에 불과하다.

61p : 도요타의 제품 개발 계획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격언인 "조심스럽게 계획을 세워라. 그리고 그대로 실행하라" --> 개발후기의 설계변경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최악의 낭비만 가져올 뿐이다.

62p : Set-based Concurrent Engineering : 설계와 생산안을 동시에 변행해 검토한 후, 그 환경과 양립하고 실현 가능한 설계안으로 서서히 좁혀간다. 세트 기반 동시공학은 설계 변경의 필요성을 크게 줄이는데, 그 원리는 문제를 될 수 있는 한 빨리 발견하여 이를 해결하고, 주요한 트레이드 오프를 포함한 제품개발의 기본적인 부분이 되는 제품의 특성을 명확하게 해준다.

75p : 도요타에서는 각 부분의 설계 완료보다 시스템 내에서의 부품 호환성을 중시한다. 완료보다 호환성을 중시하는 원칙은 세트 기반 동시공학 기법의 근저를 이루며 (표준 아키텍처나 프로세스와 함께), 도요타에서 설계 변경이 극도로 적은 중요한 이유이다.

77p : 도요타에서는 스타일링 부분에 대해 2가지 서로 다른 역할을 의식적으로 만들어 왔음을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첫번째 역할은 순전히 예술적인 것으로 디자이너가 정해지면 그는 클레이 모델의 스케치를 시작한다. 이 디자이너는 도요타의 특징인 제조용이성에 관한 논의나 도요타 자동차라는 특징을 지우는 일반적 합의에서 자유롭다. 두번째 디자이너는 예술성과 실용성을 조합시키는 역할을 하며, 클레이 모델에 제조용이성을 고려하여 수정을 가하는 생산 디자이너이다. MDT (모듈개발팀)는 두번째 역할 중 일부를 담당한다. 사실 일부 생산 디자이너는 스타일링 부문이 아니라 기술 분야의 사무실에서 개발기술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한다. 그들은 스타일링을 2가지 측면에서 이해한다. 하나는 소비자 가치 측면에서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타일을 수정하여 쉽게 제작할 수 있도록 변경할 수 있는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조직론적으로 말하면 생산 디자이너의 역할은 스타일링과 개발 부문의 조정자 역할이다.

93p : 유감스럽지만 많은 기업은 개발 초기 단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이 시기에는 거의 자원을 배당하지 않고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기업의 경영진은 가장 우수한 인재를 개발 프로그램의 초기에 배당하는 대신, 개발 최종 단계의 급한 불을 끄는 일에 투입한다. 이것은 회사 자원의 낭비이자 우수인재의 능력과 사기에 대한 손실이기도 하다.

95p : 개발 초기야말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제품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시기이다.

98p : 정보의 흐름이 물건의 흐름보다 중요하다.

103p : 7대 낭비에 대한 제품개발에의 적용

     7대 낭비                정의     제품개발에서의 사례
      과잉생산의 낭비 다음 프로세스가 필요로 하는 양보다 많이 그리고 빨리 생산 일괄적이며 동기화되어 있지 않은 병렬 작업
      대기의 낭비 물건, 정보, 또는 의사결정을 기다린다. 의사결정이나 정보의 배포를 기다린다.
      운반의 낭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물건을 옮긴다. 업무전달과 정보의 과도한 배포
      가공의 낭비 작업시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행하거나 불필요한 작업을 하는 것 시작과 중단을 반복하는 작업, 중복적인 작업, 과거 설계한 것을 다시 설계하는 것, 프로세스의 편차 - 표준화의 결여
      재고의 낭비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정보를 만들어 놓는것 배치작업, 시스템의 과부하, 작업 도착 간격의 편차
      동작의 낭비 일을 수행함에 있어 불필요한 동작이나 활동 장거리 이동, 불필요한 회의, 표면적인 리뷰회의
      불량의 낭비 품질 문제를 발견하기 위한 검사나 발생한 문제를 수정하는 것 외부 품질 감사, 수정과 재작업

103p : 다음 공정이 필요로 하지 않는 작업을 행하는 것은 모두 낭비이다.

