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미술관 MoA (http://snumoa.org/)에서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 게임 +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패미콤, 아티리 등등 80년대 올드게임기기들이 총망라되어있고 실제로 동작가능한 기계들 위주로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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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

1부 2010년 12월 2일 ~ 2011년 1월 9일
2부 2011년 3월 2일 ~ 2011년 4월 10일

- 장소 : 서울대학교 미술관 MoA

※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17시 30분까지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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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티캣
    2010.12.10 1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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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 북북노인
    2010.12.15 10:0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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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를 다녀온 사람입니다
    3번째 사진 보시면 ... 그게 전부 입니다
    실제 가동하는 위주라고요?
    선생님(아마도 게임기 소장인)이 안계셔서 작동이 안된다는 답변을 들었고요
    입장료가 있습니다
    서울대재학생은 무료
    과악구주민은 2,000원
    아님면 3,000원
    진짜 볼거 없어요 무료면 볼까?
    정말 실망입니다 ㅡ.ㅡ
  3. 말보로스카이
    2011.12.22 00:5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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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맹이랑 갈라고 쭈욱 보고 있었는데..
    북북노인(?)분 때문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정보도 좋지만 역시 현장감있는 정보란..
    그래도 매번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링의 상징이 되는 "선"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거대한 벽면에 어떠한 사전 밑작업도 없이 자유롭고 거침없는 붓질로 선을 그려 나간다. 마치 울창한 숲 한 가운데서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처럼, 해링에게는 거대한 공간을 머릿속에 정확히 그릴 수 있는 절대적 공간감이 있었다. 공간에 대한 절대적인 감각으로 그려진 선들은 서로 연결되고 맞닿아 하나의 형상을 만들고 완성된 작품을 이루어낸다...

1) 키스해링 전시회 : 2010년 6월 17일 부터 9월 5일까지 잠실 올림픽공원 소마 미술관... 미술관 출구에서 주차권 확인도장 받으면, 3시간 무료주차 가능하고, 일반 1만2천원... 휴관일은 없고, 수요일만 밤 9시까지... (보통은 저녁 7시까지) --> http://www.har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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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여운 키스해링 마티즈도 전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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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록과 1000피스짜리 퍼즐 구입 (3만원 이상 구입시 포스터 무료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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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렉스 자전거에서 제작한 키스해링 자전거도 절찬리(?) 판매중 (대략 60만원대)
※ 전시관내 사진촬영은 불가함.
※ 제3전시실에서는 키스 해링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도 상영
※ 지마켓에서 키스해링 검색해보면, 8000원짜리 할인티켓 (맥스티켓)을 팔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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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중 가장 맘에 들었던 1985년작 Dog (114.3 x 90.1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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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1986년작 앤디마우스 (96.5 x 96.5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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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단한 키스 해링 약력

1958 : 5월 4일 필라델피아 레딩에서 출생.
1974 : 워싱턴 허시혼 미술관으로의 단체 여행에서 앤디 워홀의 마를린 먼로 연작을 보고 평생 예술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
1976 : 펜실베니아 피츠버그 아이비 전문미술학교 광고 그래픽 과정 입학
1977 : 상업미술가가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2학기만에 중퇴
1978 : 피츠버그 미술공예센터에서 소규모의 드로잉과 회화를 중심으로 첫 전시회를 가지다. 뉴욕으로 이동후 School of Visual Art에 입학.
1980 : SVA 중퇴하고 지하철역 및 거리 벽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
1983 : 뉴욕 Fun 갤러리에서 LA II와 전시회를 가지고 전시 개막식에서 앤디 워홀을 처음 만나다.
1984 : 호주 멜버른 국립 빅토리아 미술관과 시드니 뉴사우스 웨일즈 미술관에서 벽화 제작
1986 : 4월 뉴욕 소호에 또 하나의 예술 활동 영역으로 팝 샵을 열다.
1988 : 일본 동경에 팝 샵을 열다. 에이즈에 감염됨.
1990 : 2월 16일. 31세의 젋은 나이에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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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젊은나이로 요절한 팝아트 수퍼스타, 키스해링展이 2010년 6월 17일(목) 부터 9월 5일(일)까지 올림픽공원내 소마 미술관에서 열립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수요일은 저녁 9시까지) 이고 휴관일은 없습니다. 입장요금은 12000원이고, 키스해링 사후 열리는 전시로는 아시아(?) 최대규모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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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ring.co.kr/


