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폐를 총알로 사용하는 게이즈 머니건




2) 인류를 달과 화성으로 운반해 줄 스페이스X의 차세대 로켓 겸 우주선 ‘스타쉽'의 실제 모습이 공개됐다.  1월 11일, 민간 우주비행회사 스페이스X의 CEO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트위터에 "스타십 테스트 비행 로켓이 막 조립을 마쳤다. 이 사진은 렌더링이 아닌 실제"라며 사진을 공개했다. 스타쉽은 현재 미국 텍사스주(州) 보카치카 해변에 있는 스페이스X 발사기지에서 제작됐으며 3~4월 경 시험 발사될 예정이다.




3) 골판지로 만드는 AK47 공작 (탄창까지 달려있다.)




4) MADE.COM: 주문만 받고 연2천억의 매출을 올리는 영국의 가구회사 (TTimes)




5) 코나 아이언맨 에디션 1700대 한정 출시!!! (기사1 / 기사2)





6)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택시




7) 홀로그램 AR내비게이션: 기존의 ‘헤드업 디스플레이(Head Up Display)’가 차량 대시보드 위에 설치된 LCD 화면을 통해 반사된 영상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반면, 홀로그램 AR 내비게이션은 영상용 레이저를 전면 유리에 직접 투영한다. 덕분에 화면 유리 전체에 영상을 표시할 수 있을 정도로 크기 제약이 거의 없다. 실제로 이번 제네시스 G80에 적용된 홀로그램 AR 내비게이션은 전면 유리에 가로 310mm, 세로 130mm의 영상을 투영하지만 실제 운전자 눈에는 가로 3,150mm, 세로 1,310mm로 보인다. (기사보기)



8) 현대 엘리베이트 컨셉 공개 (CES 2019)





9) MS 서피스 스튜디오보다 100만원 더 저렴한 27인치 4K 터치스크린 레노버 요가 A940 - SSD와 RAM 교체가능, USB타입의 듀얼 다이얼 제공, ($2350부터 시작)







10) LG Signature OLED 롤러블 TV (CES 2019 발표, 올해 65인치부터 양산 예정)




11) 2019 수퍼볼 광고 모음 (Ads of the world)




12) 샴페인을 물총처럼 사용하는 버블리 블라스터




13)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2 공개!


-레이저와 거울을 활용한 새로운 MEMS 디스플레이를 사용해 시야각이 두 배 정도 넓어졌다. 

-8포인트 글자를 읽을 수 있는 2K에 버금가는 해상도 

-가볍고 편해진 착용감 

-새로운 Azure 키넥트 센서 (더욱 정밀해진 공간 인식과 손가락 동작 인식) 

-ARM 프로세서 (홀로렌즈 1은 인텔 프로세서 사용) 

-안구 추적 카메라 

-영상통화용 8MP 전면 카메라 

-USB-C 충전용 단자

-가격: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3,500 USD에 예약판매 진행중 (2019년 내 배송 예정)






14) 한국 디자인의 빛나는 성취 - 유영규 (월간디자인 19년 3월호)


하라 겐야는 유영규를 일컬어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고품질의 디자인을 탄생시키는 데 일류인 자가 선보일 수 있는 재능”이라 말했고, 황성걸 홍익대학교 교수는 “한국에서 유일무이하게 클라이언트의 언어가 아닌 자신의 언어로 디자인한다”라 했다. 과한 상찬이 아닌가 싶었는데 인터뷰를 하고 보니 수긍이 간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한국 디자이너 고유의 언어를 100% 받아들인 사례가 있었던가 생각하면, 유영규를 두고 말한 그들의 표현은 정확하다. 원대한 비전을 가진 부지런한 디자이너가 순간순간 성심을 다하여 기어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 시간이 20여 년 흘렀다. 고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유영규는 한국 디자인계의 빛나는 성취다. 디자이너로서 유영규는 두 가지 직업으로 살았다. 직장인과 독립 스튜디오 대표. 직장인으로서의 마지막 이력은 마이크로소프트(MS) 본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타임>이 2015년 올해의 제품으로 선정한 홀로렌즈HoloLens와 엑스박스Xbox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 개발에 참여했고 2017년 퇴사했다. 현재는 시애틀과 서울을 오가며 서울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클라우드앤코의 일에 집중한다. 일본 월트 디즈니, 핀란드 슈퍼셀 등 그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브랜드가 이메일로 연락하여 이렇게 말했다. “당신 스타일로 해달라.”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갈고 닦아온 시간이 궁금하여 연남동 클라우드앤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15) 현대차, 송창현 전 네이버 CTO영입,모빌리티법인 CEO맡긴다 (피치원)