104p : 제품개발에서 가공의 낭비는 종래의 부품을 원용하지 않고 새로운 부품을 설계하거나, 표준설계 아키텍처에 근거해서 설계하기보다 제로 상태에서 처음부터 새로 설계할때, 또 표준생산 프로세스에 맞추지 않고 개발 프로그램마다 제각각의 생산 프로세스를 개발할 때 일어날 수 있다.

116p : 예정에 없는 뒤늦은 설계변경을 실제 개발 현장에서 완전히 배제할수는 없지만, 이러한 설계변경은 개발 프로세스를 어지럽히고, 개발비용을 높이며, 품질에 악영향을 준다.

138p : 기술자는 정보를 만드는 대로 다수의 기술자에게 그것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응해서 지식을 당기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142p : 이상적인 개발 체크리스트는 좋았거나 나빴던 설계법, 성능 요구, 주요한 설계 인터페이스, 주요한 품질특성, 제조 요구 및 설계를 공통화하는 표준 등에 관해 회사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배운 것을 축적한 지식 베이스여야 한다.

157p : 장기간에 걸친 엄격한 선별 검토 프로세스후, 도요타는 기술직에 응모한 전문 후보자 중 단지 1.1%만을 채용한다.

164p : 치프 엔지니어의 궁극적 책임은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다. 도요타는 항상 팀워크를 강조하지만, 팀 전체의 성공에 대한 책임은 한 사람만이 진다. 제품개발에서 그 역할을 맡는 이가 바로 치프 엔지니어다. --> 실제 도요타에서는 이를 육성하는 데 최소 12년 이상 소요됨.

165p : 치프 엔지니어의 조건 : 고객이 바라고 있는 것에 대한 직관적 이해, 탁월한 기술적 능력, 직관적이지만 사실에 근거하는 균형감, 혁신적이지만 실증되지 않은 기술에는 회의적, 비전이 있지만 실무적, 엄하게 지도하는 교사, 격려자, 단련시키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인내하는 경청자, 혁신적 목표달성에 대한 타협없는 태도,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스킬, 언제라도 손에 기름을 묻힐 용의가 있을 것 (어려운 일에 대한 각오)

166p : 전형적인 제품개발시스템에서는 회사 간부가 새로운 제품 라인 개발에 대한 전략적 결정을 내리면, 그 프로그램이 즉시 마케팅의 경험을 가진 기획그룹으로 넘겨지고, 거기에서 마케팅 컨셉이 만들어진다. 그 다음 산업 디자이너가 제품의 디자인을 스케치한다. 그 후 개발 하류의 어디에선가 기술자가 참가하여 스케치에 맞추어 기술적 세부 항목을 연구한다. 린 제품 개발시스템에서는 언제나 기술적 관점을 견지한다. 회사 간부가 새로운 제품 개발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내리면, 즉시 그것을 이끌고갈 치프 엔지니어를 임명한다. 개발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치프 엔지니어는 단순히 스케줄 조정이나 기술적 세부 항목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동차의 컨셉에서 스타일링과 시작차, 그리고 양산 개시까지를 모두 책임진다. 그래서 종종 치프 엔지니어가 동일 차종을 몇대에 걸쳐서 담당한다.

170p : 스즈키 이치로 (1983년, 렉서스 개발 치프 엔지니어)가 렉서스 컨셉을 잡으며 했던 3가지 질문 --> 1) 고품질의 고급자동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자동차의 오너를 금전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부유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자동차의 특성은 어떤 것인가? 3)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오너의 자동차에 대한 애착과 소유욕을 더욱 증가시키는 자동차는 과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185p : 북미쪽 자동차3사에서는 과거의 강력하고 창조적인 치프 엔지니어 대신 게임을 솜씨 좋게 펼치는 방법을 배운 관료적인 관리자가 제품개발을 이끌게 되었다. 이들 관리자는 시스템 설계자라기 보다는 행정관이다.

189p : 치프 엔지니어는 그를 돕는 소수의 어시스턴트를 관리하지만, 제품 개발에 종사하고 있는 기술자들의 관리자는 아니다. 치프 엔지니어는 개인적인 영향력과 기술적 노하우 및 제품 결정의 권한을 통해 프로젝트를 이끌어간다. 치프 엔지니어는 고객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제품의 성공에 관해서 컨셉에서 판매까지 책임을 진다.