※ 매일경제 소개 기사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0&no=313479
※ 키스해링재단 대표 줄리아 그루엔 인터뷰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0&no=313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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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꾸준히 삼성을 지켜봐왔던 사람이라면, 그들의 악행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ㅡ,.ㅡ;; 주요 미디어 매체의 광고 한번 없이, 오직 입소문만으로 출간 두달만에 10만부를 넘어선 2010년 최고의 베스트셀러... 처음엔 분노하게 되지만, 곧 슬프고 우울해져 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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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p : 삼성비리의 세가지 범주 : 1) 조직적인 비자금 조성 및 탈세와 이를 감추기 위한 회계조작, 2) 경영권 불법 세습 및 이 과정에서 저지른 법정 증거 조작, 3) 정,관,법조,언론계에 대한 광범위한 불법로비

61p : 노전대통령이 부산상고 선배인 이학수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72p : 공무원 사회에서 통하는 말이 있다. "인사에는 장사가 없다"라는 말이다. 공무원은 일을 잘 한다고 해서 월급을 더 받는 게 아니다. 조직 바깥에서 명성을 얻는 것도 아니다. 공무원에 대한 보상은 오직 인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자존심 강한 공무원일수록 인사에 민감한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검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선배 검사는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다음 보직을 걱정했다. 대학입시, 사법입시등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모인 곳이 검찰이다. 그래서 동기가 자기보다 좋은 보직으로 가는 것을 못 견디는 이들이 많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보직보다 동기들의 보직에 더 신경을 쓴다. 동기에에게 뒤쳐질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이다.

99p : 2009년 1월 16일 이루어진 삼성 사장단 인사 --> 삼성은 이날 창사 이래 최대 규모 사장단 물갈이를 했다. 60대 이상 고령 경영자를 뒤로 물리고, 50대 신진을 경영일선에 배치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인사였으나, 실상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위한 기초 작업에 불과했다. 윤종용, 이기태등 조금 억세다 싶은 사람은 다 물러났다. 대신 이건희 일가에 고분고분한 사람들이 대거 발탁됐다. 또, 사상 최대 규모 물갈이 속에서도 삼성 비리에 연루된 이들은 자리를 지키거나 오히려 승진했다. 삼성을 먹여살린 휴대폰 기술자, 반도체 기술자들이 잘려나갈때도 "비자금 기술자"는 끄떡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101p : 삼성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사장들은 회의 시작 몇 시간전부터 물을 마시지 않는다. 소변이 마려울까봐서다. 이건희가 화장실에 가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도 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106p :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 --> 그는 고 이병철 회장 때부터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 천신일의 부친과 고 이병철 회장이 평소에 알던 사이였으며, 이병철이 사망하기 전 자녀들에게 "내가 죽고 나면 천신일을 잘 부탁한다"고 유언했다는 말도 있다. 그래서인지 천신일은 삼성의 해외출장 업무를 독점적으로 대행하는 등 이건희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세중나모 본사 역시 삼성생명 빌딩 19층에 있다.

126p : 이학수와 김인주를 빼놓고 삼성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건희를 수시로 만나 삼성 안팎의 문제를 상의하는 사람은 이학수와 김인주뿐이었다.

127p : 홍석현은 이학수가 자기보다 힘의 우위에 있다는 점을 선선히 인정하고 있다. 홍석현은 이건희의 매제이며 보광그룹 소유주지만, 이학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28p : 김인주는 이건희의 인감도장을 맡아 관리했다. 그래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물론, 충성심도 대단했다. 김인주는 마산고, 서울대 산업공학과, KAIST 산업공학과 대학원을 나와서 제일모직 경리과에서 일했다. 역시 제일모직 경리과 출신 이학수의 천거로, 김인주는 이건희의 재산을 관리하게 됐다.