지난 1월 돌연 사임했던 세계적인 슈퍼개발자인 송창현(52) 전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결국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품에 안겼다. 현기차그룹은 그동안 물밑작업을 진행해온 송창현 전 네이버 CTO에 대한 영입작업을 지난 1월말로 마무리하고 5월께 자율주행기반 모빌리티개발을 전담하는 별도법인에 대규모 투자키로 하고 해당법인을 송창현 CEO체제로 운영키로 최종 결정한 것으로 3월 3일 밝혀졌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송창현 전 CTO를 내부 그룹계열 기술개발파트에 직접 영입하는 방식대신 현대자동차그룹이 투자하는 기술회사 CEO를 맡기는 방안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직접 대규모 투자하게될 모빌리티관련 신생회사는 딥러닝, 인공지능(AI)기반 기술을 집중 개발할 계획으로 알려졌으며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핵심기술도 개발하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일단 송창현 전 CTO가 주도적으로 별도 회사를 설립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송창현 CTO에 대한 거취가 확정되는 대로 이르면 5월께 대규모 투자를 직접 하기로 했다. 모빌리티개발을 주도할 해당법인의 경우 정의선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현대자동차그룹이 대략 500억원대 전후로 투자할 계획으로 알려졌으며 국내 인공지능 및 딥러닝관련 핵심 개발자를 대대적으로 스카우트한다는 전략이다. 출범 초기 인력만해도 핵심개발자만 100명에 육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기차그룹과 송창현 전 CTO는 이를위해 최근 딥러닝 및 인공지능, 자율주행관련 핵심개발자를 집중적으로 영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송 전 CTO를 별도 투자하는 회사를 통해 전격 스카우트한 것은 네이버 자율주행 관련 기술 가운데 도로지도 및 물체의 인식, 상황 판단 등 자율주행 중 핵심적인 두뇌 역할을 하는 인지관련 기술력이 국내 최고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송창현 CTO는 미 퍼듀대에서 컴퓨터사이언스 전공후 미 디지털이큅먼트사 소프트웨어엔지니어를 거쳐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세계적 IT회사 핵심 개발자로 일해온 슈퍼개발자중 한명으로, 거쳐 2008년 네이버에 입사, 네이버랩스 대표겸 네이버 CTO를 겸해온바 있다.



16) 이것은 비행기인가, 열차인가… "쌩" 날아가는 것보다 빠르다 '하이퍼루프' (조선비즈)


하이퍼루프 열차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우주개발 업체 스페이스X와 전기차 회사 테슬라를 창업해 '미래의 설계자'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다. 2013년 머스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LA를 잇는 하이퍼루프 열차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누구든 개발에 나설 것을 권유했다. 이후 2016년 5월 미국의 '하이퍼루프원'이라는 기업이 네바다주 사막에서 첫 시험 주행에 성공했다. 버진그룹을 이끄는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하이퍼루프원을 2017년 인수해 버진하이퍼루프원으로 개칭한 뒤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4억3000만유로(약 5500억원)를 들여 하이퍼루프 연구센터를 짓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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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점에 가면, "플래툰 (출판사 호비스트)"이라는 잡지를 자주 보는데, 무척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대부분이 소형화기, 탱크, 자주포, 특수부대, 전쟁사 등에 대한 얘기들인데, 군복무 시절에는 그렇게도 진절머리나던 것들이 예비군까지 끝이 난 지금,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이 화보집은 (책이라기 보다 화보집에 가까움...) 최근 서점을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는데, 수십년간 세계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소총 (현재까지의 보급대수가 거의 억단위에 이른다고 추측하고 있음.)이라는 러시아의 칼라시니코프 돌격 소총 (AK소총)에 대한 내용들이 100페이지에 걸쳐 소개되어 있다.