193p : 도요타는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기능별 전문인력과 프로젝트간에 사람을 공유함으로써 효율을 얻을 수 있는 기능별 조직과 기능 부문을 횡단하여 시스템을 통합하는 제품별 조직 중 어느 한가지를 선택해야 할 경우, 도요타는 양쪽 조직을 다 원한다라고 답할 것이다. 도요타의 성공비결은 깊은 전문화에 준거한 강력한 기능별 조직과 매트릭스의 또 다른 축으로서 치프 엔지니어 시스템의 결합에 있다.

203p : 스컹크 워크 (Skunk work) --> 록히드사가 1950년대에 스파이용 정찰기를 만들기 위해 설립했던 비밀 프로젝트팀의 별칭으로, 조직 내 관료주의에 의한 간섭을 최소화하고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조직... 보통, 사무실을 사외에 둔다.

221p : 도요타는 자사를 기본적으로 "자동차 제조기업(핵심역량)"으로 정의함으로써 타사가 제품기술자에게 제조가 용이한 설계를 강요하며 겪었던 많은 문제점들을 배제시킨다. 도요타에서 생산기술로 불리는 제조기술은 회사의 핵심과도 같다.

233p : 도요타 자동차공업의 창업자인 도요타 기이치로 --> "식사전에 손을 씻지 않아도 되는 기술자 (즉 일 때문에 손을 더럽히지 않은자)는 결코 믿을 수 없다" --> 현지현물의 정신

237p : 어떤일을 시도해보려는 노력을 당연시하고, 실패에 대해서도 처벌하지 않는 도요타의 학습하는 문화를 계속해서 강화해 왔다.

237p : 인재는 단지 채용하거나 스카우트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육성해야 하는 존재이다.

238p : 린 제품개발시스템에서 요구하는 바는 모든 기술자에게 탁월한 기술능력을 갖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라는 점이다. 도요타의 문화에서는 기술능력을 존중하므로 그 결과, 기술실력주의가 창출되었다. 이 문화는 멘토링, 전략적 과제 설정, 그리고 성과에 근거하는 엄격한 인사평가를 통해 영원히 기술적 우수성을 지속하게 된다.

268p : 도요타는 부품 메이커 간의 구조화된 "관료주의적" 관계를 강압적 관계에서 전향적 관계로 바꾸고, 안정된 프로세스와 요청되는 사항들을 명확히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 대부분은 부품메이커와의 거래 프로세스를 끊임없이 다시 만들지만, 이는 같은 개발 프로젝트내의 기술자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부문 간에서조차 일치하지 않는다.

269p : 린 제품개발시스템의 근저에는 부품 메이커를 존중하고 합리적으로 대우하는 정신이 있다. 도요타는 부품 메이커를 괴롭히거나 협박하지 않는다. --> 부품 메이커를 완전히 제품 개발 시스템에 통합시켜라...

275p : 많은 기업들이 린 시스템을 따름에도 실패하는 주요 이유중 하나가 린툴이나 테크닉과 같은 형식지만을 흉내내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들 기업은 조직의 유기적 학습과 적응, 성장을 가능케 하는 린 문화의 암묵지, 즉 "노하우"형 지식을 도입할 필요성을 이해하지 않고 린을 도입했던 것이다.

278p : 조직 내에서 지식을 모으고 보존하며 재사용하는 장치나 문화가 없으면, 그 조직은 똑같은 것을 개발할 경우에도 처음부터 항상 새로 시작해야만 한다.

284p : 북미 자동차3사는 흔히 문제를, 부정적이며 예상밖의 일로 인식하고, 문제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식의 태도를 취한다. 문제가 필연적으로 표면화되면 비난과 책임전가가 성대하게 일어난다. 이러한 기업에서는 관리직도, 일반사원도 문제발생이 작업 수행의 무능을 드러내는 지표라고 믿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 그 결과 개별 기술자는 문제를 될 수 있는 한 오랫동안 숨길 방법을 재빨리 터득하게 된다. 물론 숨겨진 문제는 악화되어 제품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문제해결은 곤란하게 된다. 일단 문제가 발견되면 모두가 다급해지며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다른 일은 급한 불이 꺼질 때까지 보류상태가 된다.