140p : 노조설립을 막기 위해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 삼성이 치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노동조합 때문에 생기는 비용보다, 노동조합 설립을 막기 위해 치르는 비용이 더 크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42p : 실제로 삼성 사장단은 10억원대의 투자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모든 투자 결정은 비서실에서 한다.

143p :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부회장인 윤종용 역시 구조본 팀장에게 수백만원짜리 양복을 돌리면서 환심을 사려 하곤 했다. 윤종용이 삼성전자의 대표이사였던 시절, 그보다 훨씬 옛날인 사업부장 시절의 실적 부진을 이유로 감봉이라는 징계를 받은 일이 있다. 이학수 실장이 주도한 징계였다. 삼성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간판 경영자 역시 '실'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145p :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결정을 내릴 때 적용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였다. 이건희의 이익이 그것이다. 삼성의 이익과 이건희의 이익이 충돌할 때면, 늘 이건희의 이익이 우선이었다. 구조본 팀장들이 기업 경영자가 아니라 이건희의 가신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래서다.

147p : 이학수는 부산상고 후배인 노무현과 인간적으로도 아주 친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학수를 '학수선배'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149p : 이건희는 종종 시시콜콜한 사항을 지시했다. 이건희의 누이가 경영하는 웨스틴조선호텔의 입구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 서비스 정신이 뛰어나니, 스카우트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적도 있었다. 당시 그 직원을 압구정동에 아파트를 한 채 사주고 데려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여직원은 호텔신라 여직원들을 상대로 특별한 서비스 교육을 했다. 황당한 지시도 있었다. 삼성 냉장고의 월간 판매실적이 LG에 뒤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건희는 반도체와 휴대폰에서 남은 이익을 한 2조원쯤 에어컨이나 냉장고 등 냉공조 사업부에 돌려서 우리나라 전 가정에 삼성 에어컨과 냉장고를 공짜로 줘서 LG가 망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이런 지시는 실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지시가 이행됐다 해도, 회계상으로는 검증할 길이 없다.

156p : 삼성그룹에서 회사의 진짜 속사정은 계열사 관리담당과 구조본 재무팀 운영담당이 아니면 알 수 없었다. 이들은 비자금을 다루는 일을 했다. 반면, 비자금 업무에서 배제된 사장이나 임원들은 이학수와 면담조차 하기 어려웠다. 구조본 재무팀의 위상이 처음부터 이렇게 높았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구조본 재무팀은 IMF 관리체제하에서 철저한 구조조정을 주도하여 그룹 임직원 20만명 가운데 6만명을 정리했다. 인건비만으로 1조원을 절감하여 위기 탈출에 기여했다.

167p : 국가정보원을 능가하는 감사기법을 동원하는 삼성에서도, 감사에서 자유로운 부문이 있다. 반도체, 휴대전화 등 사실상 삼성을 먹여 살리는 사업 부문에 대해서는 감사를 면제하곤 했다. 반도체 부문에 대해서는 10년 동안 감사를 하지 않았었다.

179p : 공직자들이 삼성 수뇌부로부터 거리낌 없이 돈을 받았던 배경에는 "삼성 돈은 안전하다"라는 인식이 있었다. 받아도 탈이 없다는 게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에서 엿보이는 치밀한 이미지가 뇌물을 받는 자들을 안심시켰다. 다른 이유도 있다. 설령 뇌물을 받고 부정을 저지르다 공직에서 쫓겨나도, 삼성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180p : 내가 삼성 법무실에 배치 받은 직후, 김대중 정부가 출범했다. 삼성이 그동안 관리해 온 공직자는 주로 TK계열이었다. 정권교체로 호남 인맥이 부상하자, 삼성 수뇌부는 당황스러워했다. 그래서 광주일고 출신인 내게 거는 기대가 컸다. 내 고교 동문들을 그들에게 소개하도록 종용했다. 한번만 소개해 주면, 나머지는 구조본 임원들이 알아서 했다. 당시 이학수는 아침 모임만 하루 두번씩 가졌다. 이렇게 일년이 지나니, 호남 출신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삼성과 인연을 맺게 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재벌이 주요 인맥을 장악하는 데는 일 년이면 충분했다.