개인적 느낌은, 호비스트의 플래툰 잡지에서 칼라시니코프 관련 내용들만 추린 후, 한권으로 엮은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한데, AK소총의 오리지날 디자이너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일생과 인터뷰에 더 많은 내용을 할애하고, 실제 전쟁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M16 패밀리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분석, 북한제 배배리에이션 AK 씨리즈 소개 (동유럽과 중국제는 소개되어 있더만, 북한제만 빠져있네...) 등등이 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다지 관련이 없어보이는 러시아 특수 부대 내용들은 다 들어내고... ㅡ,.ㅡ;;)

그래도, 칼라시니코프 브랜드를 사용하는 손목시계(?) 소개 부분이나, 중고 AK소총들을 동유럽이나 중국에서 수입해서, 여러가지로 개조하는 미국의 커스텀 건스미스 업체 소개부분은 나름 훌륭했다고 본다.

수많은 AK씨리즈의 변종중에, 제일 독특한 모델은 1993년 최초 공개된 PP-19 Bizon이라는 SMG모델인데, 놀랍게도, 칼라시니코프의 아들 빅토르가 디자인한 소총으로, 독특한 튜브형태의 나선형 탄창을 채용하였다.

※ 재미있는 사실 한가지 : 1994년, 미하일 티모셰비치 칼라시니코프가 75세가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에 의해 육군소장으로 임명받게 된다. 러시아군의 정년은 60세지만, 2007년도에도 칼라시니코프는 특례를 인정받아 러시아육군 최고령의 장군으로 현역의 자리에 앉아있다. (현재 계급은 중장이고,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러시아 무기생산의 중심지인 우랄 공화국 이즈베스크시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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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사실 두가지 : 현재 칼라시니코프 재단은 러시아 정부의 허가 아래 무기 이외의 칼라시니코프 브랜드를 가진 상품의 개발,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칼라시니코프의 자서전, 사진집, 보드카, 손목시계, 에어소프트건등을 판매하고 있다.

※ 칼라시니코프의 명언 : 복잡한 것은 불필요한 것이고, 필요한 것은 모두 단순한 것이다...

★★★☆☆


1) 어떠한 어린시절을 보냈는가?

1919년 11월 10일, 시베리아 알타이 지방의 쿠루야 마을의 농가에서 18명 형제 중 한명으로 태어났다. 어렸을때부터 기계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졸라 시계를 얻어 분해조립등을 하며 놀았었다. 14살에는 고장난 브라우닝 권총을 손에 넣는데 성공하여 부모님과 주변에는 비밀리에 그것을 수리하는 데 정신이 팔렸었다. 그때의 경험이 내가 총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 같다. 1926년 나는 지역 중학교를 졸업한후 시베리아 철도의 알마아타 지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매일 철도를 통해 운송되는 전차들을 보며 전차병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고, 전차병이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시 상관에게 부탁하여 전차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읽을 수 있었던 많은 책의 도움으로 기계설계의 기본을 익힐 수 있었고 그 당시 전차가 쏘는 포탄의 탄수를 계측하는 기계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 발명은 좋은 평가를 받게 되어 붉은 군대 사령관인 게오르그 쥬코프 장군과 만날 수 있었고, 그 발명의 설명을 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지게 되었다. 영광스럽게도 쥬코프 장군에게 칭찬을 받은 나는 1939년 말 개량형 계측기를 만들기 위해 레닌그라드에 갈 수 있었다. 아쉽게도 완성은 못했지만 말이다. 1941년 독일이 불가침 조약을 일방적으로 깨고 발바롯사 작전을 발동하여 소련을 침공해 왔다. 나는 그들과 싸우기 위해 전차병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많은 전투를 거치며 훈장을 수여받았다.