288p : 품질 겉치레 증후군 --> 차량 품질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보다 품질의 본질이 아닌 품질의 외양에 주목한다.

289p :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개선하는 능력은 린 제품개발시스템의 가장 강력한 경쟁우위의 무기일지도 모른다. 이 틀 속에서 암묵지인 "노하우"의 지식은 가장 강력하지만, 육성과 관리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다. 여기에는 지름길이나 IT 솔루션이 없다. 암묵지의 전달과 적용에는 긴밀한 인간관계와 함께 체계적인 개인지도, OJT, 전략적 교육과 정보원인 사람과의 장기간의 대면 접촉을 가능케 하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294p : 도요타 웨이는 교실이나 온라인에서 배울 수 없다. 오직 실천을 통해서 시스템을 배우게 된다.

302p : 개선은 안정되고, 표준화된 프로세스에서 시작된다. 도요타의 기술자는 모두 표준화의 중요성을 믿는다. 따라서 표준의 작성과 개선에 시간을 투자하고, 설정된 표준은 엄격히 따른다.

304p : 개선은 수법이 아니고 정열이며 삶의 태도이다. 개선의 문화없이 린 제품개발 프로세스는 없다.

310p : 직원끼리 싸우게 하여 승자를 우대하고, 패자를 멀리하는 일을 하지 말것.

311p :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간부급 직원에 대한 도요타의 방침 --> 창문 옆자리를 배정받으며,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업무가 할당된다. 예를 들어, 이러한 관리직은 부하도 없이 창가쪽에 자리하며, 회사나 다른 직원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직무만 주어진다. 이것을 고민거리가 없는 편안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가 최고 수준으로 일하도록 스스로 압력을 부과하는 도요타 문화에서 이는 대단히 굴욕적인 지위이다.

316p : 도요타와 북미자동차3사의 대조적 조직문화
 도요타 북미자동차 3사
 기술적 탁월성 사업적 탁월성
 프로세스의 규율과 근로의식  결과지향
 날마다 개선  매번 새로운 대규모 활동 개시
 계획과 상세한 실행  즉시할것
 문제를 통해, 학습하는 DNA  문제발생시, 문제없다며 그냥 넘어감.


316p : 북미 자동차3사는 월가의 분기별 이익에 대한 기대치 충족이 최대의 목표이기에, 재무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다. 즉 어떤 수단과 비용을 막론하고 순이익이란 결과치를 달성하려는 사고방식이므로, 기술적 탁월성은 부차적인 요소가 된다. 간부들의 대다수는 인건비가 최대의 경비라고 말하며, 핵심능력의 손실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인원 감축에 노력을 집중한다.

326p : 기술 컨설턴트는 흔히 "최첨단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당신 회사의 프로세스를 끊임없이 개선해야 합니다."라고 조언한다. 도요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정반대이다. 기술에 맞춰 프로세스를 변경하면 불안정화를 초래해 거대한 프로세스의 편차를 유발하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엄청난 낭비를 만들게 된다. 기업은 자신들의 전략과 투자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에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려하고, 결국 이를 위해 프로세스와 씨름하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326p : 기술로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 제품개발에서는 기술자의 시간과 재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툴과 기술의 선택이 최선이다. 툴과 기술은 전문능력의 대체역할이 아닌 전문능력을 보완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347p : 린 조직에서는 항상 프로세스의 완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첫 번째 주요한 관심사이고, 기술은 단지 일종의 촉매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북미 자동차 3사는 기술을 마법의 탄환으로 간주해버린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이상화는 오히려 기술의 비효율적 사용법을 조장한다. 이럴 경우 대개 기술자는 새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비난받게 된다.