186p : 이재용은 임원들이 챙기는 스톡옵션을 몹시 아까워했다. 임원들의 높은 보수에 대해서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구조본 임원들이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구조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188p : (IMF외환위기때 구조조정에 대한 이야기...) 특이하게도 우량기업이었던 삼성전자에서 예상보다 많은 퇴직 희망자가 나왔는데 대부분 회사가 작성한 희망퇴직자 명단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구조조정에는 성공했지만 많은 우수한 인력들이 정부기관, 대학 등으로 빠져나갔다. 회사가 붙잡고 싶어 하는 우수한 인재일수록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다. 반면, 다른 일자리를 얻기 힘든 사람일수록 회사에서 윗사람에게 아부하며 자리를 지키려 든다. 회사가 임직원을 일회용 소모품처럼 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우수한 인재들이 먼저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당시 사례는 어설픈 구조조정은 회사의 짐을 덜어내기보다 오히려 경쟁력을 깎아낸다는 교훈을 남겼다.

193p : 중앙일보가 삼성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앙일보가 계열 분리를 선언한 뒤에도, 중앙일보 편집국 내부 정보보고 내용이 하루 두번씩 삼성 구조본으로 전달됐다. 이걸 보며, '중앙일보는 언론이라기보다, 삼성을 위해 일하는 사설 정보기관이구나'싶었다. 이처럼 중앙일보가 삼성에 종속돼 있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걸핏하면 삼성에 돈을 요구했다.

198p : 삼성 SDS BW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이재용이 알고 있었는지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재용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공부만 하느라 사건에 대해 몰랐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당시 이재용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를 수시로 확인했다. 재산에 대한 관심이 컸다.



200p : 구조본에서 김인주가 맡은 역할이 이재용을 그룹 총수로 등극시키는 것이었다.

207p : 이학수, 김인주 등 구조본 핵심 인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드러나면 안 된다는게 일종의 원칙이었다. 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른 임원들이 희생돼야 했다.

215p : 에버랜드 재판에 대한 김인주의 관심은 대단했다. 재판에서 질 경우, 김인주의 과제인 경영권 승계 작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인주는 에버랜드 차명주주들을 꾸준히 접대했다. 주로 밥을 사거나 선물을 주는 식이었다. 물론, 다른 구조본 팀장들 역시 관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을 때, 최광해는 내게 "돈으로 막아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허태학, 박노빈이 피고인이 되는 대가로, 그들에게 각각 50억원씩은 줘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재판 당시 허태학은 내 앞에서 6대 종손이 전과자가 된다며 아우성을 쳤다. 그 덕분인지 허태학은 삼성석유화학 사장직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 호텔신라와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에서 주로 근무한 허태학은 석유화학산업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내세울 만한 특기도 없고, 나이도 많은 편이다. 이런 그에게 삼성석유화학 사장직을 오래 맡겼던 것은 이례적인 배려였다.

218p : 삼성 비리와 관련해 이학수는 상대적으로 무리를 덜 하려는 입장이었다. 반면, 김인주는 무리를 무릅쓰는 쪽이었다. 그래서인지 위험한 정보 역시 김인주가 더 많이 알고 있다. 삼성으로서는 이학수와 김인주 가운데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김인주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228p : 이건희 일가의 파티에는 연예인과 클래식 연주자 또는 패션모델등이 동원된다. 가수의 경우,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2~3곡 정도 부르고 3000만원쯤 받아간다. 이건희 집안 파티에 불렀을 때 거절하는 연예인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가수 나훈아씨다. 삼성측에서 아무리 거액을 주겠다고 해도, 나훈아를 초청할 수는 없었다.

231p : 이건희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회의를 아무리 오래 해도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그래서 회의가 있는 날 사장들은 아침부터 국이나 물을 포함한 일체의 수분 섭취를 피한다.

