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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고서, 여기저기 대충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1993년에 출판된 "Game over: How Nintendo conquer the world" 라는 책을 15년이 지난 이제서야 번역한 책이라니... 쉽게 말해, wii와 NDS의 흥행성공에 편승해 급조된 교묘한 떡밥인셈... 하지만, 속았다는 기분은 잠시...

이 책에는 닌텐도 설립 초기의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들부터 야마우치 히로시의 사위 아라카와를 선봉장으로 하는 미국 시장 진출, 영화사 MCA가 제기한 게임 <동키콩>과 영화 "킹콩"의 저작권 관련 소송, 92년 아타리 게임즈와의 법정소송 (알고보면, 아타리 게임즈를 인수한 일본의 남코가 벌인 사건...)에서의 기적같은 승리, 지금은 사라져버린 세가의 활약(최초의 16비트 게임기 출시와 소닉, 수왕기, 원더보이등의 명작게임 출시), 90년대 초 엄청난 용량의 CD롬을 통해 색다른(?) 멀티미디어 시장을 열어보려 노력했었던 필립스, 소니, 닌텐도간의 처절한(?) 암투, 미국시장 평정후, 유럽 시장 공략 (분량은 좀 작음...)까지의 상세한 기록들이 마치 무협(?)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기술되어 있다.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꽤 방대한 분량이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히며, 놀런 부슈넬의 전설적인 회사 아타리로 (스티브잡스도 아타리의 초기 직원들 중 한명이었음.)부터 시작되는 추억의 80, 90년대 비디오 게임 인더스트리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 창업주였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무척이나 괴팍하고 자기 멋대로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마치 스티브 잡스처럼...), 게임기 만드는 회사의 회장이면서, 한번도 게임을 해본적이 없고, 본격적인 게임기 사업에 몰입하기전에는, 즉석쌀밥, 택시사업, 심지어 러브호텔사업까지도 했었다고... 가정에서도 거의 폭군 분위기...

- 닌텐도는 이미 1988년에, 8비트 게임기 <패미컴>에 모뎀을 연결하여, 주식거래, 홈뱅킹서비스, 복권구입등의 네트워크 사업의 성공을 위해 엄청난 노력과 다양한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실패...)

- 동키콩, 수퍼마리오, 젤다의 전설등 닌텐도 게임 개발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가 산업디자인과 출신의 디자이너였다는 사실... ㅡ,.ㅡ;;

- 2008년 닌텐도의 실적 : (원화로) 매출 약 20조원, 영업이익 약 8조원... 직원은 겨우 5233명...

★★★★☆



12p : 성공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그 결과이다. (야마우치 히로시)

13p : 게임기는 어린이들에게 어디서도 결코 얻을 수 없는 힘을 부여했다. 게임을 하다가 실수를 하더라도 안심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중요치 않았다. 어린이들은 새로운 경기장을 발견한 것이다.

15p : 1990년대 초반에 닌텐도가 미국에서 기록한 매출액은 미국의 모든 영화사의 매출액을 합친 것에 필적했으며 이익률은 각사보다 훨씬 더 높았다. 더욱이 3대 TV방송국의 이익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15p : "파이낸션 타임즈"는 2008년 9월 15일자 보도에서 2008년 닌텐도의 1인당 이익금을 160만달러로 예상했다. 동 신문은 골드만 삭스 (124만달러), 구글 (62만 6000달러)등 세계적인 초우량기업을 웃도는 수준이라면서, 그러한 수익이 가능한 근거로 철저한 아웃소싱과 낮은 봉급 수준을 예로 들었다. 2008년 3월 현재 닌텐도의 직원수는 제휴직원을 포함하여 5133명이다.

22p : 과거 몇 세대에 걸쳐 미국 어린이들은 미키마우스의 철학에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공정하게 놀이를 즐기고 열심히 공부하며 누구와도 잘 어울려요." 하지만 마리오는 다른 가치관을 전파했다. "인생은 죽거나 죽이거나 양자간에 하나다.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당신이 믿을 것은 당신 자신밖에 없다."