348p : 어느 경쟁사나 동일한 기술을 사거나 개발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술은 시스템과 잘 맞는 것뿐만 아니라 프로세스를 강화하고 지속적 개선을 증진할 때에 가장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349p : 결국 제품개발은 많은 전문가들 사이의 정보 흐름이다. 의사소통을 중단하고, 정보의 흐름을 중지시키면 제품개발은 정지된다. 이제는 설계를 벽 너무 타 부문으로 떠넘기지 말고, 기능을 횡단하며 상류 및 하류의 전문가팀과 동시 병행으로 의견을 주고 받을수 있도록 기술자를 가르쳐야 한다. 의사소통은 많을수록 좋으며, 기술자들이 매일 긴밀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같은 사무 공간에 이들을 배치하는 것이 제품개발의 최선책이다.

352p : 의사소통에 대한 린의 관점 --> 1) 모두가 책임진다는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2) 모두가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면 아무도 깊게 이해하지 않는 것이다. 3) 모든 의사소통이 모든이에게 전해진다면 아무도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의사소통을 집중하지 않을 것이다. 4) 모두가 방대한 데이터에 파묻히게 된다면, 아무도 그것을 읽지 않을 것이다.

363p : 자신의 생각을 강제로라도 거르고, 다음어 종이 한장만 읽어도, 관리자가 가질수 있는 모든 의문에 답을 얻을 수 있도록 단 한 장의 종이에 정리하라. 이것이 바로 린의 정수이다. --> 도요타의 A3 문제해결 툴

380p : 린 제품개발시스템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개별 기술자이지, 학습 도구나 기술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392p : 조직적 학습과 표준화에서는 조직이 사용하는 특정 도구보다도, 이들이 관심을 갖는 지식의 유형이나 학습 프로세스에서의 주인의식, 그리고 창조적 표준화의 참된 위력을 배우고 인식하는 데 필요한 강한 문화적인 의지가 더 중요하다.



395p : 제품개발에서는 시스템 간의 적합성이 대단히 중요하다. 실제로 우리는 시스템의 위력이 어떤 단일 서브시스템의 유효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3가지 서브시스템이 얼마나 잘 정렬되고 상호협력적인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기업들은 개별 서브시스템만으로는 강하며 상당히 유능한 기능 부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서브시스템 속성이 서로 잘 조화되지 못하고, 기능별 조직 간의 연계되지 못하기 때문에 린 제품개발에서 필요로 하는 짧은 리드 타임을 얻을 수 없었다. 결국 "기업전체"를 고려하는 시각은 사라지고, 각각의 서브시스템이 서로 부딪히는 한편, 각 기능별 조직은 고립되고, 기업은 상호 호환되지 않는 개인의 실적만을 중시하는 문화로 변해버린다. 조직은 조직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분쟁속에 갇혀, 회사 전체는 항상 내부 분쟁의 상태에 휩싸인다. 결과적으로 린, 특히 린 제품개발프로세스를 도입하고자 하는 노력은 의도했던 바와 달리 헛수고로 끝나버리고 만다.

396p : 도요타는 모든 부분을 통합하는 능력이 탁월하기에 전체가 원활하게 기능한다.

399p : 도요타의 3가지 핵심
              프로세스                   사람                    도구
- 검토 단계에서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구체적인 전략을 분석, 합의한다.

- 현재의 품질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프로젝트 개시 전에 공장(현장)을 견학한다.

- 프로세스 간의 업무 전가를 최소화한다.

- 자원의 최적 이용을 위해 상세한 스케줄링과 능력 계획을 작성한다.

- 변경이나 재작업을 최소화하기 위한 검토를 철저하게 한다.
- 치프 엔지니어 제도

- 모든 모듈개발팀을 아우르는 기능횡단팀의 매트릭스 구조

- 고객제일주의가 조직 전체에 침투해 있다.

- 모든 문제는 조기에 해결해야 한다. (체크 리스트)

- 계획의 초기 단계에서 제조 관계자의 참가는 필수

- 팀의 일체성에 따른 신뢰 관계를 구축한다.