232p : 이건희는 집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해서, 회사로 출근하는 일이 거의 없다. 삼성에서 근무한 7년동안, 이건희가 출근한 것을 딱 두 번 봤다.

233p : 이건희의 집이 있는 이태원동, 한남동 일대에는 리움미술관을 포함해 승지원, 이재용의 집, 딸들인 이부진, 이서현의 집 등이 몰려있다. '그들만의 마을'이 형성돼 있는 셈이다. 리움미술관을 세운 목적 가운데 하나가 '그들만의 마을'과 관계가 있다. 미술관이 이건희 일가의 집들을 보호하는 요새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고가의 미술품이 있는 미술관에 도둑이 드는 것을 막는다는 핑계로, 경비원을 대거 배치했다.

234p : 한남동 리움미술관 바로 아래에 삼성 수뇌부와 그 가족을 위한 치과병원이 있다. 특이한 것은 병원에 수납 창구가 없다는 점이다. 일반인을 상대할 일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235p : 이건희는 모친인 고 박두을여사가 사망한 2000년 1월 3일 미국에 있었다. 그는 모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귀국하지 않았다. 미국의 암 전문 병원인 M.D. 앤더슨 센터에서 폐암 전문의로부터 진찰을 받아야 한다는 게 이유였는데,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삼성 주변에서는 형인 이맹희와 마주치는 게 싫어서 귀국을 꺼린다는 말이 나왔다.

235p : 이건희는 누이가 많다. 이인희, 이숙희, 이순희, 이덕희, 이명희 등. 그런데, 이건희는 누이들과도 사이가 나빴다. 이건희는 "내가 엘리베이터걸과의 사이에서 애를 낳았다는 루머가 있는데, 알고 보니 내 누이가 퍼뜨린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연히 누이들과 사이가 나쁠 수밖에.

238p : 지금까지 이재용은 '적장자 상속'이라는 명분을 업고 독주해 왔다. 그런데 이부진이 이재용의 잠재적 경쟁자로 떠올랐다. 삼성 내부 사정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지만, 이부진은 결코 만만한 성격이 아니다. 그리고 이부진은 평소 호텔신라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곤 했다. 이부진이 2007년 10월 삼성석유화학 지분을 대거 인수해 최대주주가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삼성석유화학은 안정적인 이윤이 보장될 뿐 아니라 비상장 회사다. 후계구도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오빠인 이재용은 이부진을 몹시 못마땅해 한다. 이부진이 갖고 있는 호텔신라에 다른 계열사를 얹어주기는 커녕, 호텔신라조차 못 갖게 하고 싶어 한다. 이건희가 죽으면, 이재용이 고급호텔을 지어서 호텔신라의 영업을 방해하리라는 이야기가 삼성 안팎에서 종종 나왔다. 이학수, 김인주 등 이건희의 가신들은 "이재용-이부진 남매가 화목해야 할텐데" 하며 늘 걱정하곤 했다. 이부진은 아버지 이건희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독한 성격이 특히 닮았다. (게다가 이부진에 대한 이건희의 애정은 각별한 데가 있었다.)

270p :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느라 치르는 부담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계 경제 상황에 따라 기업간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삼성은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노조가 활발한 기업은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인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이 노조 설립 시도를 막기 위해 쓸 수 있는 돈에도 한계가 있다. 비자금을 동원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노조 방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노조를 허용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삼성은 위기에 빠진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강조하면 할수록, 어쩔 수 없이 노조를 허용하게 될 때 받을 충격도 커진다.

272p : 삼성 고위 경영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내가 생각하는 '황제식 경영'의 결정적인 폐해는 따로 있다. '황제'의 눈치를 보느라 경영자가 정상적인 판단력을 키울 수 없다는 점이다.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유능한 경영자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단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탄생한다. 오직 총수의 뜻만을 따르는 구조본이 짜준 매뉴얼대로 움직여 온 경영자에게서 정상적인 판단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삼성 고위 경영자들 입장에서는 평소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다. 총수와 구조본의 뜻을 거스르면서 독자적인 판단을 할 기회도 없거니와, 설령 있다 해도 독자적인 판단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 실패하면 치명적인 결과가 따르고, 성공해도 좋은 소리를 못 듣기 십상이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총수와 구조본의 뜻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이런 문화속에서 뛰어난 경영자가 나오기는 힘들다. 극소수를 제외한 다수 임원은 그저 로봇처럼 움직일 뿐이다.