29p : 야마우치는 수제 카드를 제작, 판매하기 위해 1889년에 닌텐도 곳파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그가 창업한 회사의 명칭으로 선택한 任天堂의 의미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의 뜻에 맡겨라"였다.

37p : 닌텐도의 주식을 오사카 증권거래소와 교토의 증권거래소 제2부에 상장하면서 기업공개를 실행하고 첫 출시한 상품은 한끼용 즉석쌀밥이었다. 다음으로 한시간 단위로 대실하는 객실을 구비한 러브호텔이었다. (이 러브 호텔의 단골고객들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야마우치 자신이었다고 한다. 그의 엽색행각은 유명했는데, 그의 아내조차 말릴 수 없었다고... ㅡ,.ㅡ;;) 또한, 택시회사도 설립하여 성공을 거둔적이 있다.

48p : 닌텐도의 장난감 발명가 요코이 군페이는 "예술적인 경지의 기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값싼 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완성된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닌텐도의 기술 정책이다."고 말했다.

51p : 오락실용 동전투입식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게임기에 동전을 투입하자마자 게임에 완전히 몰두해야 한다. 그들의 오감을 일순간에 사로잡아 게임에 "열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게이머의 모든 의식을 완전히 사로잡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목표를 실현하는 데는 두 가지 핵심요소가 필요한데, 우선은 영상의 속도감을 높이는 것이고, 그와 함께 지능을 요하는 도전의식도 배합 할 필요가 있었다.

57p : 1983년 5월, 쇼신카이 완구 도매상협회에서 야마우치는 이렇게 말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를 팔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드웨어만 팔아서는 큰 수익을 올릴 가망이 없으며,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엄청난 돈을 벌게 될 것입니다." --> 야마우치는 제한된 시장을 보유한 하드웨어 상품에서 무한한 시장을 보유한 소프트웨어 상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닌텐도가 가야 할 길임을 알았다.

63p : 야마우치는 닌텐도가 비디오게임 예술가들의 천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굉장한 비디오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봤다.

63p : 냉정하고 거만하기로 소문난 야마우치의 평판은 닌텐도의 유명세와 더불어 높아졌다. 그는 업계에서 무자비한 골리앗 같은 자신의 지위를 마음껏 누렸다.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들이나 회사들을 윽박지르기로 이미 악명이 높았으며, 자신이 만든 규칙들에 따라 일을 추진했고, (대접받는데 익숙한 관료들의 분노를 살수도 있는) 정치활동을 거부했다.

64p : 야마우치는 평생 한 번도 비디오 게임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즐겨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고 한다.

65p : 직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야마우치의 판단들은 자신의 기분에 좌우됐고 변덕스러웠으며, 그 무자비함은 당하는 직원들에게 상당한 좌절과 분노를 유발할 정도였다고 한다.

66p : 야마우치는 일 년간 뒤떨어지는 게임 여러개를 생산하기보다는 성공할 게임 한 두개를 생산하는 데 모든 인력과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믿었다.

73p : 1970년에 미야모토 시게루는 가나자와 시립대학의 산업미술공예학과에 입학했다. --> 게임개발의 신으로 추앙받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산업디자인과 출신이라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79p : 미야모토 시게루가 개발하여 1981년 출시한 "동키콩"은 닌텐도 최초의 엄청난 성공작이 되었다.