- 기술적 스킬이 높은 관리자 (가르치는 것은 리더쉽의 일부)
- 치프 엔지니어의 컨셉서

- 구체적으로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경쟁 차량
의 tear down에 의한 비교 분석

- 체크리스트

- 표준 프로세스 쉬트

- 품질 매트릭스

- A3 의사소통 (한장에 정리)

- 노하우 데이터베이스

- 학습을 중시하는 DNA

412p : 긴 대기 및 소모적 업무를 야기하는 작업시간과 발생 간격의 편차, 처리중인 데이터 재고는 제품개발 프로세스 전체에 만연되어 있다.

413p : 제조건, 제품개발에서건 가장 큰 문제는 주로 각부서간 활동의 접점에서 발생한다.

415p : 제품개발은 물리적인 흐름보다는 주로 데이터의 흐름에 관한 것이다. 데이터의 중요한 특성은 그것이 복수의 장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제품개발 프로세스는 순차적이 아닌 동시병행적 처리가 가능하다.

416p : 제품개발과 제조에서 가치흐름도의 비교
 제품개발 프로세스 전통적인 제조 프로세스
 버추얼한 데이터의 흐름  물리적 제품의 흐름
 주, 월 단위  초, 분 단위
 지식작업  물리적 제조 작업
 비선형적이며 복수의 방향으로 진행하는 흐름  선형적이며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흐름
 다수의 다양한 기술 전문가 집단  제조 조직

432p : 문제를 프론트로딩하여 평준화된 흐름을 만들고, 프로세스 내에서 재작업을 없앤다. 품질을 제품설계에 내장시켜 부품이 완성되기 전에 시스템 수준에서의 호환성을 달성한다.

444p : "고객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절대적인 전제조건으로 반드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시장의 속성, 경쟁상대, 특히 고객을 가치로 간주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447p : 대부분의 기업이 자사의 현재 프로세스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흔히 이들 기업은 자사에서의 제품개발에 필요한 시간이나 자원을 실제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믿고 있다.

448p : 제품개발 프로세스에서 기업이 과소평가하기 쉬운 또 하나의 측면이 설계 변경의 횟수와 그 영향이다. 때늦은 설계변경과 그로 인한 재작업 비용이 업계를 막론하고 모든 복잡한 제품개발 프로세스에서 낭비의 제1요인이다.

448p : 일반적인 회사에서의 제품개발시 낭비 요인 --> 1) 부품표의 확인 혹은 주문서의 추적과 같은 관리업무 2) 부품개발과 테스트 계획을 위한 표준화되어 있지 않은 계획을 작성하거나, 비효율적인 계획 시스템에 의해 야기되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궁리 3) 제3의 보고조직에 상황 정보의 제출 (회사의 상층부) 4) 핵심개발팀을 감시하는 품질관리와 같은 감사조직이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 착실한 수행을 입증하기 위한 제반 활동들

449p : 자사의 제품개발 프로세스를 검토할 때에는 핵심 제품개발 그룹의 베테랑 기술자를 그 태스크포스팀의 리더로 뽑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재의 제품개발의 가치흐름, 특히 자신들의 전문 영역에서 가치 있는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451p : 리더는 기술면에서 강해야 하며 젊은 부하직원에게 전할 수 있는 가치있는 경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문제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가서 보는 것이다. (현지현물주의)

454p : 리더는 조직문화를 결정짓는 인재 채용과 육성에 많은 에너지, 시간,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

455p : 신규인력 채용시 --> 아무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최고의 후보만을 선택하도록 한다.

456p : 사원들에게 투자하라. 위대한 기술자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프로세스는 단축될 수 없으며, 기술자가 다른 곳에서 교육 또는 훈련을 받아서 여러분의 회사에서 훌륭히 일을 해낼 것으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456p : 리더의 기본 자질은 교육과 멘토링으로 평가해야 하고, 기본적인 전문 분야에서 필수적 스킬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그 누구도 승진할 수 없다. 철저한 기술능력주의를 도입해야 한다.

463p : 관리와 리더쉽에는 큰 차이가 있다. 관리자는 계획하고, 조직화하고, 관리하며, 또 일반적으로 공식적 시스템을 통해 일을 한다. 반면 리더는 모두의 마음과 혼을 사로잡고, 일을 현실화하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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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몬스터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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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3 12:3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마치 제가 책을 읽은 것 같내요..^^
    나중에 저도 직접 사서 한번 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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