273p : 삼성에서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 사람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서 회사의 위상을 높인 사람이 아니다. 이건희, 이재용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대개 회사가 저지른 비리의 공범들이다. 삼성에서는 비리 공범이 돼서 수뇌부와 비밀을 나누는 사이가 돼야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반도체 기술자'보다 '비자금 기술자'가 위에 있는 구조인 셈이다.

329p : 경제범죄를 수사할 때는,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다."는 검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일은 검사의 몫이 아니다. 경제정책 당국자가 할 일을 검사가 한다고 해서 경제가 나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검사들이 경제범죄 수사를 게을리 할때, 시장은 혼란에 빠진다고 보는 게 옳다.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반칙이 난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437p : 이건희가 한때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해외 유명 대학에서 수학한 인재들을 영입하도록 다그친 적이 있다. 이렇게 영입된 인재들을 모아 미래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팀을 만들었지만,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영입 인재들의 실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삼성문화가 이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었다. 외국 선진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스카우트한 인재들이 삼성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439p : 윤종용은 이학수보다 선배다. 단지 나이나 경력에서만 선배였던 게 아니다. 삼성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의 성장에 그는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이학수에게 늘 무시당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학수가 삼성 비자금을 다뤘기 때문이다.

448p :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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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빌딩의 강연회장은 꽤 넓직했으나, 책상이 있는 앞자리는 대부분, 한화 빼찌를 단, 양복쟁이들이 주로 차지하고 있었고, 일반인들은 책상없이 빼곡이 의자만 놔둔 뒷쪽에 자리잡았다. 무슨 그룹 행사도 아니고, 어차피 인심쓸 바에는, 좀 더 일반인들을 배려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연이 끝나고 퇴장할때 재미있었던 것은, 사회자가 "안도 타다오 선생께서, 맨 앞자리에 자리잡은 VIP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시고, 퇴장하겠습니다."라고 해서, 좀 황당했는데, 결국, 안도 타다오 선생은 제일 가까이 앉아있는 사람 하나랑만 건성으로 악수하고 바로 퇴장... 사회자 완전 당황... 크...

아무튼, 고수만이 내뿜을 수 있는, 여유로우면서도 특유의 강한 포스 (안도선생 강연장 입장때, 내 옆을 스쳐 걸어가는데, 소름이 쫙~)와 에너지를 느낄수 있어서 밤늦도록 행복했던 하루였다.  