2) 총을 만들게 된 계기는?
 
전차병으로서 전쟁에 참가했지만, 1941년 10월 키에프 근처의 브리얀스크 전투에 참가했을때 부상을 입고 말았다. 당시 나는 전차장으로서 전투이동 중 해치를 열고 몸을 바깥에 노출시키고 있었는데 독일군 전차가 쏜 포탄이 전방에서 교전 중이던 아군 전차에 명중하면서 그 아군전차의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은 것이다. 나는 그대로 후방에 있는 야전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뒤 요양은 할 수 있었지만, 전장에서 봤던 참혹한 광경과 전사한 전우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독일군이 쓰던 무기에 대한 생각도 종종 떠올랐다.

당시 많은 독일군 병사들이 MP40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자동사격이 가능한 이 기관단총 앞에서 단발식 소총 만으로 무장한 소련군 병사들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몸이 낫기를 기다리면서 소련군 병사들을 위한 기관단총 설계를 시작하였다. 단순하지만 우수한, 어떠한 소련병사라도 사용할 수 있고, 독일군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그런 총을 설계하고 싶었다.

1942년 나는 새로운 기관단총의 설계도를 가지고 알마아타의 카자흐스탄 공산당중앙위원회에 출두하여 시작품 제작 허가를 신청하였다. 허가를 받아 시작품을 만들 수는 있었지만 이미 생산이 시작된 수다예프의 PPS 씨리즈기관총이 있었고, PPS 기관단총을 대체할만한 부분은 없었기에 생산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소화기 분야의 거장인 A.A.브라고로노라포프에게 설계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소련 국영 조병창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제2차대전이 끝나면서 새로운 개념의 총을 개발할 것을 명령받게 되었다. 제2차대전 중 독일이 도입한 중거리전투에서의 유용성을 증명한 새로운 개념의 소총과 신형탄 (소총과 권총의 중간정도 위력을 가진 탄환). 이것은 현재 어느나라 군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돌격소총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신형 소총을 개념을 주목한 소련군부는 수다예프, 시모노프 등 유명한 총기 디자이너들과 함께 나에게도 개발계획에 참가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1946년, 나는 후에 소련군 제식소총이 되는 AK47 돌격소총의 설꼐를 완성하게 된다.

이 설계도에 완성에는 많은 사람들이 협력해주었다. 돌격소총과 같이 복잡한 작동구조를 보여주는 공업제품을 한 사람이 단 시간에 개발, 완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특히 방아쇠 작동구조의 개발과정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그 외에도 당시 항공성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나의 모친도 설계계획에 협력해 주었다. 시험제작된 돌격소총을 소련군에 의해 각종 시험에 투입되었다. 장시간 연사한 후의 불발이나 부품파손등의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때마다 계속해서 개량과 제작이 반복되었다. 10번째의 재설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최종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1947년 개량시작형 돌격소총이 소련군의 부대테스트에 제출되었다. 야전에서의 실전적인 각종 테스트 이후 1949년 내가 설계, 개발한 돌격소총은 소련군 제식 소총으로서 채용된다. 제식명은 "7.62mm 아브토마트 칼라시니코바(AK)"였다. 이후 많은 개량형과 배리에이션 모델이 나오면서 구분을 위해 "AK47"이라 부르게 된다.