87p : 미야모토는 젊고 총명한 곤도 코지라는 닌텐도 직원이자 전문 작곡가와 함께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는 모든 수퍼 마리오 게임의 음악을 작곡했다. 곤도의 음악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닌텐도는 그의 음악을 CD와 레코드로도 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10p : 1990년에 이르자 70개의 라이선시들이 수백 종의 게임 수백만 개를 판매하게 됐는데 그 카트리지는 전량 닌텐도에서 생산되었다. --> 닌텐도는, 탁월한 라이선스 전략 (엄격한 업계 통제력을 갖는...)으로 직접 게임을 개발하지 않아도 라이센스 수입과 게임 카트리지 독점 생산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119p : 1988년, 닌텐도의 신규사업은 패밀리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그 계획의 중심에는 <패미컴>과 거기에 접속하는 장치인 100달러짜리 통신용 어댑터(모뎀)가 있었는데, 그것으로 <패미컴>을 전화선에 연결시킬 수 있었다.

122p : 닌텐도는 항상 소규모 인력을 합리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을 견지했다. 연구개발부에 200명, 관리부에 350명, 본사 공장에 180명, 우지 공장에 130명이 근무했다. (1991년)

126p : 자신이 가진것,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해야 합니다. 내 안에서 스스로 발견한 것보다 위대한 것은 없죠.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을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는 방법입니다. - 아라카와 미노루 (닌텐도 회장 야마우치 히로시의 사위, 닌텐도 아메리카 사장)

131p : 야마우치 히로시는 자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자녀들은 닌텐도를 증오했는데, 닌텐도가 아버지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42p : 요코 (야마우치 히로시의 큰딸, 아라카와 미노루 닌텐도 아메리카 사장의 처)는 어떤 식으로든 닌텐도에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 (사위 아라카와 미노루는 닌텐도 아메리카를 맡기전, 마루베니라는 건설회사에 다녔음.) 친정아버지를 사업과 결혼한 사람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정아버지는 사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느끼는 모든 분노와 실망감을 집에 와서 풀었다. 그녀가 어릴 때 가족들은 저녁마다 집에서 그를 기다려야 했고 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는 모두 그분만 보면 공포감을 느꼈어요. 그만큼 우리는 고통을 당했지요."

238p : 아타리의 하드웨어 부문 (비디오 게임기와 컴퓨터)은 코모도어 비즈니스 머신즈의 창업주 잭 트래미얼에게 어음 2억 4000만달러에 팔렸다. (영화사 워너는 아타리의 지분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트래미얼은 아타리 주식회사라는 자신의 새로운 회사가 애플이나 코모도어와 어꺠를 나란히 할 것이라 믿었다. 당시 트래미얼은 사실상 코모도어에서 퇴출된 처지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달콤한 복수를 꿈꾸었을 것이다. 트래미얼은 자신의 세 아들들과 함께 아타리를 경영할 계획을 세웠지만 오락실용 게임기 사업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워너는 그 사업권을 별도로 (남코의 사장) 나카무라 마사야에게 매각했고, 아타리 게임즈는 남코의 계열사가 됐다.

239p : 아타리 쇼크 --> 비디오 게임을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시킨 아타리의 몰락 그리고 그 여파로 산업 자체가 붕괴된 1983년 전후의 공황상태를 가리킨다. 시장에는 완성도를 무시한 수많은 저질 게임들이 홍수를 이뤘으며, 하나의 게임이 개발되면 그 변형판이 속출하는 등 무질서한 상태로 들어섰다. 결국 이는 소비자들이 비디오 게임을 외면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고 수요가 사라짐에 따라 소매상들이 치명타를 입었으며 산업 흐름의 역순으로 점차 거대 게임 회사들에까지 파장이 미쳐 도산하는 업체가 속출했다.

263p : 일본인의 경영이념은 일단 수립된 계획을 굳건히 믿고 기어코 그 결실을 맺고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근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 기업들을 성공시킨 핵심적인 요인이다.

273p : 1989년 미국에서 닌텐도는 <닌텐도 파워>라는 게임잡지를 발간한다. 첫해에 무려 500만명 펀클럽회원 전원에게 무료로 발송되었고, 어린이용 잡지로서는 미국 최대의 발행부수를 기록하는 정기간행물로 자리잡았다. --> 라이센스 전략과 더불어, (게임리뷰, 소개등을 통해...) 닌텐도가 게임업체들을 통제하는 또다른 수단이었음.