1) 싸움이 없는 곳에는 감동도 없다. --> 인생철학이라고 함.. ㅡ,.ㅡ;;
2)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것 2가지 : 복싱과 개
3)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건축가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4) 옆집사는 목수 아저씨와 함께 자기집을 개조한게 14살때.... 최초의 건축일...
5) 싸움을 하면서도 돈을 벌수 있다는 사실에, 복싱을 하게 됨... --> 흠좀무...
6) 최근 UAE 아부다비의 해양박물관 의뢰 받고 작업중... (프랭크 게리는 구겐하임 미술관, 장누벨은 국립 아부다비 박물관, 자하 하디드는 공연예술센터... 쩝... 완전 환상의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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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베네통 파브리카 커뮤니케이션 연구센터 확장/재건축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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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태리 베니스에서 17세기 건물을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음 --> 이를 위해, 기존 건물앞에 크게 천으로 "공사중-안도 타다오"라고 씌워놨는데, 도요타의 사장이 이걸 보고, 안도 타다오가 베니스의 건물을 산 줄 알았다고 함. --> 안도타다오는 자원절약 차원에서 재건축을 옹호한다고 함.
9) 현재 사무실에 대한 에피소드 --> 어른2, 아이1 용으로 조그만 주택을 짓는 도중, 클라이언트가 쌍둥이를 낳게 되었고, "당신 때문에 쌍둥이를 낳았다. 이 주택은 당신이 사야 된다."고 해서, 구입후, 사무실로 쓰기 시작함. (안도 타다오는 쌍둥이로 태어남...) 자기 공간을 설계하게 되자, 클라이언트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함. 결국 그 집 위로 한 층을 더 올렸고, 옆집도 사서 그 집도 위로 한 층 올렸다. --> 건축은 정지된 것이 아니고 자라나는 것이다.
10) 사무실에 어느날 개가 찾아옴. 그때부터 개를 기르게 되는데, 개 이름을 丹下健三 (단케 겐조)로 지으려 하자, 직원들이 반대함. 이때, 안도 타다오는 젊은 사람들은 대가를 뛰어넘을 마음 가짐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ㅡ,.ㅡ;; 그래서, 코르비지에로 지어버림.
11) 오사카의 산토리 미술관 --> 큰 건물은 이게 처음이라고 함. 산토리 미술관 앞바다에 돌고래 3마리를 기르자고 제안함. (오사카 시장이 반대하다가, 먼저 죽음...), 최근 새로 바뀐 오사카 시장에게 다시 제안함. (돈 많이 든다고 역시 반대하나, 본인의 꿈을 위해 계속 밀어부칠 예정), 안도 타다오는 오사카 시장에게, 오래된 서구식 건물을 헐지 말고, 그 안을 계란 형태의 건축물로 개조하자고 제안했다가, "안도씨, 이상한 짓 좀 하지 마세요."라고 퇴짜맞았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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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안도 타다오의 첫작품인 스미요시 공동주택을 10월 2일부터 도쿄 갤러리 "마"에서 전시한다고 함. --> 스미요시 공동주택은, 살기가 힘든 집이라고 한다.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집을 건축해야 한다는 믿음에 화장실에 가려면 건물에서 나와야 하고, 냉난방이 필요없도록 만들어진 집이라고 설명했다. 집주인 보고 추우면 옷을 한 겹 더 입고, 더 추우면 옷을 한 겹 더 입고, 그래도 추우면 옆에 있는 체육관에 가서 운동하라고 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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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나오시마 미술관 때문에 주변도 많이 발전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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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간은 미완의 상태로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15) 오모테산도 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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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미술가 하나가 아주 좁은 대지를 갖고 있었는데, 여기에 천장이 아주 높은 아틀리에와 갤러리, 그리고 아주 큰 욕조를 갖춘 집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예산이 겨우, 2억5천 정도밖에 안되서, 직원들은 전부 반대했으나, 안도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함. 아무튼, 천장이 높은 아틀리에와 갤러리는 만들었으나, 이 미술가는 큰 욕조는 어디 있냐며, 욕조도 만들어 놓으라고 했다. 안도 타다오는 고심 끝에 근처에 있는 대중 목욕탕을 가라고 했다는...
17) 미드타운 : 이세이 미야케 미술관 --> 16mm 철판 1장으로 지붕을 만들었다고 함.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이것을 보고, 이태리에 똑같은 건물을 지어달라고 했는데, 거절함. 이태리에는 일본만큼 뛰어난 시공기술자가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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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케부쿠로 근처에 짓고 있는 지하철역 --> 지하 30미터에 거대한 오픝구조로 짓고 있음. 환기와 냉방을 자연적으로 해결함.
19) 2016년 도쿄 올림픽 유치를 위해, 1964년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을 재활용하고자 함.
20) 우미노모리 (바다의 숲) 프로젝트 --> 모금으로, 도쿄 근처의 쓰레기산을 녹지화 하려는 프로젝트, 2007년부터 시작하였고, 10년내 완료할 예정 --> 이 강연 끝나고 모금을 하고 싶었는데, 한화측에서 안된다고 했다고 함. 한국은 역시 폐쇄적이라며 궁시렁...
21) 현재 U2 보노의 자택 설계중...
22) 3가지 꿈 --> 모든 초등학교 운동장을 잔디로 덮고 싶다. 전봇대를 전부 뽑아, 전선을 땅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고 싶다. 철도길 주변을 전부 녹지화 하고 싶다. (이미 시작)
23) 평론가들이 말하는 안도 타다오 건축의 핵심은 빛과 노출콘크리트라고 하는데, 본인 생각은 어떠한가? --> 건물에 들어갔을때, 건축물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중요하다.
24) 설계 할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 --> 꿈을 따라가라.
25) 소싯적 건축여행당시, 로마 판테온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가장 좋은 건축물이라고 생각함.
26) 슬럼프에 대해서 : 나는 항상 슬럼프다. 빠져나온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럴 때에는 옛 그리스, 로마 건축물 사진첩을 많이 본다.
27) 젊은 사람들을 위한 조언 : 항상 책임감과 긴장감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항상 현장을 둘러보고, 고객을 만나서 그들의 요구사항을 긴장하며 들어야 한다고 함.
28) 긴장하지 않고, 시간만 때우려는 직장인 근성을 버려라. (자기가 서울에 와 있는 동안 직원들은 놀고 있을거라고 농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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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인
    2008.09.22 22: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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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있었어요~~!!
    전쫌 일찍가서 그래도 책상있는 자리에 앉았는데...^^
  2. 2008.09.23 20:4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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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있었는데,,
    정말 멋진 강연이었고,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었죠...
  3. 無異
    2008.09.24 12:5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vip건 vvip건 강연을 들으러 왔으면 미리 앉아있는게 예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식순에 따라 연자와 함께 한화 관계자들이 박수를 받으며 홀을 가로질러 떼지어 입장한다는 발상 자체가 웃겼습니다.