AK47의 완성 후에도 개량작업은 계속 되었다. 1959년 리시버를 프레스 가공으로 성형한 근대화 모델인 "AKM"이 완성되어 소련군 제식소총으로 채택된다. 또한 분대기관총 RPK(루시노이 플레멧 칼라시니코바), 그 개량형인 PKM도 완성되었다. 나는 1974년에 AKM을 5.45mm로 개량하여 소구경화한 AK-74를 개발했고 그 이후에도 AK-74의 카빈 모델인 AKS-74U, 최신판 나토탄도 사용할 수 있는 AK100 씨리즈등을 완성하였다. 지금도 소련 병기공장에서 민영화후 독립한 이즈마슈사에서 최신형 AK 돌격소총의 개량과 개발을 총기디자이너의 총괄자로서 현역에서 활동중이다.



3) 칼라시니코프 소총이 이처럼 많이 만들어지고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AK성공의 핵심은 어떤 상황, 환경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신뢰성이다. 최초의 모델로부터 50년 이상 사용되면서 무수한 개량이 가해져 생산성이 향상되었다. 현재 이즈마슈사의 생산라인이 풀가동할 경우 최신형 AK를 하루에 5000정 가량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4) AK를 설계할 당시 중점으로 둔 부분은?

가스압 작동식 회전 노리쇠 방식으로 하여 소형에 경량이면서 내구력도 갖춘 자동소총을 설계한다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개발 당시 전문교육,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붉은 군대의 병사들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총을 설계하였다. 혹독한 환경에서의 사용을 가정하여 단순하고 충실한 작동구조를 채용했기 때문에 군용 소총으로서 최우선으로 치고 있는 명중률과 신뢰성을 높힐 수 있었다.

5) 최초에 설계한 총에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총의 제조경쟁은 정말 전쟁이라 불리울만큼 치열하고, 총기 디자이너는 언제나 그룹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명의 전문가가 협력하여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이곳 이즈베스크의 병기공장에 처음 왔을때, 젊은 부사관에 지나지 않았던 나를 당시 공장장은 마치 자기 아들을 대하듯 따뜻하게 대해 주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협력할 수 있었다. 그후 나는 주욱 이즈베스크에서 지내게 되었다.

6) AK는 마치 테러리스트가 쓰는 총의 대명사와 같이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그 점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아왔다. 나는 독일로부터 나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설계한 아브토마트를, 테러리스트들이 어떠한 의도나 취향을 가지고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설계한 아브토마트가 그들이 처한 거친 사용환경에서도 충실하게 동작하는, 신뢰성이 높은 총이기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7) AK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후 본인의 생활은 어떠했는가? 소련이 러시아가 된 이후 자신에게는 어떤 커다란 변화가 있었는가?

나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나는 AK-47의 완성 4년후 1951년에 이곳 이즈베스크에 와서 반세기 이상 계속 이 마을에 살고 있다. 소련병기 공업기기부문 주임설계자로서, 그것이 민영화된 이후에도 AK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는 이즈마슈사의 설계책임자다. 러시아에서는 군인의 정년은 60세이지만 특별대우로서 지금도 현역 육군 중장의 계급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하고 있다.

8) AK가 세계 곳곳의 전투에서 사용되고 있는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총을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소련정부는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소련은 냉전시대 당시 배후공작으로 아프리카 등 많은 제3세계 분쟁지역에 나의 설계를 이용한 총기를 제공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유감스럽다.

9) 현재의 세계정세에 있어서 테러리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테러리즘과 테러리스트의 행동은 나의 이해와 사상으론 이해할 수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다.