310p : 의료인들은 닌텐도게임과 TV시청의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심한 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어린이들 중에 닌텐도를 즐기는 어린이가 그렇지 않은 어린이보다 치료에 따르는 고통을 절반가량 덜 느끼는 반면에 TV시청은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들은 닌텐도 게임을 즐기면 두 가지 이유로 고통을 덜 느낀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첫째 이유는 비디오게임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데 필요한 집중력이 고통을 분산시키고 이완시키거나 잊게 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이유는 그렇게 상호작용하면서 도달하는 고도의 흥분상태가 혈액에 엔돌핀을 꾸준히 공급해준다는 것이었다.

417p : 1992년 7월 1일, 닌텐도는 시애틀 매리너스 야구단을 인수한다. (미국 야구위원회에서는 반대했으나, 정작 시애틀 주민들은 닌텐도가 인수해주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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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었나... 신문에서 일본의 한 젊은 두부장수 다루미 시게루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1963년 도쿄 빈민가의 두부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3대째 두부를 만들어 팔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그를 더 이상 ‘두부장수’로 부르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 연 매출 200억 엔(약 1800억원)을 눈 앞에 둔 어엿한 중소기업 "시노자키야"의 CEO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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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포함해서, 7권의 책이 오늘 회사로 배달되었는데, 머리말부터 몇장 훑어보다가 그만... 그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오늘 업무 전폐... ㅡ,.ㅡ;;) 무엇보다, 개망나니(?)였던, 다루미 시게루가 두부장사를 시작하고 나서,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얘기가 무척 흥미있었고, 이 사람은 혼자힘으로 스스로 모든 경영철학과 경제원리를 책이나 학교가 아닌, 철저하게, 시장에서 깨닫고 실천하고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요즘과 같은 최첨단 IT시대에, 도대체 두부한모 팔아서 얼머나 남는다고, 두부에 대한 끝없는 열정으로 이렇게 까지 사업을 일궈냈단 말인가... 놀라움의 연속일 뿐이다...

전문 작가를 고용하여, 좀더 근사하게 (감성적으로...) 얘기를 풀었더라면, 더 좋았을 법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경영학 서적류의 케이스 스터디 처럼, 정리가 잘 되어있는 책이라, 읽기는 편했지만, 교훈이나 감동이 좀 덜하다고나 할까... (책도 217페이지밖에 안되어서, 순식간에 읽어버릴수 있다.)

★★★☆☆

21p : "물과 공기를 파는 장사꾼이 돈을 가장 많이 번단다. 그리고 두부에는 물과 공기가 다 들어있단다... --> 다루미 시게루의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 ㅡ,.ㅡ;;

120p : 보통 경영을 압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제조원가가 아닌, 판매관리비다. 판매관리비가 늘어나는 것이 최악의 경우인데, 판매관리비만 없으면 상품을 보다 싼값에 팔 수 있다.

140p : 상품이란 품질이 가격보다 우월하지 않으면 절대 팔리지 않는다.

187p : 우리는 흔히 모든 상품을 고품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품을 생산하는 오류를 범한다.

190p : 세상에는 지침서에 얽매어 실패를 경험하는 일이 많다.

193p : '소비자를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더 무책임하며, 이런 사람일수록 '자기 입장에서'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상품을 만드는 과정과 판매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는 틀림없이 이런 상품을 원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머릿속에 틀을 미리 짜놓고 그 틀에 모든 것을 맞춘다. 그런데 이렇게 틀이 짜여진 시점부터 그는 이미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이럴 것이라고 가정하면 할수록 사업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그 범위에서 벗어난 일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정해진 범위를 벗어난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러므로 '소비자의 입장에 선다'는 사고방식이 중요하다. 자신이 진정으로 소비자의 입장에 섰을때 비로소 진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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