    이번에 타다오가 한화 연수원을 설계해준것 같은데
    노출콘크리트가 청계산 공사장 이미지랑 잘 맞아 떨어지는것 같습니다.
  4. 서혁준
    2008.09.24 13:5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한화 자체 행사느낌이 좀 강하긴 했지만

    역시 뽀스가. 느껴지는 안도다다오 였습니다.

    안도 "선생님" 이란 호칭은 아주 뭔가 미묘하게 좀 그런 느낌이었어요

    좀 더 솔직한 이야기들이 듣고 싶기도 했는데 그런건 약간 아쉬운 느낌이고


    한편으로 . . 우리나라에도 세계급 스타가 나오길 바래봅니다.
  5. 2008.09.25 10:5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가고 싶었는데..추첨에서 떨어졌어요...니오시마 가볼까 하는데..역시 안도 타다오...글 잘 읽었습니다 ^^
  6. 은영
    2008.10.01 09:3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음.저두 가고 싶었는데, 저두 추첨에서 떨어졌어요. 대신 여기서 리뷰를 볼수 있어서 좋네요. 리뷰 감사해요^^
  7. 김한경
    2008.10.07 07:1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도 갔었어요^^
    저는 그분의 삶에 대한 방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이상의 현실적이고 명쾌한 해답을 얻고 나왔어요^^
    참 좋은 시간이었던가 같아요^.~
  8. 우산장수
    2008.10.28 08:2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재건축이 아니라 리모델링일겁니다. 자원절약하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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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sheet을 써서 만든 시계 커튼... 시계뿐만이 아니라, 좀더 다양한 색깔의 재미있는 패턴도 생각해 볼수 있을 듯.... (터키에서 태어난 Soner Ozenc은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런던에 있는 센트럴 세인 마틴스 예술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그는 런던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에서 상품 디자인 컨설팅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06년 런던 디자이너스 블럭에 첫선을 보였고, 요즘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하는 디자인 메이드 2007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Soner Ozenc은 RazorLAB Ltd 설립에 참여했다. 이 회사는 iTattoo라는 이름으로 레이저 커팅, 인그레이빙(engraving)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랩탑이나 iPod같은 휴대용 기기에 독특하고 예술적인 문양을 새겨, 자신만의 개성을 자랑하는 커스텀 제품으로 변신시키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 http://www.razorlab.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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