10) 미국을 대표하는 돌격소총인 M-16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M-16은 좋은 디자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견도 스마트하며 나의 아브토마트에게는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총이며, 내부 작동구조에 흥미로운 점이 많다. 설계자인 스토너씨와도 미국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11) 자신이 만든 총에 이름만 남았을 뿐 자신에게는 금전적 보상이 없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외국에서는 나에 대해 어려운 생활을 하는 무기설계자로 알려지고 있는 모양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AK47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스탈린 훈장을 수여받았다. 스탈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으 정도의 명예와 행목이 어디 있을까. 나는 내가 한 일로 조국 러시아로부터 20개의 훈장을 받았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게다가 소련 시절의 급료는 월 900 루블로서 공장노동자의 4배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그 당시 조병창의 책임자보다 급료가 좋았다. 당시 소련 국산 최고급차인 볼가가 9000루블로 살수 있을 시대였다. 게다가 1975년부터 살고 있는 이 아파트와 다챠(별장)에서 주말을 보내는 등 예전부터 지금까지 나는 무척 즐겁게 살고 있다.

12) 현재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

현재는 민영화된 이즈마슈사 (구 이즈베스크 발동기공장)에 주4일, 수석 디자이너로서 소화기 디자인 섹션에서 일하고 있다. AK 씨리즈 최신 버져닌 100 씨리즈의 개량, 신형 모델의 개발이 현재의 주된 업무이다. 또한 내 외아들 빅토르 역시 같은 회사에서 35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탄창이 원통형인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기관총 비존 시리즈의 개발을 성공시켰다. 총기 디자이너로서 기관단총에 매우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총도 제법 괜찮은 총이다. 주말은 대부분 별장에서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편인데 특히 사냥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필요이상의 살상은 금하고 있다. 즐긴다고는 해도 먹기위한 만큼만 사냥을 위해 쓸 뿐이다. (필자주 : 이 인터뷰 이후에도 러시아군 현역 대위와 딸인 레노와 함께 위장무늬 사냥 코트를 입고 러시아제 소형 4륜구동차 라다 니바에 타고 별장으로 향했다.)

13) 칼라시니코프 재단 설립의 동기는? (여기서부터는 칼라시니코프씨의 손자 이골씨가 대답해 주었다. 그는 칼라시니코프씨의 아파트에서 태어나 현재도 칼라시니코프씨와 생활을 함께 하며, 재단의 부사장을 맡고 있다.)

칼라시니코프 재단은 2년전 조부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위대한 총기 디자이너로서의 업적과 그 의미를 기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재단의 설립 멤버는 7명으로, 설립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사장은 딸인 레노 크라스노브스키, 부사장이 나 이골 크라스노브스키이다. 칼라시니코프 재단 설립의 목적은 러시아가 낳은 천재 총기 디자이너 칼라시니코프를 기리고 다음세대의 총기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것이다.

14) 이 재단에서의 기금, 박물관에 의한 수익을 통해 어떠한 성과를 기대하고 있는가?

현재 칼라시니코프 재단은 러시아 정부의 허가 아래 무기 이외의 칼라시니코프 브랜드를 가진 상품의 개발,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칼라시니코프 브랜드를 통해 자서전, 사진집, 보드카, 손목시계, 프랑스의 사이버건사를 통해 AK47의 에어소프트건등을 판매하고 있다. 칼라시니코프 박물관은 우드룸 공화국 문화성의 관리 하에 설립되었으며 수도 이즈베스크시의 공공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입장료 등의 박물관 수익은 우드룸 공화국이 관리하고 있으며 우리들은 그 자금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 칼라시니코프 탄생 85주년을 맞은 기념행사에서 우리들은 협력관계에 의해 칼라시니코프 박물관이 일반공개되는 12월부터 사무실을 칼라시니코프 박물관내로 이전하여 업무를 보고 있다. 칼라시니코프의 업적과 역사, 현재의 자료를 DB화하며 러시아는 물론 세계각국의 사람들에게 칼라시니코프 비즈니스를 널리 알릴 예정이다.  지금까지 많은 분쟁지역에서 사용된 AK씨리즈 덕분에 테러리스트의 총, 내전을 위한 총이라는 오명을 사게 되어 칼라시니코프씨에게 그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칼라시니코프씨는 자신의 신념과 애국심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을 뿐이다. 그 결과 저가격에 우수한 성능을 가진 돌격소총이 만들어졌고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그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널리 사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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